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하이디 마을로 간 하이디

눌러앉아 하이디 아빠가 되고 싶은 곳

by 기타치는 사진가

우리가 향하고 있는 곳은 마이엔펠트라는 작은 도시이다. 인구가 2,500여 명 밖에 되지 않는, 마을이라고 부르는 편이 어울릴 만한 아담한 도시이다. 오스트리아 국경에 가깝고 리히텐슈타인과는 지척인 스위스의 동쪽 끝에 자리하고 있다. 취리히 출신인 소설가 요한나 슈피리(Johanna Spyri, 1827-1901)가 병약한 아들의 요양을 위해 공기 좋고 조용한 시골 마을인 마이엔펠트에 살면서 쓴 소설이 바로 하이디였다. 1881년 출판된 하이디는 5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될 정도로 인기를 얻었고 37년에는 할리우드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이디는 74년 일본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이 전 세계로 수출되면서 또다시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게 된다. 이 애니메이션은 철저하게 일본 냄새를 없애고 유럽의 입맛에 맞게 제작된 탓에 세계 어디서든 크게 인기를 얻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 오죽하면 혜나가 어릴 때 가장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이 하이디였을까.


마이엔펠트라는 자그마한 도시가 하이디의 배경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이 작은 도시를 찾게 된다.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와인 생산이 주 산업이던 마이엔펠트는 하이디를 찾아오는 관광객에 주목하고 1998년 하이디 복원 계획을 수립한다. 도시 윗편 농장 지대를 사들이고 곳곳에서 하이디 시절의 건물들을 구입하여 옮겨 놓는다. 하이디 마을을 위해 마이엔펠트를 찾는 관광객은 연간 4-5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하이디 마을 입장료가 14프랑인 걸 생각하면 인구 2,500여 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로서는 엄청난 부수입인 셈이다.


마이엔펠트가 가까워진 모양이다. 3Km 앞 휴게소 이름이 'Heidiland'라는 걸 보니. 잠시 휴게소에 들렀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스위스도 휴게소 화장실은 돈을 받는다. 화장실 입구에는 지하철 개찰구 같은 설비 위에 자동판매기 같은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0.5~1프랑 정도를 내고 들어가면 자동판매기에서 50~70%에 해당하는 금액의 쿠폰이 나온다. 이 쿠폰으로 휴게소 내에 있는 식당이나 편의점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이번엔 혜나와 내가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1프랑의 쿠폰이 생겨 박하사탕 하나를 구입했다.


역시나 마이엔펠트는 아주 자그마한 도시였고, 지금이라도 저 모퉁이에서 하이디가 염소를 몰고 나타날 것 같은 골목길로 이어져 있다. 일단 마을을 한 바퀴 돌면서 하이디 마을 가는 길을 찾았지만 걸어가는 길만 표지가 이어질 뿐 자동차로 가는 길은 내비게이션을 이용해야 할 것 같다. 찬찬히 마을 구경도 할 겸 점심을 먹기 위해 마을 공터에 차를 세우고 식당을 찾아 나섰다. 구글 지도를 보니 마을 입구에 관광안내소와 식당이 있다. 충분히 걸어갈 만한 거리. 햇살은 조금 따갑긴 하지만 상콤한 바람이 따가움을 달래준다.


조금 걸어 언덕길을 내려가니 저 멀리 관광안내소가 보인다. 길 건너편으로 한국인으로 보이는 한 가족이 모퉁이를 돌아 나온다. 대학생 정도 아들과 부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두리번거리는 모양새가 우리와 마찬가지로 관광안내소를 찾는 모양이다. 대화가 들린다. 한국인 맞고 관광안내소를 찾고 있다.


“관광안내소는 저 쪽에 있어요.”

“아하~ 한국분들이셨군요. 반갑습니다.”

“하이디 마을 찾아오셨나 봐요.”

“예. 근데 여기서 한참 걸어 올라가야 하는 모양이네요. 안내소 가서 좀 물어보려고요.”

