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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Oct 22. 2021

명언은 명언인가 보다

사서와 작가, 이 애증의 직업들에 대하여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해라. 그럼 일한다고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누가 했는지도 잘 모르지만, 이 유명한 말은 내게 참 난감했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걸 모두가 알았기 때문이다. 무슨 상관이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은 단순하다. 게임이나 연예인과는 달리, 관련된 직업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이유는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지만,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 다들 내 장래희망을 사서나 작가로 여겼다. 게임을 좋아한다고 모두가 프로게이머 지망생인 건 아니다. 좋아하는 게 가장 적성에 맞는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사실 뻔한 이야기고, 대부분이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노래를 즐기는 사람들이 다 가수인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유독 책을 좋아할 때만 그 기대가 크다.     


생각할수록 억울한 일이다. 아니, 화장을 잘한다고 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던가.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다 연주자가 되던가. 좋아하는 것과 직업은 결이 다르다. 이따금 적성과 흥미가 놀랍도록 일치해서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즐기는 사람도 있긴 하다. 워커홀릭에 가까운 소설가나 화가, 가수, 디자이너, CEO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그런 행운은 쉬이 만나기 힘드니까. 언젠가 한 번은 내가 그런 행운을 만들어야 하나 싶기도 했다. 책을 좋아하는 것도, 도서관을 좋아하는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두 가지가 합쳐진 업무 환경이라니 솔직히 좋았다. 어쩌면 사서가 내 천직일지도 몰랐다. 그저 염두에 못 뒀을 뿐이지. 학교 도서관의 책 정리를 하는 건 나쁘지 않았다. 그리 고된 일도 아니었고 어떤 책이 들어왔나 하는 기대감에 들뜨는 것도 즐거웠다. 만약 내가 조금 더 차분했다면, 조금만 더 내성적이었다면, 아주 약간 사람보다 책을 좋아했다면 어릴 때부터 사서를 지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활발했고, 적극적이며, 열정적인 태도로 사람들과 사귀었다. 도저히 내가 도서관에서 조용히 일하는 건 상상이 되질 않았다. 적어도 중학교 때는,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받았지 외로운 일은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만났을 때여서였을까. 그 당시의 나는 그런 미래를 떠올리기만 해도 진절머리가 났다. 그런 일을 하느니 차라리 알바를 하겠노라 호언장담하던 시절이었다.  

    

그럼 작가는 어땠느냐. 이건 좀 애매했다. 어릴 적 나의 베스트셀러였던 <빨간 머리 앤>에서도, <작은 아씨들>에서도, <키다리 아저씨>에서도 작가는 언급되었던 직업이었으니까. 자연히 어린 나는 작가란 직업이 인기가 많은 거라고 생각했다. 어딜 보나 매력적인 소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글을 쓰는 모습은 황홀하게 다가왔다. 그런 소녀들의 모습까지도 창작되었다는 사실은 소름이 끼쳤다. 어쩜 그렇게 완벽하고 멋진 작업이 다 있을까! 내겐 영화배우나 아이돌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었다. 무언가를 내가 온전히 만들어내고 빛낸다니. 그게 모두 자신에게 달린 것이라니. 나는 글 쓰는 것도, 책에 대한 애정도 있었다. 좋아하는 책의 주인공들이 작가를 꿈꾸기도 했으니 작가에 대해선 점점 희망이 생겨갔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믿은 것처럼 훌륭한 작가는 되지 못했다. 조금 이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젊고, 내 인생은 단정 짓기엔 너무 짧으니 말이다. 인생을 살았다고 말하기에도 민망한 나이인데, 그런 말을 담게 된 이유가 있다. 나는 글쓰기에 내가 원하는 만큼의 재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상상보다도 글 쓰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생각이 넘쳐흘러도 그게 곧이곧대로 담기지 않았다. 딱 맞는 표현이 바로 떠오르지도, 그렇게 나온 글이 호평만 받는 것도 아니었다. 온전히 작가를 희망했다기보단 ‘천재’ 작가를 꿈꿨던 걸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게 내가 몰랐던 나의 재능이길 바란 어린아이의 막연한 상상. 그게 깨지는 건 불쾌했고, 찝찝한 일이었다. 내가 얼마나 못난 사람인지 바라보게 되는 시간이 되었으니까. 다른 이들의 재능을 보는 것도 서러운데 내 어두운 면까지 보게 된 건 작가라는 직업에 날을 세우기 충분했다. 노력한 정성보다 자존심이 더 강력했던 시기였다.     


나는 아직도 그때의 생각이 또렷하다. 왜 그런 생각을 했고, 어떤 마음이었는지.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지. 사서라는 꿈도, 작가라는 꿈도 여전히 내 주변을 맴돈다. 희한하다. 어릴 적엔 꽤 단번에 결론을 내렸던 것 같은데. 지금도 그 결론을 부정하지 않는데! 어느새 더 구체적이고 진지한 마음으로 그런 내 모습을 그려나간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싶다가도 나 자신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꽤 괜찮다는 평가가 내려진다. 예전보다 더 객관적이고, 깊고 넓은 시선으로. 어린 내가 본 것보다도 지금의 나는 그런 직업에 맞아떨어지는 사람이었다. 아아, 옛날에 그토록 불편했던 직업들이 마지막까지 주변에 남다니. 이래서야 좋아하는 게 꼭 직업과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말이 무색하다. 명언은 명언인가 보다. 불만으로 볼이 퉁퉁 부었던 아이까지도 이렇게 시간이 지나 받아들이게 되는 걸 보면.      


세상 일은 모른다고 했다. 나만 하더라도 내가 글을 쓸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그림을 그린다면 모를까.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 정말 작가나 사서가 된다면 그때는 또 어떤 생각이 드려나. 사서와 작가의 고충에 대해서 한탄만 늘어놓을 수도 있다. 부디 좀 더 어른스러운 마음으로 나를 추스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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