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1일, 와플과 벨기에 왕궁
벨기에 도착 사흘째. 이제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떠나야 하는 날이다. 혜진이는 저녁 7시 30분에 프랑크푸르트남역에 도착할 예정이니 시간은 넉넉하다.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체크아웃을 했다. 혜나와 다시 그랑플라스로 향한다. 옅은 아침 안개가 드리우고 있는 화요일 오전의 그랑플라스는 일요일과는 달리 차분하다. 어제저녁만 해도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던 그랑플라스 광장은 띄엄띠엄 관광객 사이로 청소차만 분주하다. 낮은 각도로 퍼져 들어와 안개 방울에 작은 산란을 일으키던 빛줄기는 자그마한 성당 앞 식수대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에 굴절되어 영롱한 빛망울을 만들어 낸다. 듬직한 아빠 팔에 안겨 식수대의 물줄기를 만져 보는 파란 눈의 어린아이의 미소가 빛망울만큼이나 밝게 주변으로 퍼진다. 쇼핑하기에 아주 적절한 풍경이다.
혜나는 미리 정해 놓은 동선이 있는 것처럼 일사천리로 길을 나선다. 우선 찜해 놓은 초콜릿 가게부터 찾아다닌다. 아스테릭스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언니 줄 거라며 아스테릭스 초콜릿 세트를 제일 먼저 구했다.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 이데픽스를 정말 그대로 초콜릿으로 만들어 놓았다. 혜진이가 좋아할 수밖에 없겠다. 다음으로 산 것이 벨기에 맥주가 들어있는 초콜릿. 맥주와 초콜릿으로 유명한 벨기에에 다녀온 기념품으로 이보다 좋을 수는 없겠다. 와인이나 위스키가 들어간 초콜릿은 많이 봤지만 맥주가 들어간 건 처음이다. 나무 박스에 유명 맥주의 라벨이 붙은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맥주병 모양 초콜릿이 차곡차곡 들어가 있는 형상의 포장도 일품이다.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브뤼셀에서 이 정도 물건이 이 정도 가격이면 비싼 축에도 들지 않는다. 수백 년에 걸친 벨기에 상거래 역사의 정수가 담겨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훌륭하다.
“혜나, 살 건 다 샀지? 이제 뭐할까? 저쪽 시가지 구경하러 갈까?”
“그래요. 근데 아빠, 우리 아직 와플을 못 먹어 봤잖아?”
“아, 맞다. 와플이 빠졌구나. 널린 게 와플 가게이니 하나 골라보자.”
그랑플라스를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 위로 늦여름의 하늘이 펼쳐져 있다. 채도 높은 푸른색 사이사이에 적당한 크기로 자리 잡고 있는 순백의 뭉게구름들, 화려한 고딕 양식의 건물들과 아주 멋진 조화를 이룬다. 회색 벽돌이 조밀하게 깔려 있는 광장을 무심히 가로지르는 회색 고양이도 마치 몇 백 년 동안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유유자적하다. 사흘로는 너무나 아쉽고 아까운 모습들이지만 와플을 먹고 나면 기억 속에 접어두어야 할 모습들이다.
