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의 조건-이주희>를 읽고
강자는 어떤 면에서 천재와 동일시된다. 그냥 타고나길 그렇게 태어났다고, 그런 운명이었다고. 그러니 그들에게 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이다. 나는 천재도 강자도 아니지만, 그런 인식은 실례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단 하나의 재능으로 풀리는 곳이던가. 우리가 보지 못한 모습이 있을 뿐이다. 노력이 있기에 그들이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이다. 압도적인 재능이 있어도 그걸 끝까지 피우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전성기를 연장해 나가는 사람이 있다. 환경, 유전자, 다른 상황 모두에서 뒤떨어져도 강자의 자리에 오르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신기하게도 이따금 사람들의 상식을 배반하는 일이 일어나는 걸 알지 않는가. 누구보다 못한 환경의 사람이 다른 이들의 성공보다 배를 이루곤 한다. 이 현상은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가에도 통용된다. 제국도 반드시 풍요로운 곳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만약 제국이 되는 데 풍요로운 자원이 필수적이었다면, 프랑스는 옛적에 제국이 돼야 했었다. 어느 역사에서도 인정하는 노른자위 땅이 아닌가. 남쪽으로는 지중해성 기후가, 북쪽으론 서양 해양성 기후가 있어 자원이 넘친다. 밀도 과일도 잘 자라고 폭풍도 없다. 영국처럼 척박하지도 않다. 스위스처럼 험준한 산맥만이 자리한 것도 아니다. 얼핏 보기에 제국이 나오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하지만 정작 제국으로 등장한 건, 그 옆의 작은 섬나라였다.
영국의 위상을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때도 가난한 왕실이었다. 영국은 자원이 풍부한 것도 아니었고 영토가 넓은 것도 아니었다. 날씨는 변덕스럽고, 음침하고,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와는 부딪히기 일쑤였다. 유럽에서의 힘도 강하지 않았고 나라가 풍요롭지 않으니 부유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이루어냈다. 바다를 자신의 힘으로 여기며, 부족한 걸 혁신으로 채웠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스페인 무적함대와의 전쟁, '그라벨린 전투'부터였다. 당시 스페인은 오스만 제국과도 싸워 이긴 바 있는, 진정한 무적함대였다. 스페인의 전성기나 다름없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카를로스 1세의 아들 펠리페 2세가 있던 시절이다. 자연히 왕권과 재력은 단단하기가 최고였다. 반면 영국은 엘리자베스 1세의 치하 아래지만, 내세울 만한 게 없었다. 해적질한 드레이크와 다른 세력을 지원해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들이 탈취하는 배는 신대륙에서 오는 배였다. 당연히 막대한 황금과 자원이 있었다. 하도 잘 치고 빠져서 ‘해적’인 영국 선원들의 피해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신대륙에서 오는 황금은 유럽 전체의 황금보다 많았다. 그걸 고스란히 뺏어 오니 얼마나 훌륭한 자금원이자 충신인가. 스페인의 처형 요구에도 여왕은 되려 기사 작위를 내렸다. 분노한 펠리페 2세는 전쟁을 준비했다. 해적을 없애지 않는다면 해적을 보호한 영국을 벌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이런 발상은 그다지 어리석은 게 아니었다. 누가 봐도 강대국과 소국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보병은 잘 훈련받은 군사들이었고 영국의 보병은 술 취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병력 역시 몇 배가 차이 났다. 이순신 장군이 열세 척의 배로 싸웠듯 영국도 적은 수의 배로 싸워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의 혁신이 빛을 발했다.
혁신의 첫 번째는 배였다. 갈레온 선을 진전시켜 새로운 배를 설계한 것이다. 해적 드레이크의 사촌이자 영국의 제독이었던 그는 배의 속도에 주목했다. 선수와 선미를 줄여 배를 길고 날렵하게 만들고, 함포를 발사하는 갑판의 크기도 키웠다. 배의 안정성이 높아진 데다 전투 시에 훨씬 빠르고 급격한 기동이 가능해진 것이다. 단점은 화물 적재량이 부족하다는 점이었지만 애초에 물자도 없고 보병도 없는 영국엔 단점이 아니었다. 자신들에게 필요 없는 부분은 줄이고 필요한 것만 살린 배였던 셈이다. 이런 배는 스페인의 구식 함선과는 비교되지 않았다. 게다가 혁신적인 건 또 있었다. 대포였다. 대포가 많으면 당연히 포격전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다. 하지만 대포는 아주 비쌌다. 청동 대포가 대포의 교과서였는데, 청동은 쉬이 나오지 않았다. 제조 기술도 그 값을 해서, 영국 같은 나라는 대포와 아예 무관하다고 봐도 좋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버지 헨리 8세는 그에 대한 답을 궁리했다. 영국에서는 철이 풍부했다. 그 철을 이용해 대포를 만드는 것이 그가 생각해낸 해결책이었다. 철 장인과 대포 장인을 구해 연구했다. 많은 시도 끝에 주철 대포가 등장했고, 청동 대포와 다른 단점이 있었지만, 영국은 큰 힘을 얻게 되었다. 결국, 부족한 보병과 자원 때문에 새로운 선박과 새로운 대포가 나오게 된 것이다. 그 시도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무적함대를 무찔렀고, 그로 인해 영국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세계 최강을 무찌른 나라가 바로 그들이 아닌가, 그들의 편은 바다였다. 그렇게 대영 제국의 신화는 시작되었다. 부족한 환경은 그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선물했다. 대영 제국은 부족함을 원료로 세상을 향해 빛난 것이다!
