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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기랜드 May 23. 2023

딱 일주일만 (8)

치유의 숲을 찾아서

나에게 지금 당장 소원 한 가지를 말하라고 한다면 그건 바로 “정말 딱 일주일만 혼자이고 싶다”이다.

아무 생각 없이 누구 하나 챙길 필요 없이 그저 고요함 속에서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내가 먹고 싶을 때 먹고 내가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하다가 내가 자고 싶을 때 잠들 수 있는 그런 하루 말이다.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한 하루 일수 있으나 내겐 그 하루마저도 누릴 수 있는 날이 오길 꿈꾼다.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온 엄마라는 삶에도 휴가가 절실히 필요하다. 정말 내게 딱 일주일만 휴가가 주어진다면 어떨까? 벌써부터 설레는 여행길이 그려진다. 혼자 가볍게 떠날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시원한 바다가 펼쳐진 강원도 해안도로 한번 달려볼까? 아니면 좀 더 멀리 비행기를 타고 따뜻한 휴양지로 날아갈까? 움직이는 것도 귀찮으면 호캉스 투어로 하루종일 힐링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게 어디든 일단 떠나고 싶다. 가만히 생각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기회는 계획한 자에게 더 빨리 찾아오는 법! 슬슬 마음의 시동을 걸 때가 되었다. 언제가 찾아올 절호의 기회를 잡기 위해 지금 내가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장거리 운전실력과 먹고 놀 수 있는 비자금 마련이다. 멀리 떠나고 싶어도 동네만 다니는 운전실력이라 이럴 때를 대비해 장거리 운전을 열심히 연습해야겠다. 고속도로 공포증을 극복해야 어디든 떠날 수 있으니 말이다. 비자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 풍요로운 여행을 위해 어떻게든 모아보자.


여행의 시작은 먼저 가족들에게 미리 선전포고하는 것이다. 아직 여행을 떠날 준비가 안되어 있더라도 미리 말은 해놔야 한다. “나 올해는 꼭 혼자 힐링여행 떠날 거야!”. “나도 재충전이 필요해!  2박 3일 여행 좀 다녀올까 봐 “. 어떤 문장이든 좋다. 일단 뱉어라. 말이 씨가 된다고 자주 말하다 보면 정말 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신기하게도 난 그 기회를 남편 회사로부터 얻게 되었다. 남편이 연말에 해외로 일주일간 세미나를 참석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말이다. 직감적으로 난 이때다 싶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함께 가고 싶다고 말했더니 자기는 일을 해야 해서 함께 가도 혼자서 놀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순간 이보다 더 완벽한 여행은 없겠다 싶어 난 곧바로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일주일간 손녀딸을 부탁한다고 말이다. 사실 엄마도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전부터 계속 혼자 여행 가고 싶다고 말을 했기에 엄마도 흔쾌히 휴가를 써서 딸을 돌봐주기로 해줬다.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렇게 난 완벽한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이미 내 마음은 라스베이거스에 있다.


남편과 같은 직항 비행기 대신 비용절감을 위해 경유 1회를 거치는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10시간 넘게 그 좁은 비행기 안에서 허리 아픈 줄 모르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글도 쓰고 잠도 자면서 시간을 보냈더니 어느덧 미국에 도착했다. ”라스베이거스여.. 내가 왔다”. 그렇게 원하던 혼자만의 휴가지에 도착한 것이다. 이제부터 마법과 같은 일주일을 나에게 선물할 것이다.


첫날은 미친 듯이 라스베이거스 거리를 걸었다. 미국이라는 땅을 처음 밟아보는 나였기에 어디를 가든호기심과 설렘만 가득했다. 수많은 관광객 틈사이로 혼자만의 산책을 하듯 느리게 걸으며 화려하고 멋진 호텔 건물들을 넋 놓고 보다가 예쁜 풍경이 보이면 셀카봉을 꺼내 내 모습을 연신 찍어댔다. 카메라 속 내 얼굴은 행복한 미소 그 자체였다. 이게 얼마만의 휴가인가. 살아있는 듯한 이 기분. 사진 속 나를 빤히 쳐다보니 난 여전히 나다웠고, 난 여전히 사랑스러웠고, 난 여전히 내가 좋았다. 나를 다시 찾은 기분. 그렇게 온전히 나만을 돌보는 시간들로 나를 채워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출출한 배를 채우러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간단하게 커피와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계산을 하는데 직원이 나의 이름을 묻더라. “내 이름? 뭐라고 말할까? “ 하다가 ”릴리“라고 대답했다. ”릴리“ 그것은 백합향기를 좋아해 내가 지은 나의 영어 이름이다. 직원은 커피홀더에 예쁘게 Lily라고 적어주었다. 주문한 제품이 나오자 “릴리”라고 부르는데 나도 모르게 함박웃음이 지어지더라. 새로운 세상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기분이랄까. 그날부터 난 릴리가 되었다. 릴리는 행복했다. 일주일이 하루처럼 느껴질 만큼 빠르게 흐르는 시간들 속에서 다양한 체험도 하고 쇼핑도 하고 휴식도 취하며 그렇게 나를 재충전해나갔다.


특히 여행 중 가장 특별했던 곳은 바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한다는 그 명소 그랜드캐니언이었다. 이곳에 처음 도착한 순간 그랜드 캐니언의 거대한 자연 앞에서 시각적으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큰 충격을 받았다. 눈으로 보고 있는데 이게 뭐랄까 도무지 믿기지 않는 비현실적인 풍경이랄까? 한동안 그곳에 서서 숨죽이듯 말문이 막혀버렸다. 한눈에도 담을 수 없을 정도의 웅장하고 화려한 장관들을 이루는 자연의 위대함 속에 난 조용히 머무르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관광객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더라. 혼을 빼놓을 만큼 자연에 압도당한 나는 그 강한 기운을 느끼며 내 인생을 한 번씩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래.. 쉬었다 가자. 조급해하지 말자. 비교도 하지 말자. 나를 다그치지 말자. 완벽한 삶이란 없다. 조금만 더 여유를 갖자. 내 안의 호흡을 느끼자. 내 안의 중심을 찾자. 내 인생을 다시 찾자!’ 그렇게 난 자연이 주는 치유 속에서 내 삶을 여러 번 되새기며 그렇게 정화해 나갔다. 거대한 자연이 주는 힘! 그 강력한 에너지를 느끼며 나를 치유했던 놀라운 경험들… 아마도 떠나지 않았다면 난 평생 그 힘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갔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을 가까이하자. 그리고 나만의 치유의 숲을 발견하자. 그 숲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며 내 안의 쌓아둔 나쁜 공기들을 뱉어버리고 자연이 주는 희망찬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자. 마시고 마시다 보면 내 안의 싱그러운 새로운 에너지가 생성될 것이다.


그렇게 난 마법과도 같았던 일주일의 여행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릴리에서 수기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릴리는 두 번째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절친과 함께 떠나는 우정여행이다. 인생에 있어서 힘이 되는 단짝 친구는 정말 귀하고 소중한 존재이다. 그런 친구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더할 나위 없이 또 다른 행복을 선물할 것이다. 벌써부터 두근거린다. 릴리는 또 한 번 함박웃음을 지을 것이다. 휴식을 통해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고 내가 하고 싶었던 새로운 일들도 떠오르게 되었으니 말이다. 40대는 그렇게 잠시 숨을 고르는 시점이고 잠시 쉬었다 가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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