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알프스에서 만난 별

쏟아지는 별 빛을 담는다.

by 기타치는 사진가

전화 벨소리에 잠을 깼다. 고등학교 동창이다. 여행 떠난 걸 모르는 녀석이 저녁에 술 한 잔 하자는 전화일 테지. 급한 일이면 다시 걸거나 문자를 보내겠지. 잠이 좀 더 깨기 전에 전화를 거절해버렸다. 문득 시간을 보니 새벽 4시 반, 커튼을 살짝 들춰 밤하늘을 살폈다. 지난밤 천둥 번개를 동반한 장대비는 거짓말처럼 물러가고 캄캄한 하늘엔 별이 가득하다. 잠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허둥지둥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겼다.


“얘들아, 밖에 하늘에 별이 가득해. 별구경하려면 따뜻하게 챙겨 입고 나와.”


혹시나 싶어 콜콜 자고 있는 아이들에게 살짝 이야기를 하고 나왔다. 티틀리스 전망대 쪽으로 오리온자리가 올라와 있다. 삼각대를 펼치고 카메라를 세팅하고 셔터 속도를 20초에 맞춘 후 셔터를 누른다. 두 컷 정도 찍고 있으니 아이들이 기지개를 켜며 나온다.


“우와… 별천지다.”

“이렇게 별 많은 거 첨 봐.”



혜진이도 자기 카메라를 꺼내 별을 담는다. 우리 때문에 새벽잠을 깼는지 필루가 나와서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저 사람들은 이 새벽에 뭐가 신나서 저러고 있는 걸까?’ 스위스에 사는 고양이라면 응당 궁금해했을 테지. 혜나는 별보다 말고 필루를 따라다닌다. 집에 있었으면 바로 고양이 캔을 꺼내 들었을 텐데.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별을 보고 살기를 바랐다. 아이들과 함께 중산에 있던 연세대학교 천문대를 찾아갔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추운 겨울, 호호 손을 불어가며 서툰 손으로 천체 망원경을 조작해 보고, 망원경 안으로 보이던 쌀알갱이 만한 동그라미와 그 원을 가로지르는 줄무늬, 동그라미 옆으로 나란히 놓인 세 개의 반짝이는 점들, 목성과 위성들이다. 그리고 내 눈으로 직접 본 토성과 토성의 띠는 아직도 가슴 뛰는 장면들이다.


그러고 나서 바로 중고로 천체 망원경을 구해서 베란다에 놓고 틈만 나면 아이들과 목성과 토성, 달과 플레하데스 성단 같은 것들을 찾아보곤 했다. 결국 나중에는 길 건너 빵집에 식빵이 남아 있는지를 확인하는 용도로 천체 망원경이 사용되기는 했지만 망원경의 덮개를 열고, 파인더를 조작해서 별을 찾고, 초점 링을 돌려 초점을 맞추고, 적도의를 조작해 가며 흐르는 별을 따라가는 일련의 작업들은 한동안 나와 아이들의 즐거운 놀이였다.


동네 사람들 깰까 싶어 조용조용히 사진도 찍고 별 이야기도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동쪽 산 너머로 푸르스름한 빛이 까맣던 하늘에 물감 퍼지듯 번저온다. 어제저녁 밀린 빨래를 하느라 늦은 시간까지 움직였던 탓인지 다시 졸음이 밀려온다. 다시 침대로 들어가 마저 이어 잠을 청한다.


20180823-NDF_8234.jpg


잠시 눈을 붙였나 싶었는데 밖이 환하다. 한 시간쯤 잔 모양이다. 아이들은 아직 자고 있고, 카메라만 챙겨 밖으로 나왔다. 새벽의 투명한 하늘은 아침까지 그대로 이어져 별빛만큼이나 투명한 햇살이 언덕 위 자그마한 마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아래쪽 마을도 이미 아침의 활기로 북적이는 듯하다. 주인 아가씨의 남편과 그 위층에 산다는 경찰관 아가씨는 이미 출근한 모양이다. 새벽에 보이던 차들이 이젠 보이지 않는다. 카메라를 들고 골목을 올라가 본다. 아침 일찍 산책을 나온 아저씨와 꼬마들, 앞마당의 흔들의자에 앉아 아침 햇살을 즐기는 할아버지,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지나친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바위 산 위에는 이제는 골짜기에 조금씩 눈의 흔적만 남아 있다. 십수 년 전만 해도 두텁게 덮여 있었을 텐데.


마을을 이루고 있는 각각의 집들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있다. 마당은 야트막한 담장으로 경계를 두고 있다. 목조 주택도 있고 벽돌집도 있지만 90도로 꺾여 있는 지붕 덕분에 다들 비슷비슷해 보인다. 아무래도 눈이 많이 오는 동네이다 보니 지붕의 경사가 제법 높아야 하는 모양이다. 어느 집이든 잘 가꾼 꽃과 풀들이 예쁘게 자라고 있다.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들을 보면 평범한 중산층 마을이다. 고만고만한 준중형 크기의 5년 이상된 차들이 대부분이다. 가파른 지붕들이 이어져 있는 모습과 그 너머로 펼쳐지는 알프스의 봉우리들이 겹쳐 보인다. 낙안읍성의 초가지붕들이 뒷산인 금전산의 산세와 닮아 있듯이, 결국 사람의 삶은 살아가는 자연을 닮게 마련이다.


언덕을 내려오다 보니 혜진이와 혜나도 동네를 어슬렁 거리고 있다. 새벽에 따라다니던 필루는 보이지 않는다. 두 녀석이 고개를 숙이고 몰두해 있는 걸 보니 뭔가를 발견한 모양이다. 다가가 보니 어제부터 자주 눈에 띄던 민달팽이를 구경하는 중이다.


“이 동네 민달팽이들은 색깔도 진하고, 덩치도 크고, 속도도 빠른 것 같아.” 역시 알프스는 민달팽이도 건강하다.

“대충 구경하고 민트랑 매콤한 꽃 좀 따와. 샐러드에 넣게.”


고추의 매운맛과는 다른, 살짝 후추의 매운맛에 가까운 맛이 평범한 샐러드와 섞이니 색다른 맛이 난다. 그 안에서 민트 잎은 신선함을 더해주고 있다. 냉장고에 있던 메추리 알은 대여섯 개를 깨서 기름에 지졌다. 계란보다는 가볍고 고소한 맛이다. 색다른 맛으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가지고 있던 생수병들을 싱크대의 수돗물로 가득 채운 후 오늘의 여행을 떠난다. 오늘은 혜나가 선택한 하이디 마을이다. 알프스를 즐기기엔 최고의 날씨이다.



keyword
이전 20화19. 알프스 깊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