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칭 많은 여자
“수아엄마” 하는 소리에 난 뒤를 돌아본다. 마치 그게 나의 이름인 마냥 말이다. 사실 내 본명보다 내가 지어준 내 딸이름이 더 예쁘다고 생각해 난 ”수아엄마”로 불려지는 게 좋았다. 그렇게 누군가의 엄마로 불려지는 삶이 익숙하고 변함없는 건 사실이지만 문득 40대가 되어서야 이젠 진짜 나를 알리는 내 이름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세월에 밀려서도 아니고 의지적으로 내가 더 잘 살아가기 위한 다짐이었다.
어느 날 동창모임이 있어서 아침부터 딸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부랴부랴 한껏 꾸미고 급히 전철을 탔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내 앞에 할머니 한분이 다가오시길래 자리를 양보했더니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근데 아줌마야? 아가씨야?” 순간 뜬금없이 나의 정체성을 묻는 할머니께 난 머뭇거리며 “아.. 네.. 아줌마예요.”라고 답해버렸다. 그런데 그 순간 왠지 나에게 진 것 같은 이 찝찝한 기분은 뭐지? ‘아.. 아줌마 하고 싶지 않은데… 결혼했어요..라고 말할걸 그랬나? 아니면.. 유부녀? 애엄마? 주부? 워킹맘은 아직 아니니깐 전업주부라고 해야 하나?…’ 어떤 걸로 나를 표현해야 할까?
한 할머니의 짧은 물음 속에 난 오만가지 생각들로 가득했다. 큰 의미 없이 던진 말이겠지만 그날 내 모습은 아침부터 친구들 만난다고 평소 안 하던 화장과 자주 신지 않던 하이힐 그리고 샤랄라 원피스에 향수까지 뿌려가며 나름 완벽한 외출이라고 신나 있었는데.. ‘어디를 봐서 아줌마? 어디? 어디가 문제지?‘ 난 달리는 전철 창가에 서서 내 모습을 이리저리 비춰보며 훑어보기 시작했다.
‘얼굴이 늙어 보이나? 흰머리가 많아 보였나? 뿌염이라도 할걸… 설마 앉을 때 내 똥배? 아.. 뭐냐고 대체… 그냥 그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말걸.. 아니지 그냥 아가씨라고 대답할걸…‘ 무심코 던진 할머니의 작은 돌멩이 하나가 내 마음에 순간 박히면서 그날 내 하루의 설렘은 사라지고 내가 원하는 내 모습과 난 무엇으로 불려지기를 원하는지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날이 바로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들어본 아줌마의 호칭이었다.
40대의 나를 말해줄 그 어떤 호칭이 필요했다. 굳이 사회가 정해놓은 아줌마라는 호칭에 나를 꾸역꾸역 갖다 붙여 놓을 필요 없이 말이다. 생각해 보면 요즘은 1인 미디어 시대가 아닌가 다양한 닉네임이나 애칭, 수식어들로 나를 재창조하는 시대이다.
무엇이 좋을까? 내 인생을 빛나게 할 나만의 특별한 새 이름 말이다. 글쎄… 백합꽃 한 송이에 하루종일 기분이 좋아지는 나라서 ‘릴리‘라고 불러줬으면 좋겠고, 이왕 사는 거 부자 소리 한 번 들어보고 죽자 라는 마인드로 ’큰손 기부녀‘는 어떨까? 아니면 작가라는 나의 꿈을 담아 ‘정작가’ 생각만 해도 설렌다. 누군가에게 내 책이 큰 위로와 힘이 되길 바란다는 마음으로 ‘토닥토닥이’ 이 또한 베스트셀러가 되길 꿈꾸며 ‘완판이네’ 그저 내가 꿈꾸는 대로 재미있는 생각들을 마구 던져본다. 그 어떤 말로도 나를 표현하기에 제한이 없으니 말이다.
사실 살면서 개명을 할까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정인숙’이라는 내 본명이 조금 촌스럽다고 느껴져서 말이다. 한 번은 택배아저씨가 물건을 전달하면서 나에게 ”정인숙 씨 맞으세요? “ 그러더라. 그래서 ”네. 저 맞는데요? “라고 답하니 나보고 ”아닌 거 같은데… 안 어울리는데.. 이름이.. “라고 말하더라. 아 진짜 그 순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났던 기억이 있다. 내 이름마저도 나 같지 않다니 난 도대체 어떤 이름으로 살아야 하는 것인가 그렇게 난 또 나를 돌아보며 나의 삶에 어울리는 내 이름을 새롭게 찾아가고 있다.
오늘도 난 수아엄마 이면서 내 꿈을 담아 ‘정작가’로 불려지길 원하며 그렇게 살기 위해 지금도 ‘수기랜드’라는 닉네임으로 나의 첫 번째 책을 써 내려가고 있다. 이제부터 내가 꿈꾸는 그 이름대로 나의 삶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