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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기랜드 May 23. 2023

묶인 감정 풀기 (5)

빛나는 혈색

아침부터 턱이 아프다. 아마도 전날밤 이를 심하게 간 게 분명하다. 난 가끔 스트레스가 심한 날이면 어김없이 잠자는 동안 무의식 속에서 이를 뿌드득 갈곤 한다.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잠이 깨버리면 다시 잠들기가 어려워져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가 결국 날을 새고 만다.


오늘도 비몽사몽으로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을 바라보니 내 눈은 충혈되어 퉁퉁 부어 있었다. 머리가 핑 도는 게 어지럽기까지 하는 이 아침. 잠이 보약이라던데 난 또 그 보약을 못 챙겨 먹은 꼴이 되었다. 피곤하다. 피곤해. 턱은 뻐근하고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세수만으로는 정신이 들지 않아 가볍게 스트레칭을 해본다. 뿌득 뿌득 온몸에서 뼈소리가 난다. 이젠 그 소리마저 친숙하다. 몸도 녹슨다더니 관리가 진정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집에서 하는 유일한 홈 케어는 바로 독기 가득한 얼굴도 순한 양으로 만들어 준다는 페이스롤러이다. 요거 하나면 얼굴 부기가 쏙 빠진다. 아니 그럴 거라 믿는다. “붓기야 빠져라. 탄력아 생겨라. 모조리 다 끌어올려라” 간절한 마음을 담아 거울 앞에서 혼자 중얼거려 본다. 정신이 조금씩 들 때쯤 나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오늘의 나는 어떤지.. 기분은 괜찮은지.. 또 마음은 괜찮은지.. 나에게 물어본다. 밤사이 나를 짓눌렀던 그 무언가의 스트레스를 더 찾아내고 싶은 마음에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본다. 스스로 묻는 오늘의 안부에 미소가 지어지지 않는 걸 보면 뒤틀린 마음이 아직도 정리가 안되었나 보다. 마음 같아서는 페이스롤러로 얼굴이 아닌 구겨진 내 마음을 쫙쫙 피고 싶은 심정이다. 뭐가 그리 쌓인 게 많은지 그 범위조차 알 수도 없다.


나이가 들수록 살아온 인생이 얼굴에 드러난다고 하던데 40대면 슬슬 표정주름도 잡힐 나이가 아닌가. 나는 요즘 어떠한가. 미소가 예쁘게 지어지는가? 아니면 입꼬리가 힘없이 축 쳐져 있는가? 미간의 주름이 깊은가? 눈가에 주름이 깊은가… 아주 천천히 얼굴 근육을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얼굴은 내 마음을 자세히 비추는 거울과도 같게 된다.


살면서 웃는 날이 더 많았으면 빛나는 혈색과 함께 미소도 자연스러울 것이고 눈가 주름마저도 예쁘게 자리 잡혔을 것이다. 반면 힘들고 괴로운 날들이 많았으면 낯빛도 어둡고 누구보다 빠르게 깊은 미간주름이 먼저 잡혔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성형이며 시술이며 주름을 관리하는 방법들이 다양해져서 얼마든지 주름도 관리할 수 있지만 그와 더불어 내 감정도 같이 관리를 해줘야 그 시술효과도 2배로 오래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감정을 관리하는 일. 그 출발은 나 자신을 누구보다 더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많은 감정중에 난 어떨 때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슬픈지.. 화가 나는지.. 분노하는지.. 또 그런 기분이 들 때 난 어떻게 표현하는지 등등 상황에 맞게 다양한 감정을 난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난 혼자 있을 때 기분이 좋다. 혼자 놀기에 빠졌다고나 할까? 혼자 산책하기, 혼자 극장가기, 혼자 커피숍에서 차 마시기, 혼자 쇼핑하기, 혼자 편의점에서 컵라면 먹기 등등 그냥 무엇을 하든지 혼자 있을 때 힐링을 하는 것 같다. 결혼 후 둘이 되었다가 출산 후 셋이 되면서 항상 붙어 다녀서 그런 건지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주기적으로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고 생각되면 난 자주 혼자만의 시간들로 나의 감정을 다스린다.


그러나 가벼운 스트레스가 아닌 분노가 치미는 심각한 선들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싸울 수 있다. 다툴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내 남편은 나보고 할 말 다 하고 산다고 하지만 사실 난 할 말을 좀 정리해서 최대한 매너 있게 말하는 중이었다. 생각나는 대로 다 말했으면 남편은 그 자리에서 충격 먹고 나랑 못 산다고 도망갔을지도 모른다. 싸울 때에도 화를 조절하는 나였기에 그 당시 차마 못 푼 감정들이 나도 모르게 쌓여있더라. 그래서 화병으로 단명하고 싶지 않아 평소 나의 묶인 감정들을 자주 살펴본다. 매일 나의 감정안부를 묻는 것이다.


이젠 혼잣말이 늘었다. 문뜩 남편에게 서운했던 생각이 났다. 뒷목이 아파서 몇 번 병원에 갔는데 나보고 “돈 많이 든다”라고 말하더라. 그 말이 어찌나 내 안에 깊이 남았던지 어느 날 갑자기 설거지를 하다 말고 혼자서 중얼거린다. “꼭 그렇게까지 말해야 속이 시원하니? 내 기분이 어땠을 것 같아? 괜찮아지고 있어?라고 말해주면 안 되냐? “마치 1인극을 하듯이 말이다.


처음에는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지만 당시 느꼈던 감정과 분노가 떠오르며 내 안의 묶여있던 못다 한 말들이 쏟아지더라. 그렇게 토해내다 보니 어느새 내 마음은 다시 조용히 평안으로 고요함이 찾아왔다. 마치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하듯이 내 안의 고백이 나를 치유하는 시작이었다. 이렇게라도 표현해 내지 않으면 내 인생은 아마도 시들어가는 꽃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의 여과는 무척 중요하다. 무엇이든 뱉어내자. 나를 숨죽이게 하는 것들, 나를 욕 나오게 하는 것들, 나를 화나게 힘들게 하는 것들 말이다. 묻어두지 말고 뭐라도 걸러내야 내 속이 편하고 어떻게든 해결방법이라도 찾으니 말이다. 작은 감정이라고 무시하지 말자. 내 안에 들어온 순간 내 안에 쌓이는 순간 걸리적거리던 작은 돌멩이가 어느덧 나를 짓누르는 바위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매일 나의 감정을 체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나처럼 1인극을 즐겨도 좋고. 혼자 운전을 하며 속풀이 드라이브를 즐겨도 좋다.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절친이나 인생 선배와 수다도 좋고. 가족 상담사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좋다. 아니면 직접 상대방에게 나의 감정을 글로 적어 그때마다 전달해 보는 것도 있다. 자신의 성향대로 어떻게든 풀어나가자. 늦은 밤 맥주 한 캔에서 나를 위로하기도 하고, 계절이 바뀌어지는 산길에서 나를 만나기도 하고, 책 한 권 안에서도 나를 위로해 줄 그 한마디를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뭘 이렇게 까지 하냐! 그냥 할 말 다하고 살면 되지!‘라고 말할 수 있지만 살아보면 안다. 상대는 내가 원하는 대로 AS가 안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정말 이혼을 결심한 게 아니라면 웬만한 건 서로의 감정도 양보하며 살아야 한다는 게 현실이다. 긍정적이게 바라보면 내 안의 약한 점이 더 단단해지는 것이고 보통 아닌 내공을 갖추는 셈인 것이다. 어제의 감정으로 오늘은 살지 말자. 오늘은 내 감정에게도 새날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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