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의 폭염보다 뜨거웠던 성지빌딩 6층
94년은 유난히 사건사고가 많았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면서 전국에 비상 경계령이 선포되기도 했고,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충주호에서는 유람선이 침몰하는 등 굵직한 사건도 있었다. 미국 월드컵 경기를 보느라 새벽까지 밤을 설치기도 했고, ‘난 알아요’로 화려하게 데뷔했던 서태지는 ‘발해를 꿈꾸며’, ‘교실 이데아’ 등이 실린 3집을 발표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이어갔다. 이러한 사건들은 PC통신을 통해 신문이나 방송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요즘으로 치면 SNS 비슷한 모습으로 조금씩 PC통신이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천리안의 시간은 천천히, 지루하게 흘러갔다. 커뮤니티/콘텐츠/커머스로 나눈 천리안의 3단계 초기 화면은 두 달이 지나지 않아 하이텔과 나우누리도 비슷하게 따라 했고, 014XY 번호 체계가 도입되면서 전화요금에 대한 소비자의 부담도 어느 정도 완화되기는 했다. 여전히 천리안은 하이텔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으며, 이제는 나우누리의 추격에서도 벗어나야 한다는 부담이 더해졌다. PC통신 세 업체 간의 IP확보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PC통신은 이미 방송과 밀접하게 협업하는 관계가 되었다. 트렌디한 드라마는 PC통신 서비스에 시청자 게시판을 만들어 운영하기 시작했고, 이 서비스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은 IP(Information Provider:정보제공자)를 발굴하는 경쟁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특히 1994년 초 방영했던 ‘마지막 승부’는 새로운 세계를 연 신호탄이었다. 매주 월요일, 화요일 11시 정도에 드라마가 끝나면 천리안 운영팀은 우리만의 승부를 벌여야 했다. 방송을 보고 의견을 남기는 이용자들이 천리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게시판은 마비되기 일쑤였다. 지금으로 치면 드라마 끝나자마자 트위터에 실검이 뜨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트래픽을 받아내는 서버가 지금처럼 튼튼하지 않았다는 것. 매주 월·화요일 밤, 드라마가 끝나는 순간 게시판은 15분을 못 버티고 쓰러졌다. 운영부서의 '마지막 승부'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후속 주자였던 나우누리는 기존의 하이텔과 천리안을 따라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4.4 Kbps 모뎀 접속 서비스를 가장 먼저 시작했고, 윈도우에서 돌아가는 에뮬레이터를 최초로 서비스했다. 동호회도 적극적으로 유치하면서 천리안에 위협을 가해왔다. 천리안 역시 이미지를 콘텐츠로 제공할 수 있는 DL2(Dacom Link 2)를 배포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 즈음해서 미국의 아메리카 온라인 America Online:AOL이 100만 가입자를 돌파하며 컴퓨서브와 프로디지를 앞서기 시작했다. 미국 역시 PC통신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자리 잡으면서 매주 새로운 서비스가 경쟁적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서비스 기획 업무를 담당하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메뉴 화면하고 씨름하고 있던 나로서는 답답했다. 세상은 온통 참신하고 기발한 서비스를 하루가 멀다 하고 내놓고 있는데 IP영업부에서 들어오는 요청만 처리하기에는 세상은 너무나 빨리 돌아가고 있었다. 나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매주 국내 경쟁사와 미국의 PC통신 3사에서 신규로 서비스하는 내용을 정리하고 보고서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사내에서 사용하던 텍스트 기반의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을 이용했지만 이미 그래픽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던 프로디지와 AOL의 내용을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를 설치하고 그래픽 화면을 캡처하여 문서에 삽입했다.
부가통신사업본부에만 배포하던 보고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실까지 올라가게 되고, 내 책상에는 컬러 프린터가 놓였다. 컬러로 화려하게 작성된 보고서는 확실히 눈길을 끌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보고서를 반긴 것은 아니었다. 사건은 보고서를 발행한 지 두 달쯤 지났을 때 터졌다.
"이동구라는 놈이 누구야? 당장 이리 와!"
타 부서에서 천리안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IP 영업부장의 불호령이 사무실을 갈랐다.
“제가 이동구인데요…”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른 얼굴로 그가 내던진 것은 다름 아닌 얼마 전 작성했던 경쟁사 동향 보고서였다.
"우리라고 노는 줄 알아?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만드는 거야!"
‘경쟁사는 이런 것도 하는데 우리는 뭐 하느냐’는 호된 질책을 받은 모양이었다.
듣다 보니 짜증이 밀려왔다.
"저는 상황만 정리했을 뿐입니다. 신규 IP 정보가 있으면 공유해 주시던가요! 하이텔이나 나우누리보다 천리안에서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더 모르고 있다는 게 말이 됩니까?”
목소리가 높아지자 선배들이 황급히 나를 끌어냈다. 퇴근하고 동기 몇 명과 술을 마시면서 화를 풀어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싸가지 없는 녀석’이라는 딱지가 붙은 건 아마도 이 사건 때문인 듯하다.
다음 날, 뽀얀 담배 연기가 자욱한 계단 흡연실에서 IP영업부장과 마주쳤다. "부장님, 어제는 제가 무례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먼저 건넨 사과에 부장님도 쑥스러운 듯 껄껄 웃으며 내 어깨를 쳤다. "너한테 화풀이할 게 아니었는데 나도 지나쳤다. 인마." 이 사건 이후에도 신규 서비스에 대한 영업부의 브리핑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인 기억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므로 팩트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정보에 대한 수정이나 PC통신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고 싶으신 독자께서는 댓글로 자유롭게 참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