지금부터 리셋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나의 건강을 생각해 주는 보험회사에서 탁상달력을 집으로 보내준다. 그럼 나는 화장대에 세워져 있는 작년 달력을 한 번 쓱 훑어본다. 1월 2월 3월….. 달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작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기록된 메모들을 살펴본다.
늘 있는 생일, 기념일, 그리고 휴가, 데이트 일정들, 학교와 학원 스케줄, 비용처리 등등 다양한 것들이 기록되어 있다. 딱히 뭐 큰 사건 없이 무탈하게 지낸 흔적들을 보며 시간이 또 이렇게 흘러갔구나 하는 생각에 잠긴다. 그게 내 인생 마지막 30대 달력이었다. 왠지 모를 아쉬움과 허탈함도 스쳐 지나간다. ‘이제 어쩔 것인가? 모두 과거가 되어버린 삶인 것을…’ 지나간 것에 미련 따위는 두지 않겠노라.
이제 새롭게 시작된 40대의 새 달력을 뜯자!! 그리고 달력표지에 이렇게 적자. ‘지금부터 리셋이다!’
40대는 달라야 한다. 이렇게 나이만 먹고 늙어가기만 하는 인생은 재미없다. 아직 에너지 넘칠 나이가 아닌가? 다시 나를 점검하는 새해! 다시 나를 훈련하는 새해! 다시 나를 찾아가는 새해로 맞이해야 한다. 그래서 난 거창한 목표 말고 매월 하나씩 실천할 수 있는 목표로 ‘자기 관리하기’로 정하고 매월 실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1월이다. 무조건 예쁜 것부터 시작한다. 그래야 기분 좋은 새해를 맞이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난 자기 관리 첫 미션으로 ‘네일아트’를 적었다. 손도 나이가 들더라. 누가 보면 험한 일 했냐고 말할 것 같은 내 손. 핸드크림을 수시로 발라도 자주 물을 만지다 보니 보습감을 느끼기가 쉽지는 않았다. 특히 중지 손톱 근처는 항상 굳은살이 잘 생겼고. 검지 손톱 끝은 자주 깨졌고, 엄지손톱 밑은 살갗이 자주 찢어지기도 했다. 손 주름은 말해 뭐 하냐 그냥 함께 묻어가는 것이다.
그저 한없이 수고한 내 손을 보면서 난 첫 번째로 손톱관리를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집 근처 네일숍을 방문해 네일케어를 받았다. 부러진 손톱들이 균일하게 다듬어지고 요즘 가장 핫하다는 버건디 색상으로 손톱을 물들이니 마치 와인 한잔 들이켜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내 손에서 전해졌다. 확실히 기분전환이 된다. 뭐랄까? 내 손이 대접받는 느낌이랄까?
1월부터 자기 관리 첫 단추를 잘 낀 느낌이다. 그 손을 본 우리 딸이 나보다 더 좋아하며 예쁘다고 말하면서 내 손등에 뽀뽀를 하더라. 엄마손이 매일매일 이랬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조금 관리했을 뿐인데 이런 손등키스까지 받을 줄이야. 역시 갖춰진 만큼 대우를 받나 보다.
2월의 목표는 바로 ‘치아관리’였다. 충치치료는 할 게 없었지만 스케일링은 최대한 1년에 한 번씩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케일링도 할 겸 자주 마시는 커피 때문인지 치아 색상이 점점 탁해지는 것 같아서 치아미백을 같이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은 그냥 미백치약 쓰면 되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그걸로는 한계성이 있다고 생각되어 난 치과에서 전문적으로 하는 미백치아 시술을 받아보기로 했다.
정말 2시간 내내 누워서 꼼짝없이 입만 벌리고 있는데 입속이 다 말라버릴 지경이었다. 예뻐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몸을 베베 꼬아가며 참아낸 결과 드디어 미백시술 완성!! 떨리는 기대감으로 거울을 들고 하얀 치아를 생각하며 스마일 하는데 “엥? 이게 뭐야?”라고 말해버렸다. 아.. 생각했던 것보다 하얀 치아색이 아니었다. 간호사 말은 기존의 색상보다 한 톤 밝아진 색이 되었다고 했지만 왠지 낚인 기분이 들었다.
결론은 광고 이미지처럼 하얀 치아가 되려면 1회성으로는 안되고 몇 번 더 해야 좀 더 밝아진다는 것이다. 결국 3월에 한 번 더 하기로 예약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드라마틱한 효과를 단번에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자기 관리를 시도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다. 지금은 시간이 좀 더 흐른 시점이니 아마도 더 좋은 기술이 도입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4월의 목표는 ‘피부관리’이다. 드디어 대공사 시즌인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만져야 새 얼굴로 태어날 수 있는 것인지 고심의 봄을 맞이했다.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기초공사는 잡티와 기미제거였다.
눈에 띄는 검은 점들은 화장을 해도 잘 가려지지 않았다. 바탕이 깨끗해야 뭘 찍어 발라도 예쁜 법이다.