부족한 게 오히려 빛을 발한 제국은 또 있었다. 다름 아닌 몽골 제국이다. 많이 의아한가? 몽골 제국이라면 그 많은 군사를 지녔던 나라가 아닌가. 어디가 부족하다고 봐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침략과 전투가 범인이다. 그 위상과 두려움이 너무 컸다. 그저 그랬기 때문에 안 보였을 뿐이다. 다시 떠올려라. 그들은 유목 민족이다. 우리 눈에야 거기서 거기인 북방 민족이지만, 그 안은 복잡하다. 어느 지역은 어느 민족이고, 또 어느 부족이고…. 말하자면 각각의 조각이 색도 재질도 다른 모자이크 같았다. 그 모자이크의 일부였던 칭기즈칸, 테무진의 부족은 당연히 힘이 적을 수밖에. 그 부족을 합치는 것도, 다른 어딘가를 정복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목 민족이었기에 탄탄한 문화가 있지도 역사가 있지도 않았으니까. 유목 부족이니 인구가 그리 많지도 않았을 거고, 자원이 많았을 리도 없다. 영국은 동떨어져 있는 영토와 성이라도 있었지, 몽골은 정말 모든 게 부족했다. 그런 사정은 유럽을 정복할 때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몽골은 동서를 연결하는 대제국을 건설한 것이다. 그 뒤에는 우리가 아는 기마 실력 외에 무엇이 있었던 걸까.
영국에 대포와 선박이 있었다면 몽골엔 전략과 관용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기동력을 갖출 수 있게 해 줬다. 몽골군의 진군 속도는 무려 160km, 2차 세계대전 때보다도 3~4배에 가까운 속도였다. 그들의 공격 역시 재빠를 수밖에. 초원에서 사냥하듯 몰아넣고, 투석기로 성이든 군대든 무너뜨렸다. 공격 구역을 정해 중심적으로 화살을 쏘았다. 더불어 후퇴 전략을 아주 잘 써먹었다. 공격하기에 좋은 지형이 나올 때까지 전략적인 후퇴를 했고, 그걸 쫓는 적군은 쫓아가느라 지쳐서 당하기 일쑤였다. 유목 민족에게 효과적인 전략인 공성전조차, 몽골은 투석기로 다 부쉈으니까, 그들이 용을 기른단 소문이 도는 것도 당연했다. 물론 몽골군은 이걸 아주 잘 이용했다. 부족한 군사를 잃는 것보단 할 수 있는 방도를 다 하는 게 좋았다. 부족한 게 너무 많았기에 받아들이고 이용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던 셈이다. 이 방식은 칭기즈칸이 잡은 것으로, 온 부족을 통일했을 때부터 차별하지 않았다. 유럽이라고 다른 방식을 실행한 게 아니었다. 정복한 곳마다 기술자를 초빙했고 잘 대우했다. 그들의 손길에 의해 투석기가 자리를 잡고, 성이 함락되었다. 그들은 강제로 있던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데 만족해서 몽골군의 힘이 된 것이다. 유럽 정복에서 물러난 후에도 그런 방식은 변함이 없었다. 남송을 침범하는 데 기병이 쓸모가 없자 과감히 기병을 버리고 해전에 대해 받아들였다. 남송까지도 함락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온갖 종교가 동시에 성행했다. 기독교도 샤머니즘도 불교도 이슬람교도 서로 종교적 토론을 즐기며 어우러져 살아갔다. 실로 제국이란 칭호에 걸맞은 모습이었고, 어찌 보면 현대인 지금보다도 우월한 시기였다. 관용이 만들어낸 신기한 풍경이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으면서 공평하다. 무엇이 부족하다면, 반드시 무언가를 얻기 마련이다. 풍경을 보지 못하면 바람의 변화를 더 잘 느끼지 않던가? 부족한 건 마냥 불공정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점에서의 가능성을 사사한다. 얼마 없는 위대한 나라, 제국마저도 부족함에서 시작한 나라였다. 부족하다고 침울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부족한 걸 보고 우울해하는 대신 가진 걸 보고 궁리를 하는 게 낫다. 부족하다는 건 결코 실패의 처지가 아니다. 모든 건 우리에게 달렸다. 고개를 들어 몽골을 보고, 영국을 보자. 부족하다고 무조건 망한다면, 그건 인류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자포자기하지 말자. 부족한 게 많아 보인다면 그건 혁신의 시작이나 다름없다. 모든 건 우리에게 달린 일이다. 쉬운 일은 아니나 불가능한 건 아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