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부녀 유럽 여행의 시작
인천을 떠나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아시아나 OZ 541. 낮 12시에 떠나 오후 4시 반에 도착한다. 비행시간으로는 11시간 30분이지만 내가 만나게 되는 세상의 시간으로는 4시간 반에 불과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결국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이야기. 낮 12시에서 낮 4시로 날아가는 것이니 밤을 맞이할 시간은 없다. 비행기의 속도가 지구의 자전 속도보다 조금 느리기 때문이다. 지구의 자전 속도와 비행기의 속도가 같다면 출발한 시간과 비슷한 시간에 도착할 테니 말이다. 평범한 사람이 아무리 빨리 움직인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지구의 하루를 따라잡지는 못한다.
잠시 내가 살던 세상을 떠나 다른 세상으로 들어간다. 지난 30년 동안 숱하게 경험한 일이지만 이번엔 좀 더 새삼스럽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탓일까? 회사를 그만두고 기약 없는 백수 생활을 하고 있는 내 사정 때문일까? 아이들은 복도 건너 창가 자리에서 단 잠을 자고 있다. 두 녀석 모두 스물을 훌쩍 넘겼으니 아이들이라고 부르기도 살짝 미안해진다. 하지만 이 놈들이 각자의 아이들을 데리고 나타난다고 해도 여전히 내 눈엔 아이들로 보이리라. 팔순의 내 아버지가 아직도 아들 걱정에 좌불안석이신 것처럼.
어둑한 창가 이코노미 좌석에서 자고 있는 녀석들을 바라보니 2006년의 캐나다 여행이 겹쳐진다. 큰 딸이 6학년 작은 딸이 2학년, 넓고 큰 세상을 보여주겠다며 일주일 동안 캐나다를 여행했다. 밴쿠버로 향하던 비행기에서 이 녀석들은 비슷한 모양새로 자고 있었다. 덩치보다 큰 좌석에 구겨지듯 웅크리고 자던 녀석들이 이제는 좌석을 가득 채우고 있다. 11시간의 비행시간을 생각하다 이젠 10여 년의 세월이 눈앞에서 스쳐 지난다.
밴쿠버에서 밴프를 향해 몰고 가던 렌터카 안에서도 이 녀석들은 하염없이 잠을 잤다. 한참 이른 사춘기를 겪던 혜진이는 자는지 눈만 감고 있는 것인지 도대체 말이 없다. 어쩌다 MP3 기기를 조작하는 것을 보면서 깨어 있음을 확인할 뿐이었다. 막내 혜나는 자다가 배가 고프면 눈을 떠서 밥 먹자고 보챘고, 아직 멀었냐며 짜증을 내기도 했었다. 7시간을 운전했지만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해 중간에서 모텔을 찾아야 했던 캐나다는 아홉 살짜리의 세상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었다. 그 당시의 여행은 내가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것들을 차려놓고 데리고 다니는 여행이었다. 하염없이 달려도 끝이 나지 않는 대륙의 광활함, 만년설과 빙하가 주는 신비로움, 고풍스러운 밴쿠버 구 도심의 이국적인 모습, 우리와는 다르다면 다르고 비슷하다면 비슷한 그들의 삶의 모습 등등.
지난 12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가까운 일본은 몇 차례 함께 여행을 다녀 오기도 했다. 혜진은 대학엘 가서 내년이면 졸업반이 되고, 혜나는 공부하기 싫다며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졸업하기도 전에 취업이 되어 지금은 직장인이다. 엄마 아빠 모르게 지 언니한테 용돈도 조금씩 주는 모양이다. 나와 아내는 동안이라는 이야기는 더 이상 듣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아내보다는 내가 훨씬 더 50대의 풍모를 갖추고 있다. 열심히 살았다고 살았는데 지금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 호기롭게 ‘유럽이나 다녀와라.’며 등을 떠밀었던 아내지만 두 달치 생활비에 육박하는 여행경비가 눈에 많이 아른거렸을 거다. 마냥 빈둥거리고 있는 백수남편은 언제쯤 생활비를 벌어 메꿀 수 있을지 기약도 없어 보일 테니 더더욱.
사정이 이러하니 두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떠나는 철부지 남편의 마음이 마냥 편하지는 않다. 어찌하면 두 딸, 아니 나까지 포함해서 셋에게 의미 있는 여행이 될 수 있을까, 이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성인이 되어버린 자식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아니 어찌하면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좀 더 쉽고 만족스럽게 얻어갈 수 있을까... 비행기가 날아가는 동안 고민의 시간은 충분했지만 시간이 많다고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어찌 보면 삶이라는 게 그렇다. 고민하며 살아가지만 답을 얻지는 못한다는 것, 고민이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잊어버리는 것... 어쩌면 이번 여행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잊기 위한 여행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이제는 딸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들이 각자 찾아야 하고 나는 다만 선험자의 입장에서 도움을 줄 뿐이다. 음... 그러고 보니 고민의 무게가 좀 줄어든 듯하다. 잠깐 눈을 붙여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