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 이전의 질서

by 이문웅

대한민국의 항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출항 이전의 질서를 단순히 정체된 왕조나 실패한 체제로 요약해서는 부족하다. 조선은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사회가 아니었고, 개혁의 시도가 전무했던 국가도 아니었다. 오히려 문제는 반대에 가까웠다. 조선은 오랫동안 개혁을 시도해 왔으나, 그 개혁이 끝내 국가의 형태를 바꾸는 단계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항해 이전의 질서는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육지 위에서 방향을 잡지 못한 채 계속 회전하던 상태였다.


조선 후기 실학은 이러한 문제의식이 가장 먼저 드러난 지점이었다. 박지원과 박제가, 정약용으로 대표되는 실학자들은 성리학적 명분과 관념이 더 이상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농업 생산력의 한계, 경직된 신분 질서, 폐쇄적인 상업 구조가 국가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음을 보았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단순한 문화 비평이 아니라, 이미 조선이 세계의 흐름에서 얼마나 뒤처졌는지를 체감한 기록이었다.


그러나 실학의 개혁은 끝내 왕조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이 상정한 변화는 여전히 ‘좋은 왕’과 ‘유능한 관료’를 전제로 한 체제 내부의 개선이었다. 이는 한계이자 동시에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조건이었다. 실학은 항해의 필요성을 인식했지만, 배를 해체하고 새로 만들자는 발상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이 지점에서 조선의 개혁은 이미 구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었다.


19세기에 접어들며 이 한계는 더욱 분명해졌다. 세계 질서는 더 이상 점진적 개혁을 허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서구 열강은 이미 산업과 군사, 금융과 제도를 하나의 체계로 묶어 제국주의적 질서를 구축하고 있었고, 동아시아 역시 그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 시점에서 조선이 직면한 문제는 제도의 미세 조정이 아니라, 국가의 형식 자체를 유지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가장 급진적으로 반응한 집단이 개화파였고, 그 중심에 김옥균이 있었다. 김옥균은 실학의 문제의식을 계승하면서도, 그 한계를 분명히 인식한 인물이었다. 그는 단순히 왕조를 개혁하는 수준으로는 조선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보았다. 중요한 점은 그의 사상이 중국이나 대륙 중심의 전통적 유학 질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일본을 경유해 서구 문명을 접한 경험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김옥균과 그의 동지들은 후쿠자와 유키치를 통해 봉건 질서를 해체하고 근대 국가로 전환한 일본의 경험을 직접 접했다. 후쿠자와가 강조한 것은 기술이나 군사력 이전에, 개인의 권리와 법치, 국민 국가라는 개념이었다. 이는 왕이 곧 국가였던 조선의 질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식이었다. 이때 조선의 개혁은 처음으로 왕조 이후를 상상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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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打誤 저서 : 동아시아오딧세이, 행복의 공식, 대한민국 건국영웅들, 네오젠, 네오젠시티, 네오갱, 사미예찬, 트레 뻬르소네, 라이프캡슐 예명 : 이타오 AI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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