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의 힘
현관은 그 집의 얼굴이라고 했던가, 한동안 나는 복을 부른다는 풍수지리 인테리어에 빠져있었다. 현관은 늘 깨끗해야 하며 물건이 쌓여있으면 안 된다고 한다. 현관 거울도 방향마다 그 뜻이 다른데 거울을 왼쪽에 걸면 재물운, 오른쪽에 걸면 명예가 따른다고 한다. 신발장안에는 오래되고 낡은 것들은 버리고 잘 신지 않는 신발들은 신발장에 넣어두고 특히 남이 신던 신발을 물려받았거나 중고로 구입했을 경우는 과감히 버리는 게 좋다고 한다. 또한 현관에 식물을 두기 원한다면 둥근 잎이 좋고 조화꽃은 피하는 게 좋다. 드나드는 입구에 바퀴 달린 자전거들이 있으면 이동이 많아져 되도록이면 안 보이는 곳에 보관하면 좋다고 한다.
정말인지 그 작은 현관 공간에 뭐 이리도 복의 규칙이 많은지 얼마나 큰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사는 이 공간에 좀 더 좋은 기운이 생겨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난 집안 곳곳을 살펴보며 손보기 시작했다.
사실 신혼 때야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나만의 미적 감각을 살려 다양한 인테리어를 시도해 보기도 했지만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부터는 모든 감각적인 인테리어는 사라지고 현란한 캐릭터 카펫부터 깔고 시작한다. 아이의 시각적 자극을 위해서는 알록달록은 필수이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 그나마 있던 장식품마저도 얼마 못 가 망가지기 일쑤이다. 모조리 입에다 넣거나 던져버리니 말이다. 좁은 거실은 점점 아이의 장난감으로 가득 차 버리고 책들도 하나둘씩 전집으로 들이기 시작하면 말 그대로 거실은 온통 놀이방으로 탈바꿈을 하게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발 디딜 틈이 없어지고 청소라도 하는 날이면 오전에 잠깐 깨끗할 뿐 그 이후로는 다시 또 놀이방이다. 마음먹고 치운다 한들 내일이면 또 난장판이 될게 뻔한데 굳이 정리에 애쓰지 않게 된다. 그 사이 살림살이는 점점 늘어나 집주인이 사람인지 물건인지 헷갈릴 정도가 된다.
이렇게 몇 년 정도 살다 보니 이제 집이 주는 아늑함 보다는 집은 전쟁터 같은 곳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 전쟁터 같은 삶을 이제 나도 청산하려 한다. 아이도 많이 컸겠다 이제 정리를 못하겠다는 핑곗거리도 줄었다. 집이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니라 집안 곳곳을 둘러봐도 어디 하나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복을 부르는 집안의 풍수지리는 특별한 게 아니었다. 그 시작은 비움이고 그리고 우리가 매일 해야 하는 청소이다. 묶은 짐을 과감히 정리하는 것, 물건에 집착하지 않는 것, 공간의 흐름이 막히지 않게 여유 있게 물건을 배치하는 것 이러한 것들이 모두 집안에 좋은 기운을 불러일으키는 방법들이었다.
편안함을 주고 싶었다. 내가 머무는 이 공간에… 왜 나는 똑같은 커피를 마셔도 카페에서는 더 맛있고 집에서는 왜 그 맛이 안 날까? 분위기를 마신다는 말을 무시 못하겠다. 나도 집에서 좋은 음악과 함께 편안하게 커피 한잔 하며 여유 있게 힐링하고 싶다. 그렇다면 우리 집도 카페처럼 숨 쉴 수 있는 1인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 집을 바꾸자! 색다르게 살아보자! “
난 곧장 편의점부터 달려갔다. 대용량 쓰레기봉투를 사들고 집에 들어왔다. 일단 눈에 띄는 잡다한 물건부터 쓰지 않는 오래된 물건들까지 하나둘씩 담아갔다. 읽지도 않는 오래된 책들, 입지도 않는 유행 지난 옷들, 이제 가지고 놀지도 않는 장난감들부터 방구조에 맞지 않게 자리차지만 했던 작은 가구와 소품들까지 모조리 담아냈다. 또한 주방 찬장에 고이 모셔두었던 먼지 쌓인 접시들이며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플라스틱통들, 그리고 쇼핑백은 말해 뭐 하나… 구석에 처박아 놓고 왜 쌓아 둔 건지… 주방 쪽은 정말 총체적 난국이었다.
