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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사진가 Aug 10. 2015

베란다에서 만나는 생명의 경이

다육이들이 살아가는 곳...

햇살 좋은 일요일 아침, 기분 좋게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커피를 내려 거실 창문으로 바깥 날씨를 살피는데 유독 오늘따라 투명한 초록이 눈에 들어온다. 밖에서 들어오는 빛은 아닌데, 뭐지? 아래로 시선을 돌리니 이름 모를 식물이 아침 햇살을 투과시키며 초록으로 빛나고 있다. 유심히 살피다 보니 초록도 제각각이다. 제법 두터운 잎을 어렵사리 뚫고 나온 기운 빠진 초록도 있고, 얄팍한 어린 잎을 휘리릭 지나온 경쾌한 초록도 보인다.  어린아이의 솜털 같은 실루엣도 언뜻 눈에 들어온다. 바로 카메라에 매크로 렌즈를 물리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다육식물들이 우리 집에 살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없다. 어느  날부터 쪼끄만 화분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지금 집으로 이사 온 이후 남향의 양지바른 베란다는 다육이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틈만 나면 아이들하고 아내하고 베란다 끝에서 수다를 떠는 것 같더라니 다육이들 이야기다. 이름 가지고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벌레가 생겼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하고, 죽었다고  아쉬워하기도 한다.


'저런 게 뭐 저리 이야깃거리가 되는지... 여자들이란...' 내 놓고 말은 안 했지만 우리 집 여성들의 취향에 쉽사리 동의할 수는 없었다. 다 거기서 거기, 비슷비슷하구먼, 왜 저리 일거리들을 만들면서 사는지... 인근에 있는 선인장 연구소 구경 간다고 나설 때도, 난 집에서 낮잠을 잤다. 조용했던 집이 떠들썩해진다. 여자들이 돌아온 모양. 선인장연구소에서 사 온 것과, 주워 온 것들 가지고 정리하면서 수다꽃이 핀다. 여자들이란... 거 참...


주말 아침마다 다육식물들을 찍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초록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무튼 다육이들은 그렇게 나를 자신들의 세계로 초대했고, 그 덕분에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었다. 일요일 아침이면 부지런히 일어나 해가 높아지기 전에 열심히 다육이들을 찍었다. 쨍하게 맑은 겨울날, 나지막이 비집고 들어오는 겨울 햇살은 다육이들의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찾아 낼 수 있는 훌륭한 조명이 된다. 해가 조금만 높아지더라도 투과된 빛이나 실루엣을 잡기엔 앵글이 나오질 않는다.


일요일 아침, 찍은 사진을 정리하면서 후보정 작업을 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눈을 비비고 나온다. 세수도 하지 않은 녀석들을 붙들고 사진 속의 다육이들 이름을 물어본다. 세 번에 한 번 꼴로  "지난번에 가르쳐 줬잖아." 핀잔을 듣지만 상관없다. 사진으로는 어느 녀석인지 몰라 실물을 알려줘야 답이 나오는 경우도 세 번에 한 번은 되니까. "맨날 들여다 보면서 이름을 몰라?"


생명이라는 것이 어느 하나 안 그런 것이 있겠냐 마는, 다육식물의 생명력은 놀랍다. 어쩌다가 한 조각이 흙 위에 떨어지면 그 자리에서 뿌리가 나오고 새로운 줄기가 돋는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꽃을 피우지도 않고, 땅에 꽂아 주지도 않는데 그냥 스스로의 생명을 이어 나간다. 그 형태와 색상 또한 어찌 그리 제각각인지. 비슷비슷한 놈들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렌즈로 들여다 보면서 제각각의 개성이 보인다. 굳이 렌즈를 통하지 않더라도 조금만 관심 있게  살펴보면 어찌 이렇게 자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기묘묘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오랜 시간 극단적인 환경에 적응하면서 진화해 온 결과일 테지.


매크로 렌즈는 사람의 시선과는 전혀 다른 시선을 제공해 준다.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는 세상과 실제 세상의 중간쯤 되는 시선이랄까? 눈으로는 보기 힘든 디테일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 준다는 점에서 매크로 렌즈는 참 매력적이다. 그 덕분에 눈으로는 찾기 힘든 벌레 알을 미리 찾아 다육이를 구해낸 경우도 있다. 나야 그게 벌레 알인지 씨눈인지 알 턱이 없지만 사진 보면서 이름 알려주던 딸아이는 바로 짚어낸다. 그리고는 후다닥 뛰어가 화분을 격리 수용하고 치료에 들어간다. 사진 찍는 아빠가 그나마 도움되는 구석이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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