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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기랜드 May 23. 2023

스타일이 곧 나 (7)

트레이드 마크

삐거덕 옷장문을 열어 스웨터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또 시작이다. “고마해라 습기제 마이 무따 아이가” 그만하면 됐다. 입지도 않는 보풀난 그 옷 이제 그만 놓아줄 때가 된 것이다. 젊을 땐 무엇을 입어도 예쁘다는 소리를 듣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젠 무엇을 좀 사서 입어야 우아함을 장착할 수 있는지 연구를 해야 할 시기이다.


지금 내 옷장을 살펴보자. 무엇으로 가득 채우고 있나. 혹시 10년도 더 된 유행 지난 옷들이 한편에 그대로 있는가? 아니면 출산 후 불어난 살 때문에 온통 검은색에 펑퍼짐한 옷들만 가득한가? 설마 살 빼고 입겠다고 들어가지도 않을 옷들을 고이 접어서 모셔놓고 있는 건 아닌지. 어떠한가? 당신의 옷장은 말이다. 여자의 옷장은 현재의 심리 상태와 좋아하는 취향 그리고 평소 생활패턴과 정리습관까지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제 이 옷장 안에서 새로운 내가 태어나야 한다. 값비싼 명품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대충 입고 살자라는 마인드가 현재 나의 삶에 질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40대는 스타일이 주는 힘을 챙겨야 한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나답게 우아하게 가꿀 수 있는지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야 한다.


난 예전에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이 있다. 평소 옷을 좋아했었던 나였기에 옷가게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아주 재미난 놀이터에서 노는 것과 같았다. 그렇게 재미로 시작한 아르바이트를 2년 넘게 하면서 다양한 고객들을 만났는데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은 일명 뒷모습 전지현 고객이었다.


나이대는 40대 초 중반 사이로 보였는데 마른 체구에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를 유지하고 항상 일주일에 한 번씩 매장을 방문하는 단골고객이었다. 처음에는 허리까지 오는 찰랑거리는 머릿결을 보고 아가씨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중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땐 뭐 나름 머릿결 관리를 굉장히 잘하시는 분이구나 싶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분은 자기 관리 최강자였던 것이다.


그땐 몰랐다. 출산 이후 머리카락이 수없이 빠진다는 사실과 더불어 모발탄력도 떨어지고 윤기도 없어져 머릿결이 아주 그냥 개털이 된다는 사실말이다. 물론 약간의 타고난 머릿결도 있겠지만 그 나이에 찰랑거리는 윤기 나는 긴 머리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며 관리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면 정말 이제와 서지만 그분의 자기 관리에 존경을 표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 고객은 늘 직원의 도움 없이 자신이 좋아하고 즐겨 입는 스타일의 옷을 골랐고 또 몸매가 살짝 드러나는 스타일을 선호해서 점퍼보다는 재킷으로 바지보다는 치마위주로 쇼핑을 했었던 것 같다.


즉,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이미 잘 알고 있었고 또 그렇게 입었을 때 어떠한 분위기가 연출되는지도 알고 있었다. 딱히 직장을 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본인은 모임이 자주 있어서 옷쇼핑을 좋아한다고 했다. 내가 결혼초에 했던 아르바이 트였으니깐 15년도 더 지난 일인데 아직도 그 뒷모습 전지현 고객이 떠오르는 걸 보면 스타일에 있어서 자신만의 트레이드마크를 갖는다는 것은 자신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상대가 날 기억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만의 스타일을 살리는 트레이드 마크는 무엇이 있을까? 그러고 보니 난 10년 넘게 보브단발을 유지하고 있다. 친구들은 이제 나의 긴 머리는 상상할 수 없다고 한다. 본의 아니게 나의 트레이드 마크는 보브 단발이다. 눈빛을 강조하는 도시적인 이미지를 살리기에 좋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그런 분위기를 갖고 싶어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좋다. 내 얼굴형과 잘 어울리는 헤어스타일, 내 몸매의 단점은 커버하고 장점만 살리는 옷 스타일, 내 피부톤과 찰떡인 립스틱,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나만의 독특한 액세서리, 또는 나만 알고 나만 뿌리고 싶은 시크릿향수, 그리고 나만 달고 다니는 핸드메이드 소품들까지도 말이다. 무엇이든 나를 연상하게 해 주면서 나만의 스타일을 살려줄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자.


반면 어느 고객들은 모든 스타일의 옷을 검은색으로만 구입하는 분들도 꽤 계셨다. 이미 입고 계신 옷도 검은색인데 또 같은 색상을 고르시면 난 항상 고객에게 여쭤봤다. “검은색상을 좋아하시나 봐요? “라고 물으면 대부분은 “전 옷 입을 줄 몰라서 검은색만사요” 또는 “ 검은색이 제일 날씬해 보여서요”라고 대답을 했다. ‘아.. 몸매를 가리기 위해 검은색만 산다? 어떤 색이 자신에게 어울리는지 몰라서 검은색만 산다? 쇼핑도 나름 재미이고 기분전환이 될 수 있는데 늘 같은 색만 산다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예쁜 컬러가 다양한데 내 옷장에 늘 어두운 검은색으로만 가득 차있다고 상상하면 난 아마 매일 아침 옷장문을 열 때 “오늘의 기분은 어제와 같음 “이라는 느낌으로 하루를 시작할 것 같다.


