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BAND PEACE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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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인디의 대부, 신경준

by 이문웅 Jan 06. 2025

신경준은 단순한 인디 음악 프로듀서가 아니었다. 그는 홍대 인디 음악 씬의 초창기를 일궈낸, 한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1990년대 초, 밴드들이 자신의 음악을 세상에 알릴 방법조차 몰랐을 때, 그는 기획과 마케팅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무명의 아티스트를 성공으로 이끈 최초의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초창기 밴드들에게 공연 기회를 제공하며 높은 관람료와 저렴한 개런티 구조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그 결과로 홍대는 인디 음악의 성지로 자리 잡았고, 그는 업계에서 ‘인디의 대부’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의 영악한 방식에 불만을 가진 밴드들이 속출했고, 그는 한 발 앞서 음반 제작과 기획으로 전환하며 또 한 번 업계를 휘어잡았다.


며칠 전, 밴드 피스의 회식 자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신경준은 단순한 관객의 입장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수현과 재민의 의견 차이로 고조된 대화를 들으며 그는 그들 각각의 강점과 약점을 빠르게 파악했다. 특히 재민의 연주에서 나타난 천재성을, 그리고 수현의 깊이 있는 음악적 통찰력을 간과하지 않았다.


그날 그는 조심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밴드는 하나의 유기체예요. 팀워크가 없으면 아무리 개개인의 실력이 뛰어나도 오래가지 못하죠. 그런데 제가 보기엔, 여러분은 정말 좋은 팀이에요. 그날 연주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기호가 신경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어디서 뵌 적이 있나요?”


신경준은 미소를 지으며 명함을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신경준이라고 합니다. 인디 음악 쪽에서 조금 일했죠.”


그 이름을 듣자마자, 기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홍대 인디 밴드들의 전설… 신경준 피디님이세요?”


다른 멤버들도 놀라며 그를 쳐다봤다. 신경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 “전설이란 말은 과한 칭찬이고요. 그냥 인디 음악에서 조금 일해봤을 뿐입니다.”


기호가 평소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기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은 ‘신경준.’ 명함을 받은 후 저장해 두었기에 그는 바로 그가 누구인지 알아챘다.


기호는 긴장된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신경준 피디님 맞으시죠?"


“안녕하세요, 기호 씨. 지난번 회식 자리에서 뵌 뒤 계속 고민하다가 연락드리게 됐습니다. 혹시 시간 좀 괜찮으신가요? 이야기 나누고 싶은 게 있어서요.”


기호는 잠시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답했다. “네, 시간 됩니다. 어떤 이야기인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이번 주말에 제 사무실에서 뵙죠. 주소는 제가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주말이 되자, 기호는 약속된 시간에 신경준의 사무실로 향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세련되고 현대적인 분위기의 사무실은 그가 단순한 과거의 전설이 아니라 현재도 여전히 영향력 있는 인물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신경준은 직접 커피를 준비하며 기호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기호 씨. 편하게 앉으세요.”


기호는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 커피잔을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야기인지 조금은 짐작이 가는데,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신경준은 미소를 지으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밴드 피스, 정말 매력적인 팀입니다. 그날 들었던 연주는 제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어요. 여러분은 한국에서만 머물 팀이 아닙니다. 혹시 글로벌 무대에 서볼 생각은 없으신가요?”


기호는 놀라며 그를 바라봤다. “글로벌 무대요? 저희 가요?”


“네. 저는 지금 한국 시장에서 머무를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시장은 글로벌이에요. 특히 미국의 ‘탤런트 쇼’ 같은 큰 무대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밴드 피스는 제가 찾던 바로 그 팀이에요. 재민 씨의 천재적인 재능과 나연 씨의 매력적인 보컬, 그리고 수현 씨와 기호 씨의 안정적인 연주는 완벽한 조합입니다.”


기호는 설렘과 당황이 뒤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저희 팀이 그런 큰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준비는 필요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위해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드릴 겁니다. 대신 한 가지 기억해 주세요. 글로벌 시장은 도전적이고 냉혹한 곳입니다. 성공하려면 단순한 열정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무실을 나선 뒤, 기호는 혼란스러웠다. 신경준의 제안은 엄청난 기회였지만 동시에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는 멤버들에게 곧바로 소식을 전하기로 했다.


