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못 버는 부서, 그 우울한 분위기를 경험한 적 있을까?
연수 과정에서 느꼈던 ‘싸함’은 부가통신사업본부가 있던 용산 성지빌딩 6층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현실이 되었다. 한강을 굽어보며 위용을 자랑하던 한강로 데이콤 본사 사옥에 공간이 부족해지자, 데이터 서비스 관련 부서를 용산역 광장 옆 성지빌딩으로 모아놓은 터였다.
당시 용산역 광장은 지금의 화려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텅 빈 아스팔트 위론 비둘기 떼만 모여 모이를 쪼아대고 있었고, 담벼락에는 노숙자들이 삼삼오오 벽에 기대어 햇볕을 쬐고 있었다. 군병력을 수송하는 TMO(철도수송지원반)가 용산역에 있었던 터라 더플백을 둘러 맨 군인들의 모습도 일상이었다.
그 한편에 자리한 성지빌딩은 80년대부터 ‘성지학원’이 사용해 온 건물로, 최신식 시설을 갖춘 본사와 달리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낡은 빌딩이었다. 하지만 낡은 시설보다 더 당혹스러웠던 것은 넓게 트인 공간을 가득 채운 기묘한 ‘적막’이었다. 용산역 광장의 공허함과 우울함이 사무실 공간으로 그대로 옮겨온 듯했다. 미래를 이끄는 최첨단 서비스를 만들어 나가는 열기나 활기찬 토론 같은 것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쭈뼛거리며 들어선 낯선 얼굴을 궁금해하는 이도 없었다.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책상 위 모니터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J 대리의 모습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부가통신사업본부로 배치된 20여 명의 신입사원이 회의실에 모이고, 교육을 담당한 H 선배의 인사말을 듣는 순간 나의 불길한 예감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부가통신사업본부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3년 만에 처음으로 받는 신입사원인 만큼, 여러분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해 지도하겠습니다.”
3년 만에 처음 받는 신입사원이라니. 내가 군대에서 천리안을 이용하던 그 긴 시간 동안, 이곳엔 단 한 명의 신입도 수혈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바로 내 위 사수가 3년 전 마지막 신입이었던 H 선배였다. 선배의 환한 미소는 단순히 친절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드디어 ‘막내 탈출’을 하게 된 이의 진심 어린 환희였음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신입사원 환영을 위해 회의실을 찾은 각 부서 책임자들 역시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말을 남겼다.
“여러분이 침체된 본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길 기대합니다.”
며칠 후, 반가운 얼굴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대학 선배였다.
“이야, 동구야 반갑다! 여기서 널 만날 줄이야. 이번 주 금요일에 서울대 출신 신입사원 환영회를 하기로 했으니 본사 옆 중국집으로 7시까지 와라.”
환영회 자리에는 선배와 신입을 합쳐 20명 정도가 모였다. 대부분 기획, 전략, 혹은 돈을 쓸어 담는다는 국제전화 부서 소속이었다. 어느 정도 술기운이 오르자 선배 한 명이 조용히 내 잔을 채우며 물었다.
“넌 어쩌다 부가통신으로 발령받은 거야? 인사팀에서 뭔가 실수가 있었던 것 같은데, 조금만 참고 기다려 봐. 다음 인사이동 때 내가 힘 좀 써서 옮겨 줄게.”
처음엔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선배의 표정에서 많은 의미를 읽을 수 있었다.
“아 아닙니다, 선배님. 저 1, 2, 3 지망 모두 부가통신사업본부를 지원했습니다. 천리안 일을 하고 싶어서 데이콤에 온 거거든요.”
잔을 들려던 선배의 손이 멈췄다.
“자네가 바로 그 괴짜였나? 올해 신입사원 중에 부가통신 지원자가 유독 많다더니, 그중에서도 1 지망부터 3 지망까지 전부 써낸 이상한 놈이 있다고 소문이 파다했는데… 그게 자네였군. 아무튼 열심히 해보고, 정 힘들면 언제든 말해.”
회사 내에서 천리안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뼈저리게 확인한 순간이었다. 회사 밖에서는 선망의 대상이었던 ‘천리안’이, 회사 안에서는 ‘엘리트라면 기피해야 할 변방’ 취급을 받고 있었다.
부서의 홀대와는 별개로, 사내에서는 ‘장교 특채’라는 이례적인 인사에 대한 거부감도 노골적으로 흘러나왔다. “장교 출신이라며?”라는 인사치레 뒤에는 은근한 무시와 조롱이 섞여 있었다. 고시 수준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한 선배들 눈에, ‘장교’ 타이틀로 비교적 수월하게 들어온 후배들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결국 노동조합의 강력한 요구로 우리의 실력을 파악하겠다는 명목하에 장교 특채 신입사원 전원을 대상으로 토익 시험이 치러졌다. 다행히 나는 기존 입사 커트라인을 간신히 넘겼지만, 우리 동기 중 그 기준을 통과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렇게 선배들의 따가운 눈총과 ‘눈칫밥’을 곁들인 나의 직장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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