와플은 토핑 없이 플레인으로 즐기라는 친구의 추천을 잊은 것은 아니지만 브뤼셀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와플인데 그냥 먹자니 아쉽기도 했고, 초콜릿 산다고 혜나 따라 걸어 다닌 거리가 생각보다 멀어서 당을 보충하고 싶기도 했다. 혜나는 딸기, 나는 캐러멜을 토핑으로 얹어 와플을 주문했다. 가게 앞 야외 테이블에 앉아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와플을 먹기 시작했다. 와플 먹기에 적당하게 허기가 진 상태였고, 날씨도 적당했다. 지나는 사람들도 적당히 있어 심심하지도, 걸리적거리지도 않았다. 한데, 몇 입 먹기도 전에 벌이 달려든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시달렸던 상황이 벨기에 시내 한복판에서 또다시 벌어지고 있다. 이 녀석들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파리들이 양반이다. 어찌나 끈질기게 덤벼드는지... 뒤편에는 일본인으로 보이는 노부부가 우리 모습을 재미있어한다. 저쪽 테이블엔 아직 먹을 게 없다. 아직까지는 강 건너 불구경일 테지만... 벌을 쫓아내며 옮겨갈 만한 자리를 찾다 눈이 마주쳤다. “다이죠부?” 역시 일본 사람이다. “괜찮아요. 물지는 않네요.” 벌이 쏜다는 일본어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 정도면 일본인은 아니라는 표시는 확실히 한 셈이다. 벌에 시달린 나머지 후다닥 와플을 먹어 치우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랑플라스 위쪽 시가지를 둘러보고 너무 늦지 않게 프랑크푸르트로 떠나기로 했다. 주차장에서 차를 꺼내 첫날 지나쳤던 브뤼셀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 주변에 차를 세운 후 벨기에 왕궁을 찾아갔다. 1830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벨기에는 입헌군주제를 선택한다. 왕실 가문이 될 만한 인물이 마땅치 않았던 벨기에는 독일의 공국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의 레오폴드라는 사람에게 왕이 되기를 청했다. 그는 벨기에의 제안을 받아들여 1831년 7월 21일 레오폴드 1세로 즉위한다. 이날은 벨기에의 국경일이 된다.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피비린내 나는 투쟁의 역사를 배워 온 우리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과정이다. 어쩌면 보잘것없는 작은 나라의 왕이라는 자리가 명문대가로 군림하는 것보다 시답잖은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200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역사를 갖고 있는 벨기에, 하지만 브뤼셀은 10세기 무렵부터 도시로 성장해 왔고, 브뤼허는 9세기에 만들어진 요새가 도시의 기원이다. 벨기에의 국가적 정체성에 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은 모양이다. 네덜란드어를 주로 사용하는 부유한 북부 사람들이 불어를 주로 사용하는 가난한 남부와의 결별을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고 일본과 50여 년을 싸웠고, 남한과 북한의 통일을 위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시민과 국민의 차이, 혹은 시민과 민족의 차이를 생각한다면 어쩌면 좀 더 이해가 쉬울 수도 있겠다. 특히 중서부 유럽 지역의 경우는 더더욱 국가보다는 도시 중심으로 사회가 돌아가고 어쩌면 그래서 유럽연합이라는 공동체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화폐가 통합되고 입출국과 통관에 장벽이 없는 유럽연합은 상당 부분 국가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큰 도시와는 인연이 없었던 탓에 벨기에 왕궁과 비교할만한 다른 왕궁을 가 보지는 못했다. 다만 블로그 등을 통해 평을 보면 영국이나 프랑스의 궁전들에 비해 규모도 작고 수수하고 검소하다고 한다. 다른 궁전들이 얼마나 화려하다는 건지, 내 눈에는 벨기에 왕궁도 충분히 화려하던데 말이다.
벨기에 왕궁은 브뤼셀 공원과 도로 하나를 두고 마주하고 있다. 웅장한 대리석 건물이며 앞에는 넓지는 않지만 깔끔하고 단정한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8월에서 9월 중순까지만 일반에게 개방한다고 한다. 이 또한 가는 날이 장날인 셈. 간단히 보안 검색을 한 후 정해진 코스대로 궁을 관람하게 된다.
스스로의 세력으로 국가를 장악하고 왕으로 군림한 것이 아니고, 입헌 군주제라는 체제를 수립한 후에 옹립한 왕실인지라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하면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겠지만 벨기에의 경제력에 걸맞은 수준의 화려함이 느껴진다. 아마도 왕실이 만들어진 당시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 법한 고풍스러운 가구들과 이제는 촛불 대신 전구로 교체된 샹들리에가 왕실의 품격을 이야기해 준다. 경회루나 근정전 같은 우리의 궁궐도 이렇게 실내로 들어가서 느껴 보고 싶어 진다.
왕궁 주변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밀집되어 있다. 떠나기 전 구글에서 검색하여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을 찜해 놓기는 했지만 시간이 없어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왕궁이 있는 언덕 위에서 그랑플라스를 내려다보며 브뤼셀과 작별을 고한다. 사흘 동안의 벨기에 여행, 짧지만 알찬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