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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사진가 Oct 21. 2018

짧지만 화려한 서울의 가을

가을 하늘 아래 서울을 거닐어 본다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봅니다. 서울을 여행하는 외국 친구들을 보면서 종종 놀랍니다. '서울이 저랬나?'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까지 다녔지만 서울에서 사는 것과 서울을 여행하는 것은 많이 다릅니다. 나중에 가면 되지 하고 미뤄둔 곳도 많고, 예전에 갔던 곳이라 치워둔 곳도 많고, 뭐 별 거 있겠어하며 무시했던 곳도 있지요. 화면에서 보이는 서울은 내가 알고 지나치던 서울과는 많이 다릅니다. 여행을 하는 사람과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차이일수도 있겠지요. 얼마 남지 않은 가을, 잠시 일상을 접어두고 익숙한 서울로 낯선 여행을 떠나 보면 어떨까요?


익숙한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카메라로 보는 것 아닐까요? 파인더로 보이는 혹은 사각의 앵글로 가두어진 일상은 더 이상 일상이 아닙니다. 늘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이었지만 셔터를 누르는 순간 특별한 순간이 됩니다. 이 아름다운 가을, 셔터를 아끼지 마세요.







종묘는 언제 가도 좋습니다. 조선 500년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 시간과 역사, 우리의 뿌리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는 곳이지요. 조선의 건축과 문화를 대표하는 가장 압축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종묘는 미리 공부하고 가면 그만큼 멋지고 아름답게 보이는 곳입니다. 심심하고 허전하던 공간 속에 숨어 있는 조선의 이야기들이 실타래처럼 풀려 나온답니다. 시간이 없더라도 종묘 구석구석 준비되어 있는 안내판이나 설명 자료들을 꼼꼼히 읽어 보기를 권합니다. 화요일이 정기 휴관일이고, 토요일은 자유관람이 가능합니다. 






종묘 바로 앞에는 세운상가가 있습니다. 얼마 전 딸아이한테 세운상가 옥상이 참 좋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서울 사람들에게 세운상가는 오래전부터 많은 추억이 얽혀 있는 곳이지요. 용산 전자 상가가 생기기 전에는 이 곳으로 카세트 플레이어나 라디오를 사러 오곤 했습니다. 조금 으슥한 곳에서는 19금 잡지나 비디오테이프를 팔기도 했지요. 아저씨의 입심과 왕성한 호기심이 만나 두근거리며 사온 '동물의 왕국' 테이프에 진짜 아프리카 초원이 펼쳐지더라는 전설이 깃들여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세운상가 전망대를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서야 세운상가가 8층이나 된다는 사실, 전망대는 9층에 있다는 걸 알았어요. 깜짝 놀랐답니다. 늘 1,2층 상가만 돌아다녔던 탓에 그 위로는 아파트였다는 건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었던 게지요. 엘리베이터가 4층, 5층을 지나는데 꼭 하늘로 올라가는 느낌이었어요.




세운상가 양 옆으로 을지로 공구상가, 전자상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서울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좁은 골목으로 이어져 있지요. 눈비를 피하려고 올려놓은 지붕들이 아주 재미난 색감을 만들어 냅니다. 이 곳도 어쩌면 조만간 재개발될 것 같네요. 도시재생이라는 개념으로 우아하게 접근하기에는 너무나 이해관계들이 복잡하고 첨예하겠지요. 그렇더라도 이런 곳이 서울의 매력인데 말이죠, 조선 500년과 일제 강점기, 그리고 6.25 이후의 경제 성장기를 이어주는 소중한 도시의 흔적들인데 말입니다. 






가을은 짧습니다. 서울은 넓고요. 부지런히 다니셔야 할 겁니다. 서울의 가을을 흠뻑 즐기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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