그날 밤, 멤버들은 연습실에 모였다. 기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러분, 며칠 전에 만났던 신경준 피디님 기억하시죠? 오늘 그분이 제안 하나를 하셨습니다.”


수현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제안인데요?”


“글로벌 무대로 나가보자는 겁니다. 미국 ‘탤런트 쇼’ 같은 데 나가서 밴드 피스를 세계적으로 알리자고요.”


재민이 놀라며 말했다. “정말요? 그분이 그렇게까지 말했어요?”


나연도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근데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우리가 준비가 돼 있을까요?”


수현은 신중하게 말했다. “글로벌 무대라니… 대단한 기회인 건 분명하지만, 준비 과정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우리 팀워크도 아직 갈 길이 멀고…”


기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이건 우리가 정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제안이 우리에게 큰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멤버들은 잠시 침묵에 빠졌다. 모두의 마음속에는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신경준의 제안을 무조건 거절할 수는 없었다.


결국, 밴드 피스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신경준과 다시 만나기로 결정했다. 그들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미나는 오늘만큼은 카페 알바를 쉬기로 하고, 밴드 멤버들과 함께 경준의 사무실로 향했다. 경준의 사무실은 크지는 않았지만, 벽에는 과거 그의 성공 스토리를 보여주는 포스터, 사진, 그리고 앨범 커버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 이곳은 단순한 사무 공간이 아니라, 경준이 걸어온 길과 비전을 압축해 놓은 박물관 같았다.


경준은 멤버들을 보자마자 반갑게 맞이했다. “왔네, 왔어! 기다리고 있었어.” 그는 따뜻한 미소와 함께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친근하게 반말을 시작했다.

“자, 내가 누군지는 이제 다들 알겠지? 시간 날 때 검색 좀 해봤을 거라 생각해. 그런데 중요한 건,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함께 할 일이야.”


밴드 멤버들은 경준의 자신감 있는 태도에 압도되면서도, 그의 말을 경청했다. 경준은 손짓으로 옆에 서 있던 박 실장을 불렀다. “박 실장! 준비 다 됐지?”

박 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회장님. 대회의실로 모시면 됩니다.”


경준의 안내로 밴드 멤버들은 대회의실로 이동했다. 대회의실은 소박하면서도 효율적으로 꾸며져 있었다. 중앙에는 대형 화면과 멤버들의 이름이 적힌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모두가 자리에 앉자 박 실장이 발표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밴드 피스 여러분. 오늘은 저희가 현대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지를 집중적으로 논의하고자 합니다.”

박 실장은 화면을 통해 글로벌 음악 시장의 변화와 성공 사례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현재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단순히 음악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음악뿐만 아니라, 스토리텔링, 영상 콘텐츠, 그리고 팬과의 소통이 필수적인 시대입니다.”

박 실장은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성공한 사례들을 하나씩 보여주며 말했다.

“예를 들어, BTS의 성공은 단순히 음악의 힘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소셜 미디어 전략, 팬덤 구축, 그리고 멤버들 각각의 매력이 하나로 융합된 결과였죠.”

경준이 발표를 지켜보다가 말을 이어갔다. “자, 여기까지 들었으면 이제 대충 그림이 그려지지? 밴드 피스, 너희는 단순히 한국에서만 활동할 밴드가 아니야. 너희의 음악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충분히 통할 가능성이 있어.”

재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저희가 그 정도로 준비가 된 건가요? 아직 부족한 점도 많고…”


경준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 “부족하다고 느끼는 건 당연한 거야. 근데 내가 너희를 눈여겨본 이유는, 부족함 속에서도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야. 특히 너희만의 개성과 색깔은 다른 밴드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해.”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글로벌 시장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경준 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새로운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아요.”

미나는 말없이 경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흥분과 설렘이 가득했다. 그녀는 이번 기회가 밴드 피스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예감을 느꼈다.

