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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사진가 Jun 15. 2016

제주를 닮은 그 길, 카라쓰올레길

규슈올레길 맛보기, 그리고 카라쓰 맛보기






짧은 여행일수록 별 준비 없이 떠난다. 한두 가지 타깃만 설정하고 나머지 일정은 현지에서 해결해 나간다. 우연과 긴장으로 양념이 보태지는 여행이 훨씬 재미있고 기억에 오래 남기 때문이다. 게다가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인지 읽을 수 있는 20년 지기 친구들과 보내는 1박 2일의 짧은 여행은 그냥 그 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즐거운 여행이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 세세한 것을 관찰하고 생각하기 좋아하는 호기심 많은 선배, 그리고 나, 카라쓰에 올레길이 있다더라는 정보만으로 후쿠오카에서 카라쓰로 향했다. 호텔에 짐을 풀고 택시를 탔다. 무려 5천 몇백 엔을 택시비로 내고 하도미사키(波戸岬) 해안에 내렸다. 카라쓰올레의 시작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침략을 준비하며 쌓았던 나고야성(名護屋城) 유적지이다. 하도미사키는 사실상 카라쓰올레의 종점인 셈이다. 코스는 11Km 정도로 산길과 바닷길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무난한 코스라고 한다. 전날 후쿠오카에서 무리하게 일본 소주와 이자카야 음식을 즐겼던 탓에 코스 전체를 걷는 것은 무리였다. 규슈올레 안내 책자에서 읽었던 하도미사키 해안의 소라구이가 궁금했기에 바로 이 곳으로 달려온 것. 





소라구이 좌판이 펼쳐져 있는 주차장을 지나 해안으로 나오니 익숙한 올레길 표지가 보인다. 잠깐이라도 올레길을 느껴 보고자 표지판을 따라간다. 섭지코지 해안 같기도 하고, 용두암 주변의 풍광 같기도 하고... 무척이나 제주도스러운 바다 풍경이 펼쳐진다. 저 바다 건너엔 바로 한반도가 자리하고 있다. 이 곳에서 조선침략의 야욕을 불태웠을 도요토미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한반도를 바라보았을 자리엔 '연인의 성지'라며 하트 조형물이 자리 잡고 있다. 




바다를 끼고 30분 정도 걷고 나니 출발했던 주차장으로 돌아온다. 이제 소라구이를 먹어볼 시간이다. 주차장 노점에서 예의 소라구이와 오징어구이에 소주 한 잔씩을 가볍게 하고 버스를 타고 카라쓰 시내로 돌아왔다. 셋의 버스비를 합치니 4,500엔 정도... 역시 일본의 교통비는 무섭다. 다음엔 반드시 자동차를 렌트해서 와야 할 동네. 소라구이는 한 번쯤 경험해 볼만한 맛이다. 주야장천 앉아서 소주잔을 기울일 건 아니고 올레길을 돌고 나서 잠시 쉬면서 목을 축이는 정도로 좋을 듯하다. 






다시 카라쓰 시내로 돌아와 어슬렁거리며 골목길을 기웃거리다 보니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떨어지고, 조용한 시골마을은 노을로 덮인다. 전날 마신 술기운을 이기지 못한 한 친구는 고추장 타령을 하다 결국 두 시간 후를 기약하며 호텔방으로 가 버리고, 호기심 선배와 둘이 카라쓰 거리를 배회한다. 이런저런 일본의 문화와 사는 모습, 우리와의 비교 등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면서 거리를 거닐고 있지만 기실 우리가 찾는 것은 적당히 두 시간을 보낼만한 선술집이다. 조용한 도시에서도 비교적 외곽에 자리한 호텔 주변에는 무심하게도 그 흔한 이자카야가 보이질 않는다. 그냥 걷는다.








츠타야 책방도 지나고, 가스토 레스토랑도 지나고 서너 블록 정도 걸었을까? 야끼니꾸 집과 라멘집이 나란히 보인다. 호기심 선배에게 선택권을 준다. 


