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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지 Aug 01. 2021

<콜래트럴 이펙트> 여보 나 오늘 집에 못 가

임신한 경찰의 직무 수행

※ 스포일러 경고

<콜래트럴 이펙트> <파고> <종이의 집>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언제 퇴근하려고     


한밤중에 전화가 울렸다. 관할 구역에서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이다. 킵 글래스피(캐리 멀리건)는 이 현장에 긴급 투입되어 후다닥 옷을 챙겨 입고 나갈 준비를 하는데, 그때 옆에서 자던 배우자도 같이 깼다. “사건이야? 괜찮겠어?” “이건 해야겠어.” “잘해봐.” 자신을 걱정하면서도 지지하는 가족과 가볍게 입을 맞춘 뒤 차를 몰고 현장으로 향하는 킵의 얼굴에서 희미한 미소가 읽힌다. 킵은 이런 사건을 맡기를 꽤 기다렸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킵은 지역 피자 배달부 피격 사건을 지휘한다. 수사를 시작하자 킵은 이 사건에 용의자와 목격자 말고도 난민, 서류미비자, 이주 브로커, 마약 딜러, 군인, 노동당 하원의원, 교구의 사제까지 여러 인물의 사연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차차 파악하는데, 이 많은 사람과 촘촘한 관계망은 한 죽음 뒤에 어둡고 거대한 음모가 있으며 해결에 이르기까지 꽤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궁에 빠지지 않으려면 수사의 골든타임을 확보해야 한다. 촉박한 상황에서 킵이 택한 방법은 의사결정에 있어 자신의 직감을 따르는 것이고 퇴근을 안 하는 것이다.


킵을 연기한 배우 캐리 멀리건은 배역에 대해 많이 고민한 것 같다. 그간 시대극에 많이 출연했기에 “내가 형사라는 걸 믿을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I thought, No one is going to believe I’m a police officer”는데, 결과적으로 그런 고정관념을 역이용해 수사물 속 형사 캐릭터의 전형과 비전형을 적당히 섞어 자신만의 캐릭터를 창조했다. 말씨는 교양 있고(욕설과 농담을 하지 않는다) 표정은 침착해서(흥분하는 일이 없다) 벌인 일의 본질을 잊게 되는데, 사실 킵은 일에 미쳐서 무언가를 외면하거나 누군가를 무시하는 형사 캐릭터의 전형이다. 수사로 확보한 정보를 팀원과 선택적으로만 공유하고, 증인에게 권한 밖의 어려운 약속을 하는 것으로 수사 규정을 위반해 상급자를 곤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킵은 쉬지 않고 일한다.


그간 킵보다 더 많은 사건을 경험한 것으로 보이는 부하 직원 네이선은 킵의 독선적인 업무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학력 때문에 이렇게 자신의 경력까지 차별당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킵이 혼자 뭘 하고 다니는 건지 계속 캐묻고 자신도 이 팀의 동등한 일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데, 이는 네이선이 킵과 스타일은 달라도 일에 대한 욕구는 뒤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그런데 킵은 그런 네이선이 보기에도 확실히 과하다. 수사에 진전이 있기 전까지 집에 갈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킵에게 네이선은 빈정거린다. “처음 맡는 큰 사건이라서? 아니면 집에 문제라도? 과로는 바보짓이에요. 결국 비효율적이라고요.” 퇴근 생각이 없는 상사를 둔 건 매우 유감이지만 말에 뼈가 많다. 네이선이 직급보다 경험을 우선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 조직이 위계가 별로 없어서 이럴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혹은 상사가 여자라서?), 정작 킵은 파트너가 쏟아내는 불만에 별 반응이 없다. 바쁘니까 동료의 감정에 신경 쓸 겨를도 없다는 식이다. 캐리 멀리건의 캐릭터 해석에 따르면 킵은 “실리적이고 야망이 있는practical and ambitious” 인물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킵의 성격만 알았지 몸을 잘 몰랐다. 그간 품이 넉넉한 옷을 입고 일해서 더 몰랐다. 작품은 시리즈의 절반에 와서야 현장 검증을 위해 킵에게 다른 넉넉한 옷(방호복)을 입혀서 몸의 윤곽을 보여주는데, 캐리 멀리건에 따르면 그때 자신의 모습은 “텔레토비 같았다.” 킵은 임신 6개월 차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이 사실을 마치 반전처럼 좀 늦게, 대신 분명하게 밝힌 뒤에야 킵에게 배우자와 통화할 짧은 시간을 준다. “킵, 이제야 연결됐네. 종일 연락했어.” “오늘 못 가.” “벌써 3일째야.” “알아, 미안해.” 작품은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배우자에게 말할 기회를 한 번 더 준다. “일은 끝났어? 원하던 것 달성한 거야?” “근접했지. 이제 자고 싶어.” 


