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두
1. 사회주의 사상의 도입과 전파
1919년 3.1 운동 이후, 독립운동은 단순한 항일투쟁을 넘어서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이 빠르게 퍼져나갔으며, 이는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한 건국운동의 중요한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사회주의 사상은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타파하고 민중의 권리를 보호하며,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한 경제적·사회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이는 일제 강점기 동안 억압받고 착취당한 계층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사회주의 사상은 주로 일본 유학생들과 중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을 통해 조선으로 전파되었다. 일본에서 유학하던 학생들은 서구의 사회주의 문헌을 접하며 새로운 사상을 학습했고, 중국에서는 소련 혁명의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 이념이 전파되었다. 이러한 사상적 흐름은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단순한 독립을 넘어 사회의 구조적 변혁을 추구하는 새로운 건국운동의 지향점을 형성하였다.
2. 공산주의자들의 활동과 독립운동의 변화
사회주의가 도입된 이후, 공산주의자들은 보다 급진적이고 조직적인 방식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공산주의자들은 일제의 자본주의적 착취에 맞서 민족해방과 동시에 사회적 해방을 추구하였다. 이들은 무장 투쟁과 노동운동, 농민운동을 결합하여 새로운 국가 건설의 대안을 제시하려 하였으며, 이를 통해 기존의 독립운동을 넘어서는 혁신적인 변화를 꾀하였다.
공산주의자들은 만주와 중국 본토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각종 군사 조직과 비밀 결사를 결성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들의 활동은 독립운동의 범위를 확대시키고, 민족의 독립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의 근본적 개혁을 목표로 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건국운동의 틀을 확장하여 민족주의적 독립운동을 사회주의적 관점으로 재편하려는 시도로 나타났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의 급진적 활동은 기존 독립운동 세력과의 마찰을 불러일으켰다. 전통적 민족주의 세력과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독립운동 내부의 이념적 대립이 격화되었다. 이로 인해 건국운동의 방향이 분열되었고, 이는 좌우합작 운동의 전개와 그 좌절로 이어졌다.
3. 좌우합작 운동의 전개와 좌절
좌우 합작 운동은 좌파와 우파 세력이 연합하여 민족 통합을 이루고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한 단일한 전략을 마련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독립운동 세력 내의 이념적 갈등을 극복하고, 한반도 해방 이후의 국가 건설을 준비하기 위해 좌우합작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는 단순한 독립운동이 아닌,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한 건국운동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좌우 합작 운동의 대표적 사례는 김구와 김규식이 주도한 남북협상과 여운형이 주도한 조선건국동맹의 결성이었다. 이들은 민족의 통합과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해 좌우를 초월한 협력을 도모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이념적 갈등과 외부 세력의 개입으로 인해 좌절되었다. 특히, 미국과 소련의 대립 속에서 좌우 합작은 서로 다른 외교적 노선을 취하면서 통합의 어려움을 겪었다.
좌우합작 운동은 민족의 단결을 목표로 했으나, 각 세력 간의 이념적 차이와 신뢰 부족, 국제 정세의 변화로 인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좌파는 사회주의 혁명과 급진적 개혁을 지향했으며, 우파는 기존의 정치 질서를 유지하면서 민족의 독립을 우선시하였다. 이로 인해 통합의 의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이를 실현하는 데 실패하였다.
사실상, 그동안의 독립운동은 주로 대한제국의 독립을 목표로 한 것이었으나, 1919년 임시정부의 수립 이후로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건국운동의 시대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사상적 이념에 따라 독립운동가들은 서로 다른 입장만을 고집하게 되었고, 이는 결국 각기 다른 길을 걷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분열은 민족의 통합과 새로운 국가 건설을 방해하였으며,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슬픈 장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민족주의는 이념적 갈등 앞에서 무너졌고, 임시정부 초기부터 내재되어 있던 이데올로기적 문제와 미국파와 중국파 간의 갈등은 임시정부가 더 활발히 움직일 수 없게 하는 족쇄가 되었다. 이들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대한제국의 부정과 무능을 한탄하며 새로운 국가를 꿈꾸었으나, 민족주의가 이데올로기적 대립 앞에서 배타적으로 흘러가면서 민족 통합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는 독립을 넘어선 건국운동의 중요한 시도였지만, 결국 이념적 대립과 국제적 압력 속에서 좌절된 비극적 역사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