“그러세요. 저흰 점심 먹고 천천히 가 보려고 합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저 쪽 가족도 우리처럼 대충만 알고 찾아온 모양이다. 관광안내소는 기념품 판매점을 겸하고 있다. 하이디와 관련된 제품들과 스위스 관광 기념품들을 팔고 있다. 하이디 마을에 관한 팸플릿을 하나 챙겨 나왔다. 아뿔싸, 팸플릿에 나와 있는 하이디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하이디가 아니었다. 눈이 커다랗고 뽀얀 피부에 노란 반팔티와 빨강 치마를 입은 귀여운 하이디가 아닌 훨씬 거칠고 억샌 시골 소녀의 모습이다. 머리는 될 대로 헝클어져 있고, 눈매는 날카롭다. 게다가 풀밭을 맨발로 딛고 서서 염소를 몰고 가는 모습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관광안내소 앞 게스트하우스를 겸하고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마치고 하이디 마을을 찾아갔다. 좁디좁은 시골 마을 골목길을 한참 동안 따라 들어가니 주차장이 나온다. 마을에선 보이지 않던 관광버스도 몇 대 서 있고 승용차도 생각보다 여러 대 주차되어 있다. 마을의 한적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주차장 위로 호텔이 보인다. 전적으로 하이디 마을을 찾는 관광객을 위한 호텔일 텐데 제법 규모가 있어 보인다. 하이디의 인기가 새삼 실감 나는 장면이다. 주차장 옆으로 하이디 마을 표지판을 따라 길을 나서면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은 비탈길로 이어진다. 하이디가 염소를 끌고 다녔을 법한 길이다. 왼편으로는 알프스 변방의 높은 산자락을 끼고, 오른편으로는 마이엔펠트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5분 정도 걸으니 하이디 마을이다.


마을에 들어서니 기념품 점을 끼고 자그마한 광장이 나온다. 대여섯 명 정도 되는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이 모여 있다. 해외 관광객 중 절반이 일본인이라더니... 일본인 말고는 아랍인 가족들이 많이 보인다. 아랍에서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건가, 아니면 아랍인 단체 관광객이 온 건가... 하이디 마을은 동화에 등장하는 마을을 그대로 꾸며 놓은 듯하다. 잠시 벤치에 앉아 마을과 사람들을 둘러본다. 하이디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여기저기 아는 체하며 만화와 현실을 오락가락 뛰어다닌다. 일본인 노부부는 그 아이들을 보면서 자녀들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있는 듯하다. 즐거운 웃음소리와 흐뭇한 미소가 서로 마주치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사랑스러운 파장을 만들어 내고 있다.


“여기까지 왔으니 기념품점은 들어가 봐야죠?” 혜나가 팔을 이끈다.

“그래. 당연하지.”


기념품 점에 들어가긴 했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에 워낙 익숙했던 탓인지 기념품 여기저기에 보이는 억센 유럽 아가씨 모습의 하이디는 도대체 익숙해질 것 같지가 않다. 염소 밥만 한 봉지 사들고 나왔다. 꾸리꾸리 한 냄새가 풍기는, 동물원에 가면 흔히 접하는 그런 봉지를 들고 혜나는 염소우리로 뛰어간다. 마을 돌담길 사이로 뛰어가는 혜나의 뒷모습이 하이디와 겹친다. 일부러 저런 옷을 골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천연염색에 가까운 연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혜나는 하이디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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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부터 냄새를 맡았는지 울타리로 염소들이 몰려든다. 어린 녀석들은 덩치 큰 녀석에 밀려 주는 밥도 못 먹는다. 혜나는 어린 녀석들부터 주려고 하지만 자기들끼리 밀쳐내고 주둥이를 들이미는 데에는 방법이 없는 모양이다. 결국 울타리 문을 열고 들어가 어린 녀석을 찾아 들어간 혜나는 염소들에 둘러 쌓여 버렸다. 3월에 찾았던 나라에선 사슴한테 시달리더니 스위스에선 염소라니... 염소 우리 안에서 염소와 놀고 있는 혜나를 보던 꼬마 아이들이 부모를 졸랐는지 한 둘씩 사료 봉지를 들고 우리 안으로 들어선다. 말은 안 통하지만 눈짓과 손짓으로 덜 먹은 녀석들을 찾아 밥을 주는 아이들의 모습이 예쁘다. 그래, 너희들이 모두 하이디구나.


하이디 마을에서 한참 시간을 보냈지만 마을에서 만났던 한국인 가족들은 끝내 만나지 못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설마 포기하고 돌아간 건 아니어야 하는데, 어쩌면 우리보다 좀 더 꼼꼼히 마이엔펠트를 살펴보면서 올라오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각자 스타일 대로, 형편대로 여행을 즐기면 그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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