킵이 사흘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향할 때까지 배우자의 태도는 한결같다. 임신한 형사로서가 아니라 삶의 동반자로서만 킵을 걱정한다. 그런 남편은 처음 등장할 때 어두운 침실이라 안 보였고 이후부터는 전화기 너머에 있다. 즉 킵의 남편 역할을 맡은 남자 배우는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가 소화한 대사는 위에 적은 것이 전부다. 아내의 일을 존중하면서도 아내의 3일 철야를 걱정했으니까 가족 구성원으로서 충분히 역할을 다했다고 여겼는지 작품은 그의 이름조차 붙여주지 않았다. 킵의 동료 네이선을 묘사하는 시각도 이와 비슷하다. 네이선은 좀 꼬인 인물이긴 하지만 과로는 비효율적이라는 보편적인 이유로 킵의 업무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지 파트너의 임신에 대해선 의견이 없다. 마침내 작품이 킵의 임신을 상세하게 밝힌 시점은 킵이 자신과 비슷한 증인을 만났을 때였다. “몇 개월인가요?” “8개월요. 그쪽은요?” “6개월밖에 안 됐어요.” 임신을 설명하기에 퍽 자연스러운 조건을 설계하고 나서 마땅한 대사를 흘린 것이다.  


그러나 <콜래트럴 이펙트>는 임신한 여성 형사의 업무 환경을 초현실적으로 그린 판타지가 아니다. 통념을 어느 정도는 반영해 임신을 업무 장벽으로 그리기도 한다는 것인데, 다만 작품은 이러한 상황에 킵을 던져놓기를 상당히 늦춘다. 결말에 임박해서 용의자의 소재가 파악된 때였다. 무기를 가진 용의자와 협상을 시도하려는 킵을 현장에 미리 나와 있던 지역 경찰이 막는다. “왜 안 되죠?” “당연한 걸 물으시네요. 임신 중인 형사에 관한 규율이 있을 텐데요.” “상기시켜줘서 고마워요.” 막판에 잠깐 나오는 이 경찰은 작품이 그간 유지해온 시선 덕분에 진짜 임신부가 냉소할 만큼 융통성 없고 뒤떨어진 사람이 되어버린다. 극 중에서 킵의 임신은 가족과 동료 등 주변 사람들의 시야에서 업무에 영향을 주는 마이너스 요인이 아니다. 그 임신은 그저 또 다른 임신부를 만났을 때 날씨처럼 대화의 물꼬가 될 뿐이고, 충분한 소통 없이 규정부터 찾는 타인에게나 문제시되는 것이다. 


이처럼 <콜래트럴 이펙트>는 임신 당사자가 겪음직한 제약을 의도적으로 걷어냈다. 당연한 의식으로 자리 잡은 임신부 보호 관념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이런 관점을 바탕으로, 내근부터 외근까지 퇴근 없이 이어지는 사흘간의 업무를 축으로 극을 전개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임신부의 업무 범위를 통념보다 넓게 파악하는 기회를 얻었다. 사실 이는 캐스팅이 결정되고 나서 수정된 설정이다. 제작진이 배역을 의뢰했을 때, 캐리 멀리건은 “이 프로젝트에 매우 관심이 있지만 난 임신 6주다I was very interested in this project but also that I was six weeks pregnant”라고 밝혔다. 이에 각본가 데이비드 헤어는 “킵의 임신이 (작품의 맥락에서) 문제될 이유가 없다didn’t see why Kip couldn’t be pregnant”고 답한 뒤 임신에 대한 두 가지 언급을 대본에 추가했다. 배우는 임신으로 배역이 한정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제작진은 배우의 실제 조건을 반영해 설정을 바꿔서 캐릭터를 더 풍성하게 만든 셈이다. 이 교감은 일반적으로 임신부는 스스로 기회를 포기하는 조건에 놓인다는 것과 함께 임신 당사자의 업무 의지와 가능성 이상으로 주변 사람들의 시각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덕분에 임신은 사실일 뿐 특징이 되지는 않는 캐릭터를 창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이 관점의 힘이자 연출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극이 임신부를 이렇게 ‘진보적으로’ 바라봐도 임신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변화가 생기는 일이다. 캐리 멀리건은 임신이 일에 영향을 준 순간으로 배가 자주 고팠다는 것 외에 7개월 차에 소화한 막바지 촬영을 꼽는다. 여느 때처럼 촬영지에서 새벽까지 대기하고 있다가 태아의 발길질을 느끼고는 ‘아 맞다, 나 임신이었지’ 하고 뒤늦게 자각했다는데, 이 다행스러운 상태 덕분에 배우는 의도한 연기를 자연스럽게 펼칠 수 있었다. ‘임신 연기’는 허용되지 않았다. 울지 않는 것도 제작진과 사전에 세운 규칙이었다. 캐리 멀리건의 표현을 빌리자면 “킵은 임신에 대해 징징거려선 안 됐다she doesn’t whinge about it.” 물론 모든 임신부가 킵이나 캐리 멀리건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예외일 수 있지만, 우리는 이 예외에 대해 좀 더 많이 말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예외로 인해 그간 미디어가 임신부를 어떻게 그려왔는지를, 그로 인해 우리가 일하는 임신부의 가능성을 얼마나 축소해왔는지를 뒤늦게나마 인지하는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임신한 형사 캐릭터는 <콜래트럴 이펙트>의 킵 이전에도 있었지만,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도 임신 사실에 초연한 킵과 다르게 등장과 동시에 신체부터 부각되는 편이다. 먼저 멀리 가보자. 영화 <파고>(1996, 미국)의 마지(프랜시스 맥도먼드)도 킵처럼 한밤중에 살인 사건 소식을 전하는 전화를 받고 깬다. 통화를 마치자 카메라는 침대에서 일어나 출근하려는 마지의 배에 다가가는데, 이것은 마지의 직업적 열정을 보여주는 장면이면서 동시에 이 스릴러의 긴장 요소로도 작용한다. 마지가 상대해야 할 인간들은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대상이 아이이든 여성이든 경찰이든 일단 죽이고 많이 죽인다. 즉 마지는 경찰을 죽인 살인자를 찾아내야 하는 임신한 경찰이다. 보호를 명분 삼아 임신부를 현장 근무에서 배제하는 타성적인 시각에서 진작 벗어났다는 것은 높이 살 만하지만, 임신부의 안전을 볼모 삼아 공포를 극대화하는 관점을 올바르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건 장르적인 타성이기도 하다. 약자의 생존을 쥐고 흔들지 않고 전개되는 스릴러는 귀하다.