어쩐지 봄맞이한다고 백화점 갔다가 화장품 코너에서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돌아왔다. 아무리 예쁜 색의 립스틱을 발라도 딱히 내 얼굴에 어울리는 색을 찾지 못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립스틱 색상이 문제가 아니라 내 얼굴톤이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즉, 칙칙하는 뜻이다. 언제 또 이렇게 얼굴이 기미밭이 된 건지 안 되겠다 싶어 퇴근하는 남편에게 “이번달에 피부과에 가야겠어!”라고 말했다. 남편은 요즘 왜 이리 외모에 신경 쓰냐며 이뻐져서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하냐고 묻더라. 그래서 “내 만족이야!, 난 관리하는 여자니깐!”라고 답했다. 돈 많이 들어간다는 소리를 하길래 이제는 나한테 투자할 시간이 왔다고 했다. 안 해도 예쁘다고 말하길래 그건 40대 전이나 통하는 얘기라고 반박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내가 세운 월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할 마음이었다. ‘모조리 지워주마!’ 굳은 결심으로 할인 이벤트가 많다는 피부과를 알아내 그곳에서 드디어 시술을 받았다. 우선 급한 불부터 끄자는 심정으로 기미 잡티만 공략하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다 갈아엎고 싶었지만 장기전 공사라 돈도 생각해야 해서 진짜 꾹꾹 참았다.
“ 탁탁!! “ 레이저 소리가 들린다. 얼굴이 따끔거렸지만 참을만했다. 시술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거울로 민낯을 확인했다. 세상에 얼굴에 붉은 상처가 한가득이다. ‘이렇게나 제거할게 많았나?’ 하는 생각에 재생테이프를 잘라 상처 부위마다 하나씩 붙이는데 개수가 너무 많아 얼굴은 완전 누더기가 돼버렸다.
그렇게 난 2주 가까이 누더기 같은 얼굴로 지내다 어느덧 상처가 아물고 세수가 자유로워지니 그전과는 달리 얼굴 잡티가 흐려지거나 사라진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행히 한 번의 시술로 드라마틱한 효과를 본 것이다. 한층 깨끗해진 얼굴을 보며 진작할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에 한 번씩은 필수로 해야겠다. 더 짙어지기 전에 예방차원에서도 말이다. 개인적으로 기미잡티제거는 추천한다. 이제 백화점으로 립스틱 사러 가야지! 렛츠고!
그렇게 여러 달 동안 관리의 여신으로 리셋하다 보니 어느덧 여름이 다가왔다. 옷차림이 얇아지는 계절, 실루엣을 감출 수가 없다. 아무리 아랫배에 힘을 줘도 뱃살은 들어가질 않는다. 이제 출산 후 살이 쪘다고는 말 못 하겠다. 출산한 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40대에 접어드니 내 몸이 뚱뚱하다 날씬하다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기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오는 시점이다. 결국 운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살을 빼기 위함도 맞지만 더불어 근력을 키워 힘을 유지해야 할 나이인 것이다.
운동투자는 이제 생명을 연장하는 값이다. 많은 운동 종목 중에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운동은 필라테스였다. ‘뼈만 빼고 다 빼드리겠습니다!’라는 현수막 문구에 그만 마음을 빼앗겨 결국 3개월치 카드결제를 하고 말았다. 주 2회 오전 시간을 이용해 그룹으로 운동을 했는데 첫날 같이 운동하는 팀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세상에나 어쩜 이리도 다들 날씬한 건지 거기서 또 시각적 충격을 얻어맞았다. 오히려 회원들의 몸매를 보며 더 열심히 운동해야겠다는 굳은 의지가 생겼다. 결과적으로는 필라테스 운동을 하면서 자세교정이 되어서 좋았고 무리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속근육을 키울 수 있어서 좋았다.
아침마다 운동시간이 기다려졌다. 운동은 내 몸의 좋은 에너지를 만들어준다. 짧은 한 시간 동안 고통과 힘듦이 뒤따르지만 하고 나면 개운함과 몸의 탄탄함을 느끼며 오늘도 나를 이겼다는 성취감을 맛보게 된다. 어느 운동이든 좋다. 자전거 타기, 줄넘기, 요가, 수영, 골프, 등산, 줌바, 유튜브 보며 매트운동하기 등등 그게 무엇이든 일단 내 몸을 흔들어 재껴라. 막춤이라도 상관없다. 막춤도 30분 흔들어 채우기 쉽지 않다. 지금 당장은 귀찮을 수 있다. 소파에, 침대에 누워 이불 밖은 위험하다고 외칠 수 있다. 그러나 나이 들어 병원비 아끼려면 지금부터라도 몸을 일으켜 세우자. 내 몸에 기력을 저축하자. 들리는 소문에 운동을 평소에 열심히 하면 곧 맞이할 갱년기도 크게 힘듦 없이 넘어간다 한다.
새해부터 열심히 자기 관리 목표를 세우고 달렸더니 어느덧 40세 상반기가 마무리되었다. 지나온 달력을 확인해 보니 어느 달 하나 허투루 보내지 않고 아주 알차게 달성했다. 어찌나 뿌듯한지 나 자신에게 나를 잘 아꼈다고, 나를 잘 관리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이젠 이 기운 그대로 이어받아 40세 하반기를 잘 달려볼까 한다.
상반기에는 겉을 관리했다면 하반기에는 속을 관리해야겠다. 내면의 양식을 위해 가을맞이 독서로 시작한다. 생각을 리셋하고 마음을 다듬다 보면 우아한 40대가 될 것이다. 이제 육아서적에서 벗어나 지금 나에게 필요한 인생 길잡이 책들을 하나씩 읽어봐야겠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미술관에도 전시회에도 자주 방문할 것이다. 하고 싶은 게 많아졌다. 그렇게 오늘도 난 40대의 달력 채우기에 재미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