검은색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직업상 입어야 하는 색일 수 있고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일 수 있다. 그게 자신감을 살려주는 스타일과 색상이라면 그건 옳은 선택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색상이나 스타일이 무엇인지 잘 모를 때 무조건 어두운 계열만 늘 구입한다면 그건 정말 말리고 싶은 쇼핑이다.


옷의 컬러에도 다양한 의미가 있다. 흔히들 레드는 열정을 뜻하고 그린은 자연, 오렌지는 활기, 옐로는 쾌활함, 블루는 신뢰감, 블랙은 숭고함 의미들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렇듯 컬러에도 다양한 의미와 온도가 있다. 매일 아침마다 옷장을 열 때 그날의 기분과 그날의 일과에 맞게 컬러의 온도를 느끼며 다채롭게 나만의 스타일을 표현하는 것도 나를 깨워주는 기분 좋은 루틴이라 생각한다.


요즘은 자신에게 꼭 맞는 인생컬러를 찾아주는 퍼스널 컬러진단도 많이 하는 편이다. 도대체 나는 어떤 색이 잘 어울리는 거지? 평소 색감 고르기가 어렵다면 한 번쯤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추천한다. 머리 염색 컬러부터 색조컬러, 얼굴색에 맞는 의류컬러까지 속 시원하게 내 안의 숨은 아름다움을 한층 더 끌어올릴 수 있으니 말이다.


스타일은 자신감이다. 나이가 들수록 스타일이 나를 말한다. 멋지게 나이 드는 법을 알아야 한다. 지금의 나는 어떤 이미지인가? 나의 말투, 나의 표정, 나의 용모, 나의 성격, 나의 사고방식 등등 나를 표현하고 있는 모든 영역이 곧 나의 이미지가 된다. 현시점에서 나의 이미지가 마음에 들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나의 이미지는 고착되기보다 내가 언제든지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그때부터 나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가장 쉽게 변화할 수 있는 접근 방법으로는 내가 평소 좋아하는 여배우를 떠올리고 그 사람의 스타일과 말투 그리고 분위기를 그대로 따라 해 보는 것이다. 꼭 그 배우처럼 되기 위해 무리한 성형을 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 배우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를 나도 따라서 연출해 보자는 것이다.


요즘 내 눈에 들어오는 중년 배우는 바로 ‘김희애’이다. 뭔가 약간 느리게 천천히 말하는 말투에서 우아함이 묻어 나온다고나 할까? 뭐 드라마의 콘셉트 또는 연예인이라는 특수한 직업상 만들어진 화법일 수는 있으나 여유 있는 미소와 함께 반박자 느린 템포로 말투를 흐리지 않게 말하는 포인트가 나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외모야 말할 것도 없지만 특히 김희애의 여유 있는 그 말투가 난 좋다.


그래서 말이 빠른 나는 한동안 천천히 말하는 연습을 했었다. 아직도 그 연습은 꾸준히 진행 중이다. 간혹 마음이 급해지면 말이 빨라지기도 하지만 최대한 김희애처럼 말하기 모드로 나아가고 있다. 한동안은 눈웃음이 트레이드마크인 손예진 배우를 따라 하겠다고 눈웃음을 시도했다가 눈가주름만 더 생겨서 일단 미루고 있다.


우아한 이미지 만들기 쉽지 않다. 우아하게 말하고, 걷고, 웃고, 먹고, 입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면 또한 그의 맞게 나를 먼저 아끼고 사랑하는 마인드와 성숙한 태도와 행동들 그리고 건강한 사고가 함께 어우러져야 할 것이다.


즉, 보이는 것에만 신경 쓰면 뭐 하냐 그의 맞는 언행과 태도가 함께 받쳐줘야 품위 있는 진정한 나만의 스타일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나를 발견하는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반갑고 나에게 생기와 긍정의 에너지를 가져다준다. 변화 앞에 돈 생각이 먼저 난다면 난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그 정도로 육아에 힘썼고, 집안일과 일터에 힘썼다면 한 계절에 하나쯤은 나를 위한 적당한 소비도 즐길 줄 아는 마음도 챙겼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때론 지나친 절약은 내 삶을 인색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40대는 좀 더 힘 있게 나를 가꿔보자!! 이 계절에 맞는 예쁜 원피스 하나 사서 입어보고, 수고한 내 손 한 번이라도 더 바라볼 수 있게 나를 위한 예쁜 반지도 끼워보자. 언젠간 하겠지… 언젠간 사겠지… 누군가 사주겠지.. 기다리지만 말고 각자의 형편대로 조금씩 나만의 스타일에 투자해 보자.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우아하고 멋지게 즐기면서 같이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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