박 실장은 이어서 밴드 피스를 위한 프로젝트 계획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저희는 밴드 피스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프로젝트를 준비 중입니다. 우선, 여러분의 음악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새로운 곡 제작과 함께 영상 콘텐츠 제작을 시작할 겁니다. 또한, 미국의 대형 탤런트 쇼 출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글로벌 팬덤을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것입니다.”

경준이 다시 말을 이어받았다. “단, 기억해야 할 게 있어. 이 프로젝트는 쉽지 않을 거야.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팀워크가 더 단단해져야 해. 그리고 중요한 건, 모든 과정을 함께 한다는 거야. 밴드는 결국 하나로 움직여야 해.”

경준과 박 실장의 설명이 끝난 뒤, 멤버들은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설렘과 부담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재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도전하고 싶어요. 이렇게 큰 기회를 놓치는 건 너무 아쉬울 것 같아요.”

수현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우리 모두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예요.”

기호와 미나도 동의했다. 결국, 밴드 피스는 경준의 제안을 수락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의 도전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었다.

경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 이제부터 우리는 한 팀이야. 오늘부터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거다. 기대해도 좋아.”


그 순간, 밴드 피스는 진정으로 하나가 되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그들의 가능성을 증명하고,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일이었다.

경준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여기서 더 중요한 건, 바로 성장과정이야. 그래서 미나, 너 아이 양육비는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전혀.


그리고 한 가지 더! 혹시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나 신경준을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봤겠지만, 이번 프로젝트로 나도 발전을 통한 세탁이 이루어질 거라는 것을 명심해. 나도 뭔가 달라질 거라는 거지. 그래서…”

경준은 그 말을 마친 후, 사무실 문을 열며 외쳤다. “이봐, 김변! 들어오지.”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김창욱 변호사였다. 그는 깔끔한 정장에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멤버들을 바라보며,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밴드 피스 여러분. 저는 김창욱 변호사입니다. 여러분들의 계약과 기타 처우에 관한 모든 법적 문제를 처리할 사람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법적 문제까지 모두 맡게 될 테니, 계약에 대한 걱정은 전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밴드 멤버들은 여전히 조용히 듣고 있었다. 모두가 경준의 말에 흥미롭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김변호사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조금씩 안도감을 느끼는 듯했다. 경준은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계약은 매우 만족스럽게 진행될 테니 걱정 말고. 자, 이제 질문이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

그 순간, 멤버들은 잠시 침묵에 빠졌다. 모두가 경준의 말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이 교차하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기호는 결국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왜 저희죠? 저희보다 잘하는 팀이나 가수들도 많잖아요. 저희는 그저 평범한 밴드인데요…”


경준은 살짝 웃으며, 여유로운 목소리로 답했다. “그게 바로 중요한 거지. 그게 바로 인연법이라는 거야. 난 인연을 믿거든. 우리가 만난 건 우연이 아니야. 너희에게는 다른 팀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 그리고 그걸 내가 보고 있는 거야.”

경준은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그는 방금 한 말을 흡입하듯 들려주었고, 이제 사무실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 그는 빠르게 일어났고, 박 실장에게 말했다. “나머지 일은 박 실장과 김 변호사를 통해 상의하도록 해. 나는 좀 나가볼게.”

경준은 미소를 지으며 사무실을 떠났고, 멤버들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박 실장과 김 변호사는 그들을 향해 조금 더 구체적인 계획과 계약서 내용을 준비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멤버들은 각자 자기들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한듯했다. 이 기회만은 절대 놓칠 수 없다는 것을.

계약서를 꼼꼼히 살피고 가장 먼저 리더인 기호가 서명을 하고 다음 수현, 재민, 나연, 미나순으로 서명을 했다. 그리고 즉시 그들의 통장에 계약금이 엔 분의 일로 입금 되었다. 그 돈은 그동안 그들이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금액이었기에 각자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 소식을 전했다. 단 한 사람 수현만 표정의 변화가 전혀 없었다.

이런 표정의 변화를 경준은 사무실에서 다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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