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시작이 반이다, 공항 탈출!

8월 18일 프랑크푸르트

by 기타치는 사진가

공항이 처음일 리 없지만 인천공항 고속도로를 달려 영종도에 들어서면서 보이는 각종 공항 관련 시설물들은 은근히 설렘을 준다. 아이들의 목소리도 서너 음 정도 높아져 있다. 공항에 도착하여 아내를 안아주고는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다 건물로 들어선다. 익숙한 카운터들을 지나 티켓팅을 하고 짐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마친다. 면세품 찾을 게 있다는 혜나와는 라운지에서 만나기로 하고 혜진이와 함께 아시아나 라운지를 찾아간다. 언제나처럼 비즈니스 라운지는 사람들로 붐빈다. 그나마 맞은편에 새로 넓혀 시장 분위기는 면하긴 했지만. 조금 있으니 면세점 쇼핑백을 들고 혜나도 찾아온다. 이제 곧 출발 시간이다.


처음 타 본 A380, 크긴 크다. 실내 공간도 넓고 창가 좌석의 수납공간도 아주 편리하다. 좌석 간 거리도 조금 넓은 듯, 나쁘지 않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젠 11시간의 비행은 피곤하다. 특히나 최근 몇 년 동안은 후쿠오카(1시간) 길어야 도쿄(2시간)까지의 비행이 일상이었던지라 11시간의 압박은 생각보다 컸다. 내리 세 편의 영화를 보고 나서 잠을 청해봤지만 선잠만 이어진다. 그래도 시간은 간다. 결국 프랑크푸르트에 착륙한다는 안내가 들려온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중부 유럽은 야트막한 구릉지대가 끝없이 이어지는 평원이다. 울창한 숲이 여기저기 펼쳐지고 그 사이로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길과 강이 서로 엇갈리며 마을과 마을을 잇고 있다. 너른 하늘 저편으로는 어디론가 부지런히 날아가는 비행기도 보인다. 중간중간 드리워진 구름의 그림자 밑에는 여름의 더위를 피해 잠시 쉬어가는 사람들도 있겠지. 잘 일구어 놓은 밭이랑들은 언덕의 경사를 따라 멋진 퀼트 문양을 수놓고 있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풍경은 늘 평화롭다.


지도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듯이 프랑크푸르트는 알프스 북쪽 중부 유럽의 한 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지리적 상황 때문에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독일에서 이용객이 가장 많은 공항이며, 영국의 히드로 공항, 프랑스의 드골 공항 다음으로 유럽을 연결하는 허브 공항이다. 인천공항과는 달리 1,2 층의 낮은 건물들이 넓게 퍼져 있어 훨씬 넓어 보인다. 독일의 국적 항공사인 루프트한자의 기점 공항이기도 하다. 루프트한자는 아시아나항공과 함께 스타얼라이언스 파트너 항공사이다. 아시아나 마일리지 회원이라면 자격에 따라 루프트한자의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이번이 네 번째지만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2003년 런던 가는 길에 환승을 위해 들른 게 처음이지만 이땐 2박 4일의 끔찍했던 일정이었던지라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머지 두 번은 포토키나 Photokina라는 사진 영상 분야의 박람회 참관차 방문한 것. 두 번 모두 공항에 내려 짐 찾고는 바로 기차 타고 쾰른으로 떠난 관계로 공항에서의 기억은 별로 없다. EU 거주민과 나머지 국가 거주민으로 나뉘어 있는 입국 심사대도 낯설고, 세관 검사대도 낯설다. 다만 짐 찾는 곳은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예전에 짐을 기다리면서 사진 몇 장을 찍었던 탓이다.


회사 다닐 때 뻔질나게 일본을 드나들었던 덕분에 올해 말까지 아시아나 다이아몬드 회원 자격이 있다. 그 덕에 가방에는 ‘priority(우선 처리)’ 딱지가 붙어 있었고, 비교적 오래 기다리지 않고 가방을 찾아 나올 수 있었다. 렌터카 데스크를 찾아 공항 끝까지 걸어가니 원색의 데스크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허츠는 노랑, 유럽카는 녹색, 다른 회사는 빨강. 시선을 끌기 위해서라면 원색이 좋을 테지만 원색 LED로 가득한 인테리어 안에서 머무는 것은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게다가 담당자의 어눌한 영어 발음은 여행의 시작을 무척이나 피곤하게 만든다. 발음이 조금 어설퍼도 성의라도 있으면 나을 텐데 이 친구는 상대방이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자기가 할 말만 하고는 멍하니 대답을 기다린다. 이름을 적어 두었다가 고객지원팀 쪽으로 불만을 제기해 볼까 싶었지만 언제 또 이 회사를 이용할 일이 생기겠나 싶어 수고를 덜기로 했다. 얼마 전 사이판에서 렌터카를 빌릴 때와는 사뭇 다르게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사인하고 확인해야 할 것이 많다. 이미 온라인으로 예약할 때 입력했던 사항들인데 말이다.