늘 몸에 밀착하는 의상을 입고 일하는 <종이의 집>(2017~, 스페인)의 시에라(나와 님리)는 킵과 마찬가지로 집에 안 가는 형사다. 포획된 강도단의 일원인 리우를 관타나모의 감옥에 가두고 비인도적으로 고문하는 것이 첫 등장이다. 붙잡힌 리우는 강도단 가운데 전투력이 가장 떨어지는 멤버로, 시에라는 임신부 보호 관념을 역이용해 상대를 다룬다. 고문하기 전엔 배를 만지라 한다.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자신을 ‘엄마처럼’ 포근한 존재로 느끼게 한 뒤에 끔찍한 고통을 주는 것이다. 시에라는 두려움을 모른다. 공격적이고 인정머리가 없다. 강도단과 협상을 시도할 땐 그들에게 총기와 포탄이 있다는 걸 알고도 맨몸으로 뚜벅뚜벅 걸어서 적진으로 향한다. 척박한 근무 환경으로 고문하러 출장을 가고, 밤샘 현장 근무에 대해 별 말 않는 걸 보면 피로도 모르는 것 같다. 기자회견도 하는데 공적 말하기에 있어서 시에라한테 공무원다운 품위를 기대해선 안 된다. 작품은 시에라를 ‘임신까지 했어도 성깔 죽지 않은’ 캐릭터로 그리려 한 것 같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살아남은 캐릭터의 성격을 극대화하기 위해 임신을 이용한 셈이다. 달리 말하면 임신을 업무 장벽으로 보고 있다.


임신한 형사가 그리 흔한 캐릭터가 아니라서 그런지 거론한 작품은 그들의 임신을 부각하고 여기에 각각의 명확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들의 임신은 <파고>처럼 공포의 요소가 될 수도 있고 <종이의 집>처럼 극복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콜래트럴 이펙트>는 반대로 임신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더 큰 의미를 전한다. 이런 예외는 임신 당사자의 의식을 바꿀 수도 있다. 캐리 멀리건은 임신 6주였을 땐 일할 수 있는 자신보다 함께 일하게 될 동료들을 먼저 고려했다. 작품이 완성되고 나서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각본가가 <콜래트럴 이펙트>를 통해 전한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킵은 하루 종일 배를 움켜잡고 있느라 외출을 못하는 임신부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킵은 “어떤 임신부와 마찬가지로 일하는 여성, 그걸 그냥 계속하는 여성”이라는 것이다I love that because pregnant women don’t go around all day clutching their bellies, they are working women and they just get on with it. That is a really strong message from David. 그건 배역의 설정인 동시에 배우 자신의 생생한 이야기였다. 달리 말하면 극이 좀처럼 잘 전달하지 못했던 덤덤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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