"형, 라멘? 아니면 불고기?"


그다지 만족스러운 표정은 아니다. 가볍게 한 잔 하기엔 둘 다 딱 맞는 가게는 아니지. 주변을 둘러봤지만 마땅한 대안은 없다. 결국 야끼니꾸 집으로...

https://goo.gl/maps/9DgwnSa99fT2


자그마한 가게에는 의외로 손님이 많다. 2층으로 자리를 잡고 토리아에즈 비루를 주문한다. (일본 사람들은 자리에 앉으면서 마실 걸 먼저 주문한다. 대부분 생맥주를 시킨다.)


맥주와 함께 안주거리를 내오는데 김치와 풋고추. 어라, 일본스럽지 않다. 김치를 한 입 먹어 보니 기무치가 아니다. 그냥 김치다. 잘 익은 배추김치. 바로 사진을 찍어 호텔에 뻗어 있을 친구에게 보낸다. 


메뉴를 고르고 있는데 사장님이 말을 걸어온다. 어라, 한국말이다. 제일교포시란다. 야끼니꾸 집이니 소고기와 순두부찌개를 시켰다. 가볍게 마실 소주 한 병과 얼음 세트도 함께. 소주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로. 


카라쓰 변두리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를 들어온 우리들만큼이나, 이 곳을 찾은 한국인들이 신기하신 모양이다. 사장님이 계속 말을 붙이신다. 서비스라며 일본제 생막걸리도 한 통 주셨다. 막걸리 맛이 제대로 익었다. 


막걸리 한 통을 비울 때 즈음해서 김치를 찾아 달려온 친구가 도착했다. 얼큰한 게 없으면 이틀을 못 견디는 친구는 맛난 와규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순두부찌개를 퍼먹는다. 넌 운이 억세게 좋은 녀석이다. 결국 이 집에서도 720ml(4홉들이) 소주를 두 병을 비우고 일어섰다. 따뜻하게 동포를 맞이해 주신 김 사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다음날은 아침부터 비가 온다. 호텔 창 밖으로 보이는 강에는 바닷물이 밀려와 제법 강폭이 넓어졌다. 이제 카라쓰의 또 하나의 명승지인 니지노 마쓰바라(虹の松原)를 향할 차례이다. 





니지노 마쓰바라는 폭 50m, 길이 5Km에 달하는 소나무 방풍림이다. 다행히 호텔에서 걸어서 갈 수 있다. 프런트에서 우산을 빌려 쓰고 길을 나섰다. 일본 3대 소나무 숲이라는 평가대로 빼곡하니 자란 소나무들이 인상적이다. 게다가 바람의 방향으로 누워버린 소나무들에서 세월의 풍상이 고스란히 읽힌다. 


이 와중에도 과연 50미터 폭의 방풍림이 바람을 막아주면 얼마나 막아줄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한 가벼운 토론이 시작되었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이 방풍림을 만나 와류가 일어나고 이로 인해 바람의 기운을 한 숨 꺾을 수 있을 거라는 결론에 서로 만족해하며 바다로 향한다.  












비 오는 바닷가는 사람을 센티하게 만든다. 화산재가 섞인 듯한 검은 모래와, 우중충한 구름 아래 더욱더 검게 보이는 바다(玄海)는 여기가 대한해협의 시작임을 일깨워준다. 김민기는 검푸른 바다 앞에서 다시는 볼 수 없는 친구를 그리워했지만 우리는 친구들과의 재미난 여행의 마무리를 아쉬워하는 중이다. 








카라쓰올레길 탐방이라고는 했으나 아래 지도를 보면 우리가 걸었던 올레길은 왼쪽 윗부분 푸른 선으로 표시되어 있는 옵션 루트였다. 그놈의 술 때문에 본 코스는 발도 디뎌 보지 못하고 택시와 버스로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가을에 낙엽이 예쁘게 물들 즈음에 다시 와서 이 코스를 제대로 걸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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