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쳐가던 그 순간

문득 찾아온 인생의 전환점

by 기타치는 사진가

부가통신사업본부의 분위기는 여전히 하이텔에 밀리고 나우누리에 쫓기는 상황으로 무거웠지만, '직장'으로서의 데이콤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곳이었다.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는 이건희 회장의 지시에 따라 삼성은 7시 출근-4시 퇴근 정책이 세상을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지만 데이콤은 크게 변화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지는 않았다. 삼성이나 현대 같은 거대 재벌 그룹의 계열사가 '총수'의 말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군대식 문화를 고수할 때, 데이콤은 주인 없는 전문 경영인 체제 아래서 묘한 자유로움을 누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노동조합의 힘이 재벌 그룹 계열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했고, 데이콤은 근로기준법을 훨씬 상회하는 파격적인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당시 다른 대기업 직원이 토요일 아침에도 넥타이를 조여 매고 출근길에 오를 때, 데이콤은 이미 주 5일 근무라는 신세계를 열어젖혔다. 물론 정부 부처와의 형평성을 이유로 매월 마지막 토요일만 오전 근무를 하는 '조건부'였지만, 남들 일할 때 쉰다는 우월감은 대단했다. 여기에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던 자녀 학자금 지원과 높은 연봉 수준은 데이콤을 대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장 1위로 올려놓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 화려한 복지의 그늘 아래서 나의 일상은 갈수록 피폐해져 갔다. IP영업부에서 마케팅부로 소속이 바뀌었고, 홍보팀에서 넘어온 새 마케팅 부장은 '보여주기식 행사'에 집착했다. 정부 부처와 방송국 등 언론이 관심을 가질만한 서비스를 붙이는데 열심이었다. 우리는 한 달에 두어 번씩 육중한 브라운관 모니터와 본체를 들고 회사 밖으로 나갔다. 당시 내가 타고 다니던 프라이드는 문짝이 두 개 밖에 없는 자그마한 차였지만 해치백인 데다 뒷좌석을 접을 수 있어 PC를 열 세트까지 실을 수 있었다. 컴퓨터를 나를 때마다 내 차가 우선 차출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방송국 로비, 감사원 복도, 심지어 국회의원회관까지. 10여 대의 컴퓨터를 옮기고, 전화선을 연결하고 삑-익 소리를 내며 연결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최첨단 IT 종사자가 아니라 이삿짐센터 직원 같은 자괴감을 느껴야 했다. “그건 저 쪽으로 옮겨요.” 턱으로 지시하는 방송국 직원, 무표정한 얼굴로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방관하는 공무원 틈에서 먼지 섞인 전선을 만지며 컴퓨터를 설치하고 나면,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맥락 없는 아이디어 회의에 시달렸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새로 부임한 과장은 ‘쥐어짜면 뭐든 나온다’는 철학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밤늦게까지 직원을 붙잡아 둔 채 머리카락을 꼬으며 '무언가 참신한 것'을 내놓으라고 닦달했다. 늦은 시간까지 직원들은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과시형 부장과 쥐어짜기형 과장의 조합은 최악이었다. 엑셀로 데이터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써야 할 시간은 늘 자정을 넘겨서야 찾아왔다.


‘이 길이 맞는 걸까?’, ‘당신이 안 나가면 내가 나간다’, ‘조금만 버티면 인사이동이 있을 테니 기다려 볼까?’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어느 날 밤이었다.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나 적막해진 사무실에 홀로 남았다. 형광등 불빛 아래 먼지만 떠다니는 넓은 공간에서 유일하게 생동감이 넘치는 곳은 저 멀리 개발팀 구역뿐이었다. 그곳엔 늘 모니터 화면을 노려보며 분주하게 손가락을 놀려 코딩을 하는 '야근의 동지들'이 있었다. 우리는 담배 연기 자욱한 계단 흡연실에서 말없이 불을 빌려주며 전우애를 다지던 사이였다. 개발자끼리 나누는 대화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암호였지만 멋있어 보였다.


그때였다. 평소 깐깐하고 날 선 성격으로 유명해 말 붙이기조차 어려웠던 개발팀 J과장이 소리 없이 내 등 뒤로 다가왔다. 나는 그가 온 줄도 모른 채 클리퍼를 이용해 나만의 데이터 분석 툴을 만드는 로직에 빠져 있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냐?"

등 뒤에서 들려온 까랑까랑한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잔뜩 긴장한 채 내가 짠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와 DB 구조를 설명하자, 그는 한참 동안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금테 안경 너머로 비친 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리고 툭 던진 한마디.

"그런 거 만드는 게 재밌냐? 그럴 거면 아예 저리 와서 개발을 하지 그래?"

“C언어는 하나도 모르는데 어떻게 옮겨요…”

“와서 배우면 되지. 저기도 전산 전공했던 사람은 별로 없어. 오히려 너 같은 놈이 더 잘할 수 있어.”


농담 섞인 말투였지만, 내 귀에는 구원의 복음처럼 들렸다. 마케팅 부서의 소모적인 행사와 맥락 없는 회의에 지쳐가던 내게, J과장의 그 한마디는 단순한 권유가 아니라 내가 있어야 할 진짜 '전장'으로의 초대장이었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과장이 바뀌기를 기다릴 게 아니라, 내가 자리를 옮길 수도 있다는 것을.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인 기억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므로 팩트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정보에 대한 수정이나 PC통신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고 싶으신 독자께서는 댓글로 자유롭게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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