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레이싱
인생경로를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이 있다면 나는 지금 어느 곳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육아라는 구간에서 계속 머물러 있는데 도대체 언제쯤 탈출이 가능한 것인가 오로지 내가 알 수 있는 건 이 구간은 내 인생길 최대 난도 높은 코스라는 건 확실하다. 함께 사는 남편도 우리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기에 하루종일 회사라는 구간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매일 그렇게 함께 살아가지만 각자의 인생 내비게이션이 다르게 작동된다는 것이다. 가끔 늘 가던 길에서 잠시 주말이라는 휴게소에 들러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1박 2일 여행을 가볍게 떠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더더욱 깨닫는 것은 서로의 삶은 언제나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집안일은 돈벌이가 안된다고 무시해서도 안되고 집에서 놀면서 살림하나 제대로 못하냐는 등의 발언은 아내의 삶 속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과 같다. 반대로 남편에게 ‘쥐꼬리 만한 그 월급으로는 한 달 살기도 빠듯하다. 능력이 그것밖에 안되니 아직도 그 자리지 남들처럼 진급 좀 해라’ 하면서 비교하거나 쏘아붙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부부라면 서로의 길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응원하는 마음으로 각자 주어진 삶의 레이싱을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는 남편이 회사에서 무슨 얘기를 듣고 왔는지 돈 버는 일이 얼마나 힘든 줄 아냐며 내 마음을 안다면 너도 나가서 한 달에 30만 원씩만 벌어오면 좋겠다고 하더라. 남편은 잊은 것이다. 내가 출산 전 직장녀 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치 돈 한번 안 벌어 본 여자처럼 말하는데 순간 뒷골이 땅기면서 ‘내가 지금 집에만 있으니깐 노는 것처럼 보이나? 집안일이며, 독박육아를 담당하는 일은 돈벌이가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아니지… 내가 30만 원도 못 버는 여자처럼 보인다는 것인가?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소리인가?’ 역시 남편 눈에는 내가 능력 없어 보이는 여자로 여겨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나 화가 나던지 난 홧김에 “그래! 그럼 나 일 할 거니깐 수아를 종일반 시키던지 하원 도우미를 구하던지 알아서 해! “라고 말했다. 막상 일 하겠다고 큰소리치니깐 남편은 누가 몇백 벌어 오라고 했냐며 아르바이트 정도만 하라고 하더라. 도우미를 구하 면 결국 지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말이다. 그때 남편은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어린이집 방학이 길다는 사실과 내가 진짜 일을 할 여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 날밤 난 다짐했다. “날 우습게 봤다 이거지? 내가 어떤 여자인지 보여 주겠어.” 난 이를 악물고 생각했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을 생각해 보자. 낮에 아르바이트가 가능한 일 말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으면서 재미있게 배우며 할 수 있는 일, 먼 훗날 창업까지 할 수 있으면 더더욱 좋은 일 말이다. 문득 이런저런 생각 중에 커피가 떠올랐다. ‘바리스타 어떨까? 커피를 배워 볼까?’ 낮에 아르바이트도 가능할 것 같고, 적성에 잘 맞음 창업도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서야 내 인생의 내비게이션이 다시 새로운 목적지로 방향이 설정되면서 업데이트되었다. 난 주저 없이 바로 다음날 집 근처 문화센터를 검색해 바리스타 자격증 반에 등록을 했다. “그래, 커피나 실컷 마셔보자” 하는 마음으로 문화센터를 다니기 시작했고 그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교육을 받으며 자격증도 준비하다 보니 오랜만에 나에게만 집중되는 시간들을 보내게 된 것이다. 어찌나 재미있고 즐겁던지 새로운 것을 배워 가는 게 이렇게 신나는 일이었나? 하고는 다시금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격증을 취득한 날 난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나 자격증 취득했어. 곧 일자리 구할 거야. 내가 돈 벌 테니깐 걱정 마! “라고 시원하게 말했다. 아직 일을 시작한 것도 아닌데 뭔가 내속이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보여준다고 했지! 이제 시작이야!”
그러나 부푼 기대감도 잠시 현실은 참담했다.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내 나이가 문제였다. 세상에나 40대를 원하는 구인광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이제한은 생각지도 못한 걸림돌이었다.