한국에서 보다 느릿느릿 흐르는 시간을 경험하며 결국 렌터카를 받았다. 애초에 예약했던 골프에서 무료로 업그레이드를 해 줬다는 차가 세아트 레온이라는 차. 듣지도 보지도 못한 브랜드의 낯선 자동차인 데다 열쇠를 돌리니 뭐라고 경고가 뜨면서 시동도 안 걸린다. 번역기를 돌려 보니 ‘클러치를 밟고 시동을 거시오’. 정말 오랜만에 수동변속기 차량을 몰게 되니 겪는 일이다. 한데 예전에는 기어가 중립이면 클러치 밟지 않아도 시동은 걸리지 않았나? 번역기 도움을 받아 내비게이션 언어를 독일어에서 영어로 바꾸고, 첫날의 숙소 주소를 입력하고 출발... 덜컹하고 차가 울컥거린다. 후진 기어를 넣는다고 했는데 다른 기어에 물린 모양이다.


“아빠, 수동 변속기 운전할 줄 아는 거 맞아?”

“어허…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좀 필요할 뿐이야.”


다행히 후진기어를 다시 넣고 차를 뺐다. 1단으로 넣고 액셀레이터를 밟는데 또다시 덜컹…


“이런… 이번엔 3단으로 들어가 버렸네. 쉽지 않네.”

“천천히 하세요. 급할 거 없으니…”

“그래. 좀 덜컹거리더라도 이해해라. 가는 동안 이 차에 대한 정보 좀 검색해 봐. 세아트가 어느 나라 회사래니?”


스마트폰을 한참 뒤지던 아이들이 정보를 준다.


“음… 세아트는 스페인 회사래요. 폭스바겐 계열이라네.”

“이차가 레온 FR이었죠? 모델 중에서도 스포츠 기능이 강화된 차래요. 그럼 이 차 스포츠카야?”


폭스바겐 계열이라면 이 차 역시 골프와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을 테고, 골프를 빌리지 못한 아쉬움은 조금은 사그라든다. 그러고 보니 폭스바겐 골프와는 참 인연이 없다. 망해가던 폭스바겐을 기사회생시킨 골프의 신화가 무척이나 궁금했던 탓에 96년 여행 왔을 때에도 골프로 신청을 했지만 받은 차는 오펠의 아스트라였다. 아스트라는 그 당시 국내에서 많이 돌아다니던 르망의 유럽 후속 모델이었다. 디자인도 별로였고, 당시 국산 승용차와 별로 차이를 느끼지 못했던 평범한 자동차였다. 날렵한 골프의 모양새와 비교되면서 무척이나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일주일 동안 우리의 발이 되어 준 레온


이번에 빌린 레온은 제법 마음에 든다. 6단 수동 변속기도 처음이고 수동변속기임에도 거리 반응 항속 장치(adaptive cruise control)가 달려있다. 달리기 성능도 날렵하다. 디자인도 이 정도면 골프보다 낫다. 셋이 타고 다니기에 전혀 아쉬움이 없다. 스포츠 모드와 연비 모드를 고를 수도 있다. 기어 변속만 익숙해지면 아쉬울 게 없겠다.


유럽이 장난이냐고 야단치던 친구는 아직도 수동변속기 차량을 몰고 다닌다(이 글을 쓰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변속기 차량으로 바꿨다). 차가 하도 낡아 이제 바꿀 궁리를 하는 모양인데 온통 자동변속기뿐이라며 구시렁거린다. 나도 내가 주로 몰고 다니는 차라면 수동변속기를 선택하고 싶다. 하지만 과연 국내에서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 소비자들이 자동변속기 차량만을 선택한 탓일까, 자동차 회사에서 자동변속기 차량만 생산한 탓일까? 유럽에서 만나는 수동변속기 차량을 보면서 다양성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 보게 된다. 과연 소비자의 선택의 결과인지 공급자의 규모의 경제 탓인지...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로 귀결될 질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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