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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기랜드 May 23. 2023

살리는 생각하기 (4)

호흡을 바꾸자

드디어 40대의 삶이 시작된 새해 첫날 아침이다. 아직 난 이불속이다. 날은 밝았지만 하루 만에 한 살 더 먹었다고 몸이 천근만근이다. 겨우 이불속에서 얼굴만 빼꼼히 내밀어 본다. 아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30대는 과거가 되어버렸고 하루아침에 눈떠보니 40대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내게 40대의 시작은 우울하거나 두렵거나 혹은 숫자에 불과하는 그저 그런 중년의 삶이 아니었다. 사실 30대 중반부터 난 끊임없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래야만 다가오는 40대의 삶이 내가 원하는 대로 좀 더 행복하게 가꿔질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내 나이 27세에 결혼 후 7년 동안 긴 신혼생활을 보내고 드디어 아이가 태어났다. 30대 중반은 말 그대로 육아뿐인 삶이 전부였다. 잠 못 들 기는 기본이고 아이 챙기라 먹는 것도 허겁지겁, 사람 하나 더 늘어났다고 살림살이 두 배가 되어 집안일은 끝이 없고, 늘 껌딱지처럼 내 곁에 붙어서 나만 바라보는 아이와 하루종일 놀다 보면 나의 체력은 반나절도 못 가서 바닥을 보이고, 버티다 못해 살겠다고 영양제 이것저것 꺼내서 주섬주섬 챙겨 먹고 나면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간다. 아직 쉴 때가 아니다. 저녁준비 한다고 주방을 뒤집고 남편 맞이 한다고 대충 거실이라도 정리하고 나면 이젠 아이를 씻겨야 하고 가끔 남편이 일찍이라도 퇴근하면 그나마 숨 좀 돌릴 시간이 생겨 잠시나마 휴식을 취해본다. 커피를 좋아하지도 않던 나인데 아마 이때부터 카페인 중독자가 된 게 분명했다.


시댁과 친정이 가까이 살지 않아 도움의 손길 없이 오로지 독박육아로 6년 차를 살아갔다. 그 사이 수많은 밤들을 보내며 난 생각했다. ‘아… 이렇게 살다가 내 인생 끝나는 것인가? 설마 하루종일 살림만 하면 싱크대 밑에서 죽는다는 이야기가 이 상황인 건가? ’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 딸이 커질수록 난 늙겠지… 아무리 처바르면 뭐 해 기미도 짙어지고 주름만 더 생기는데… 먹은 것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살은 왜 안 빠지는 거야.. 휴…‘ 한숨 섞인 우울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그렇게 잠들기 전까지 나를 괴롭혔고 지치게 만들었다. 예민할 때로 예민해진 나는 하필 그 시기에 권태기까지 겹치고 말았다.


딱 결혼 10년 차가 되고 나니 권태기가 찾아오더라. 독박육아도 힘들어 죽겠는데 남편까지 짜증 나게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나에게 찾아온 권태기 증상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쳐다보기도 싫다. 일단 눈 맞춤이 힘들어지고 남편의 밥 먹는 모습, 누워서 TV 보는 모습, 코 골며 잠자는 모습, 심지어 뒤통수마저도 꼴 보기 싫다. 둘째, 대화하기도 싫다. 정말 집안에 중대한 중요사항마저도 퉁명스럽게 허공에 대고 전달한다. 심지어 카톡이나 문자로 대화하는 게 편하고 그 흔한 이모티콘마저도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차리리 늦게 들어오는 게 속편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셋째, 불만이 극도로 쌓인다. “왜! 화장실 머리카락은 정리를 안 하지? 이런 것까지 내가 다 치워야 해?” 고쳐지지 않는 습관들이 하나 둘 끝도 없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욕이 늘어난다. 넷째, 스킨십이 싫다. 곁에 오는 것도, 스치는 것도, 손잡는 것도, 잠자리마저도 모든 살 붙는 것들이 귀찮아지고 감각이 없고 부담스러울 뿐이다. 다섯째, 소리에 냄새까지 초 민감해진다. 밥 먹는 소리, 말하는 소리, 웃는 소리, 숨소리마저도 듣기 싫고 퇴근 후 울리는 현관벨 소리마저도 듣고 싶지 않다. 매일 샤워를 하는 남편에게서 기분 좋은 냄새가 나지 않았고, 입는 외투마저 남편의 채취가 섞일까 싶어 나와 같은 옷장에 걸어두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에게 나타난 권태기 증상들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나만 미친년인가?”싶었다.


내 안의 모든 오감들이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난 남편에게 “솔직히 나 지금 권태기 같으니깐 나 좀 건들지 마! 내버려 둬!”라고 말하자. 남편이 웃으며 한마디 하더라. ”난 권태기 아닌데? “라고 말이다. 아 진짜 저 인간은 나를 위로해 줄 인간이 아니구나 싶었다. “언제부터 그랬어? “ ”내가 어떻게 해줄까? “ ”많이 힘들었지 “라는 대답을 기대했던 내가 또 미친년이지 싶었다.