미련 없이 버리자면서도 순간 이건 좀 아까운데 하는 물건들도 있었고 추억이 많이 깃들었단 이유로 정말 버리기 망설여지는 것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 없는 물건들이 어디 있으랴.. 모든 물건에도 유효기간이 있다고 생각하며 마음에서 놓아주니 생각보다 망설임 없이 물건들이 정리되었다. 물론 단 하루 만에 정리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생각하고 움직인 결과 거실 쪽은 어느 정도 좀 시원한 개방감이 생겼다.
“띵동” 벌써 딸아이 하원시간이다. 오전부터 대청소한다고 설쳤더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벌써 늦은 오후가 돼버렸다. 눈썰미 좋은 딸은 안방에 들어가더니 “엄마! 여기 있던 새장 어디 갔어?” 하고 묻더라. 귀신같이 다 안다. ”응 정리했어, 이제 안 쓸 거거든 “하고 답하니 ”그래? “하더니 더 이상 묻지도 않는다. 생각보다 물건에 대한 아쉬움이 없어 보이길래 이때다 싶어 딸아이의 물건 정리를 시도했다.
“오늘은 수아 물건들을 정리할 거야! 어린이집에서 했던 아나바다 행사 기억나지? 이제 안 쓰는 물건들은 이웃에게 나눠주거나 팔아보는 거 어때?”라고 물으니 흔쾌히 좋다고 했다. 오전에 사두었던 대용량 쓰레기봉투를 딸아이 손에 쥐어 주며 안 쓰는 물건을 담아 보라고 하니 무슨 시장놀이라도 하듯이 거침없이 물건을 집더니 “이건 이제 시시해! 이건 고장 났어! 이건 이제 안 가지고 놀아…. “하면서 금방 쓰레기봉투 하나를 가득 채웠다. 얼핏 보기만 해도 너무 새 거이거나 비싼 물건들도 보였지만 일단 본인이 안 쓴다니 할 말이 없었다.
이제 안 쓰는 물건들을 모두 모은 후 중고로 팔린만한 것들을 추슬러보았다. 자주 이용하는 중고거래 카페에 물건들을 순차적으로 올리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장난감들이 팔려나갔다. 그렇게 낮부터 고생한 보상을 중고거래로 위로금을 받을 줄이야. 꽤 수입은 쏠쏠했다.
드디어 집안 곳곳에 숨은 빈 공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도 여백이 생긴 것이다. 조금 덜 채우고 간격을 넓히니 길이 보이고 여유로움이 채워지는 느낌이랄까. 여기에 마지막으로 힐링 포인트가 될만한 화룡점정이 필요했다. 뭘까? 무엇이 좋을까? 생각해 보니 커피숍의 푹신하고 예쁜 의자가 떠올랐다. 이미 집안에 3인용 소파가 있었지만 나만의 아늑한 안락의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1인용 안락의자를 검색해 보았다. 정말 다양한 디자인의 색도 예쁜 소파와 의자들이 수두룩했다. 며칠 검색을 마치고 드디어 스툴이 포함된 예쁜 노란색 1인소파를 구입했다. 그리고 함께 있으면 유용한 1인용 간이테이블까지 함께 말이다.
드디어 내 집에 나만의 힐링공간을 선물한 것이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나를 돌아보고 하루를 마무리할 때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공간. 언제든지 쉬고 싶을 때 무언가를 하고 싶을 때 식탁의자가 아닌 나만을 위한 포근한 안락소파에 기대어 오늘도 난 분위기 있게 커피 한잔의 여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왜 진작 이걸 안 샀지? 세상 너무 좋다. 여전히 그곳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나이다. 가끔은 좋은 음악과 함께 무드 있는 향초와 함께. 맛있는 케이크 한 조각과 함께. 예쁜 화병과 함께 말이다.
그 작은 공간은 마치 집을 털어내고 비워내서 찾아낸 보석 같은 공간이었다. 한 평도 안 되는 이 공간이 주는 힘은 편안함과 위로 그 자체였다. 비록 늦은 오후가 되면 그 자리를 탐내는 남편과 딸이 있지만 언제든지 누구든지 앉아도 된다. 힐링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법이니깐 말이다. 작은 변화가 내 집안을 따뜻한 공간으로 바꿔주었다. 비우는 작업을 통해 여유를 얻었고 편안함을 느꼈고 숨 쉴 수 있게 되니 그때서야 서서히 내가 보이기 시작했고 나에게 집중되는 삶을 생각하게 되었다. 공간의 비움은 곧 나를 발견하는 시작점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