아… 갑자기 모니터 앞에서 울컥하더라. 내가 나이만 먹어갔었구나. 난 이제 사회생활도 힘든 건가. 남편한테 잘난 척은 다 해놨는데 받아주는 데가 없다고 하면 날 얼마나 나를 비웃을까? 이런저런 별의별 생각들로 그렇게 며칠을 흘려보냈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내 자격증이 너무 뜨끈했다. 다시 방법을 바꿔보기로 했다. 일단 알바 어플을 깔고, 집 근처 카페를 순회하며 혹시나 구인광고가 올라오면 무조건 전화를 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나이제한이 문제냐 급하면 다 뽑는다라는 마인드로 다시 접근했다.
그러다 눈에 띄는 한 곳을 발견했다. 바로 키즈카페 커피숍 구인 광고였다. 왠지 이거다 싶었다. 일단 고민 없이 바로 전화를 하니 사장은 급하니깐 일단 얼굴 보고 상담 후 결정하자고 했다. 약속시간을 잡고 면접을 보는 날 최대한 어리게 보이는 스타일로 꾸미고 매장을 방문했다. 이게 얼마만의 면접이란 말인가. 가는 길 내내 나는 취직을 하든 안 하든 내 안의 도전에 난 스스로 감동을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면접은 심플했다. 커피 자격증을 묻지도 않았고, 경력 사항도 묻지 않았다. 현장에서 바로 배울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단지 사장보다 내가 한 살이 더 많은 게 문제였다. 사장은 아르바이트생이 나이가 많으면 자신이 이것저것 시키기가 어려워질까 봐 그게 좀 걱정이라고 얘기했다. 그래서 난 “마음 편히 생각해 주세요”라는 말만을 남기고 면접을 마무리했다. 사장은 몇 명만 면접을 더 보고 이틀 후에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을 설렘반 기대반 걱정반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쯤 키즈카페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인상이 좋아서 나로 선택하기로 했다고 말이다. 세상에나 합격이라니!! 마음이 진정되질 않았다. 그렇게 난 내 인상 하나로 나이 제한도 넘어서고 젊은 아르바이트생들도 다 제치고 뽑히게 된 것이다. 이래서 웃고 살아야 하나보다. 인상은 모든 걸 넘어설 수 있는 좋은 무기가 되니 말이다.
그렇게 뜨거웠던 여름날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달인이 되었을 때쯤 난 결국 신나는 레이싱을 멈추게 되었다. 주말도 가끔 사장의 부탁으로 일을 몇 번 나가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독박육아를 경험한 남편은 결국 혼자서 애 보는 게 힘들었는지 나보고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라고 하더라. 핑계는 곧 추석도 오는데 시골 내려가야 한다며 그 정도 일했으면 됐다고… 아직 수아가 어리니 엄마가 곁에 더 있어주는 게 맞는 거 같다면서 말이다.
아니 30만 원 벌어오라고 할 때는 언제이고 이제 재미 좀 붙여서 따뜻한 라때 좀 내려볼까 했더니만 그만 접으라고? 순간 남편에게 “왜? 내 가 돈 번다고 했잖아! 추석 때도 나 일 하러 가야 해!”라고 말하니 그때서야 그 정도 돈은 자기가 투잡 해서라도 채울 수 있으니 그냥 집에서 수아 잘 키우다가 나중에 하고 싶은 일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끝까지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볼까도 생각했었는데 곧 어린이집 방학도 다가와서 이래저래 아이 맡길 곳이 없겠다 싶어 결국 그만두게 되었다.
그해 늦은 봄부터 여름까지 나의 레이싱은 찬란했다. 따뜻한 봄바람을 맛보았고 그 여름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꿀맛이었으니 말이다. 그 후로 남편은 지금까지 나에게 돈 벌어와라 하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돈을 벌 수 있는 여자라는 것을 증명했고, 난 잠시 내 아이를 위해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수고하고 헌신하며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그때서야 알았다. 내 인생 나의 위치는 내가 정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즉, 남편의 커리어가 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건 남편의 인생경로에 업혀가는 수준 밖에 되지 않는 나인 것이다. 만약 그렇게 업혀가다 보면 남편이 실직을 하거나 건강이상으로 더 이상 직장을 다닐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식한테 업혀 갈 것인가? 그 누구도 힘든 삶을 원하지 않는다. 내가 좀 더 독립적이고 힘 있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나의 커리어를 회복할 로드맵이 필요하다. 40대는 새로운 인생길을 만들기에 아주 좋은 시기이다. 주저 말고 나만의 멋진 인생경로를 그려보자 그리고 신나게 레이싱을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