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파티가 전혀 신나지 않다니

겨우 10만? 갈 길이 멀다

by 기타치는 사진가

학생들의 놀이터였던 하이텔과 직장인들의 서재였던 천리안, 그리고 통제받지 않는 자유를 꿈꾸던 사설 BBS가 공존하던 1993년의 가을, 밖으로는 경쟁에 뒤쳐지고, 안에서는 돈 못버는 미운 오리 새끼였던 천리안. 디지털 강국 대한민국의 기틀을 쌓아간 PC 통신 초창기의 내밀한 연대기를 만나보세요.




1993년 하반기, 대한민국 PC 통신 시장은 한국PC통신의 하이텔과 데이콤의 천리안이 양분하고 있었다. 1989년 한국경제신문사가 기사와 증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었던 ‘케텔(KETEL)’을 KT가 자회사인 한국 PC통신을 통해 인수하며 ‘하이텔’로 이름을 바꾸어 본격적인 공세에 나선 터였다. 천리안 역시 동호회와 채팅 위주의 ‘피씨서브(PC-Serve)’를 정보 서비스 중심의 ‘천리안’으로 통합하며 전열을 가다듬고 하이텔과 맞서고 있었다.


두 서비스의 기능은 비슷했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요금제에 있었다. 하이텔이 월 1만 원 안팎의 정액제로 모든 기능을 무제한 제공한 반면, 천리안은 기본요금에 더해 분당 이용료를 매기는 ‘종량제’를 고수했다. 채팅이나 게시판 같은 기본 서비스도 분당 15원 정도를 내야 했고, 전문 증권 정보의 경우 분당 500원에 달하는 고가 서비스도 존재했다.


이 요금의 차이가 두 서비스의 풍경을 극명하게 갈라놓았다. 93년 가을, 하이텔은 이미 20만 명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하며 저 멀리 앞서가고 있었다. 정액제의 위력에 더해 전국 우체국 망을 동원해 전용 단말기를 무상으로 뿌린 물량 공세가 주효했다. 컴퓨터가 귀하던 시절, 우체국에 신청만 하면 공짜로 단말기를 빌려주던 하이텔의 공세는 가히 파괴적이었다. 반면 천리안은 시곗바늘과 함께 올라가는 요금 부담에 사용자들이 몸을 사렸고, 야심 차게 만든 전용 단말기마저 배포처를 찾지 못한 채 창고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나마 천리안이 버틸 수 있었던 건 역설적이게도 ‘유료’라는 점 덕분이었다. 무제한인 하이텔은 늘 접속 폭주로 ‘하늘의 별 따기’였던 반면, 필요한 만큼만 쓰고 나가는 천리안은 언제든 쾌적하게 접속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하이텔은 왁자지껄한 커뮤니티가, 천리안은 신뢰도 높은 유료 정보 서비스가 강점으로 자리 잡았다. 자연스레 이용자 층도 갈렸다. 하이텔은 학생들의 놀이터였고, 천리안은 직장인들의 서재였다. ‘동호회는 하이텔, 정보는 천리안’, 당시 두 서비스를 특징짓는 문장이었다.


천리안과 하이텔이 제도권의 영역이었다면 사설 BBS(Bulletin Board System)라는 소규모 공동체가 제도권 밖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설 BBS는 개인이 자신의 컴퓨터를 서버로 활용하여 다른 사용자의 접속을 받아 소규모로 PC통신 서비스를 운영하는 서비스였다. 대부분 한 회선이어서 누군가가 접속해 있으면 다른 사용자는 접속을 못하고 기다려야 했고, 대형이라고 해봐야 다섯 회선 정도가 거의 최대 규모였다. 천리안이나 하이텔과는 달리 특정한 주제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인 데다, ‘운영자’의 간섭도 거의 없다시피해서 많은 얼리어댑터가 최신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오아시스 역할을 했다. 그래봐야 이용자는 극소수였지만, 서슬 퍼런 군부 독재 시대에 사설 BBS는 통제받지 않는 정보 유통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해방구였다. 특히 ‘잠들지 않는 남도’라는 BBS는 80년 광주의 실상을 알리는 거의 유일한 통로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천리안의 미래는 우울했다. 가입 기반 서비스의 특성상 하이텔에서 첫 경험을 시작한 젊은 층을 뺏어오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회사 전체가 국제전화 002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이던 상황에서, 매출 비중이 고작 3~5%에 불과하고 수익도 내지 못하는 천리안에 예산을 더 달라는 말은 경영진에게 통하지 않았다. 성지빌딩 6층에 감돌던 무거운 적막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런 정황도 모른 채 ‘천리안 만세’를 외치며 뛰어든 내가 선배들 눈에 얼마나 철없어 보였을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런 와중에도 잠시나마 사무실이 들썩였던 순간이 있었다. 바로 ‘가입자 10만 명 돌파’의 순간이었다. 지금 보면 소박한 숫자지만, 자릿수가 바뀌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쳐 있던 팀원들에게는 작은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축하 파티는 소박했다. 파티션 너머로 과자와 캔맥주를 나누는 와중에도 커다란 환호성은 터져 나오지 않았다. 하이텔과의 격차는 여전히 컸고, 여기까지 오는 데 이미 너무 많은 기운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용히 맥주를 들이켜고는 이내 각자의 모니터 앞으로 돌아갔다.


그 무렵, 우리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준 사건이 하나 더 있었다. 내가 입사하기 직전인 7월, 시내전화 요금 체계가 획기적으로 바뀐 것이다. 이전까지는 한 번 걸면 무제한으로 써도 20원(1도수)만 내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는 3분당 30원으로 과금 방식이 변경되었다. ‘밤새 하이텔에서 놀던 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신호탄이었다. 물론 천리안 이용자에게도 부담이었지만, 하이텔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외부 변수라는 점에서 우리에겐 아주 작은 반격의 기회처럼 느껴졌다.




이 글은 오롯이 필자의 주관적인 기억에 의존하여 기술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당시의 팩트와 일부 다를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혹시 제가 잘못 기억하고 있거나, 여러분만의 소중한 그 시절 추억이 있다면 언제든 댓글로 들려주세요. 함께 추억의 퍼즐을 맞춰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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