공감력 0%인 저 인간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아니지 언제까지 살아야 할 것인가. 난 왜 이 상황을 참고 있는 것인가. 다시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이 상황 속에서 난 한동안 허우적 댔다. 그렇게 마음의 질병이 걸린 체 권태기 중증 환자로 2년 정도 살았던 것 같다. 후유증은 심했다. 맑은 봄날에 하늘만 쳐다봤을 뿐인데 알 수 없는 눈물이 주르륵 흘렀고, 자존감은 점점 낮아지고 기댈만한 사람조차 없고 내편이 없다고 생각되어 외롭고 우울한 나날들이 반복되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늘어날 때쯤 딸아이 입에서 한숨 소리가 들리더라. 처음에는 잘 인식하지 못했는데 어느 날 그 어린 딸이 한숨 쉬는 모습을 보이는데 순간 내가 보이더라. 갑자기 정신이 확 깨이더니 내가 지금 딸 앞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지금 한숨만 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이러다 어둠의 터널에 갇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찔했다. 내 인생도 숨 쉴 구멍이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나를 살리는 것들이 무엇인가.. 그날은 하루 종일 나를 죽이던 생각들을 지우고 나를 살리는 생각들로 내 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래!! 일단 호흡부터 바꾸자 “ 그동안 내쉬었던 한숨들은 이제 삼켜버리고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 기압소리로 나를 깨워보자. 그 후 난 집안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소리 내기 시작했다. ”얍!! 아자!! 아싸!! 힘!!! “뭐든 내 안을 울리는 소리들로 나를 깨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딸이 갑자기 나를 따라 하더니 마구 웃어댔다. “엄마!! 더 크게 해야지. 태권도할 때처럼! 야! 야! 발차기 야!” 우리는 한동안 말도 안 되는 태권도 자세를 취하며 그렇게 서로 깔깔거리며 웃어대고 놀았다.


별거 아닌 소리 하나가 나를 흔드는 것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연약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좋은 기운은 나의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 좋다고 결혼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10년 넘었다고 싫어지는 것도 우습다. 그동안 서로 쌓아온 일들을 되돌아보니 결국은 서로가 너무 수고한 것이다. 너무 애쓰며 열심히 산 것이다. 희생 없는 남편의 삶은 없는 것이고, 희생 없는 엄마의 삶은 없는 것이다. 그저 서로 측은지심이라도 발휘해 위로하고 또 위로해야 할 시기일 뿐인 것이다.


생각에도 좋은 기운을 불어넣듯 난 주문을 외웠다. 난 지금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 나를 닮은 2세를 태어나게 했을 뿐 아니라 그 아이가 세상과 어울릴 수 있도록 키워내고 있다. 난 평생 잊지 못할 멋진 추억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이건 가치 있는 일이며 그 어떤 자격증과 비교할 수 없는 인생기술을 갖는 일이다. 이 아름다운 헌신을 기꺼이 즐기겠다. 난 남편과 멋진 중년의 삶을 살 것이다. 우린 서로가 꿈꾸는 정상에서 만나 서로를 축하하며 포옹할 것이다. 이 아이도 자신만의 길을 지혜롭게 찾아 나설 것이다. 난 그렇게 매일 나를 살리는 생각들로 나를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생각의 먼지들을 탈탈 털어버리니 생각이 가벼워져 발걸음에 속도가 붙는 느낌이다. 기분이 좋으면 날아갈 듯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 40대의 첫 시작은 생각정리이다. 모든 생각을 뒤엎자. 그리고 다시 꿈꾸자. 다행히 시간은 흐른다. 조금만 더 가다 보면 어느덧 아이도 자라 있을 것이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그럼 내 굽었던 허리도 좀 펴지겠지. 그래, 시간이 약이다. 그렇다면 난 언제까지 육아의 삶에 헌신하며 수고하며 몰두할 것인가. 그래, 딱 39세! 그때까지 달려보자! 버티자! 후회 없이 내 열정을 다하자! 그렇게 난 스스로에게 선포했다. 그 기간을 딱 39세로 말이다.

여기서 분명한 건 나 스스로 나의 희생기간을 정했다는 것이다. 난 그 기간을 딱 5년으로 정했을 뿐이다. 그렇게 기간을 정하고 나니 영원할 것 같았던 육아의 삶에 끝이 보인다고 생각하니 이것 또한 나에게 아주 큰 힘이 되었다. 왠지 D-day처럼 꼭 그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심정이랄까?


그렇다면 그 희생기간이 끝나는 40세에는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일단 자축을 좀 해야겠지, 그리고 날 위해 멋진 선물을 살 거야, 아니면 멀리 해외여행이라도 떠나 볼까? 그래, 커피숍 창업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못해본 것들, 꼭 도전해 보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다 해보자. 꿈은 거창해도 좋고 사소한 것이어도 좋다. 단지 그 꿈들을 잊지 않게 구체적이게 기록해 두는 것이 좋겠다. 출산 이후 건망증이 심해지니 말이다.


육아의 희생기간이 끝이 난다는 것은 영원히 육아를 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오로지 육아에만 전념했던 에너지와 몰입의 시간에서 빠져나와 이제 나만의 여유를 찾고 나를 다시금 돌아보는 시간을 같이 갖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난 그토록 기다리고 기대했던 40대가 되었다. 오늘 40세 첫 1일 차인데 뭐 하고 놀지? 그래. 일단 나가보자. 내가 미소 지을 만한 것이 있는지 찾아보자. 오늘 나의 발걸음은 누구보다 빠르고 가볍고 날아갈 듯하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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