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말
놀랍게도 자주 들었던 말이다. 나는 이 말을 이해하기가 참 힘들었다. 책을 좋아하는 것과 인내심이 대체 무슨 상관이지? 인내심이 좋아야지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내심이 독서의 최종 목표도 아닌데. 아무 맥락 없는 이야기 같아서 어떻게 답해야 할지 막막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다가 지루하다거나 끈기가 없다며 그만둔다는 걸. 처음 그 얘길 들었을 땐 속으로 경악했었다. 지금이야 중간중간 끊어 읽기도 하지만 학창 시절엔 책을 못 내려놓아 점심도 제법 굶었으니… 내겐 완전히 외계 행성의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하고 충격이 가시질 않았던 것 같다. 몇 번 계속해서 듣자 익숙해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딴 세상으로 느껴졌다. 책이란 본디 집어 든 순간 끝을 보는 게 아니었던가! 율법과도 같았던 그 규칙이 내게만 존재했다는 건, 잊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
워낙 어릴 때부터 읽어 버릇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상한 데서 굳건한 고집 때문일까. 그 충격이 생긴 배경은 지금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왜 사람들이 인내심과 독서를 연관시켰는지 안다. 그들에게 독서란 견뎌야 하는 분야였나 보다. 지루한 것도 눈에 안 들어오는 것도 견뎌야 하는. 그 마음을 안 지금은 이해가 안 되기보단, 아쉽다. 영화나 노래의 재미는 많은 이들이 알아주는데. 독서는 점점 외면받는 것 같아서. 그 매력을 혼자서만 간직해야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영화나 노래와 달리, 독서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순전히 내 경험이지만, 초중고 생활에서 도서관에 자주 가는 아이는 손에 꼽았다. 독후감 숙제나 대회가 있어야 오고, 대출만 하고 안 읽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대학에 와선 더 심했다. 학교 도서관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친구 집이든, 주변 도서관이든, 학교든, 책이 부족하지 않았음에도 그랬다. 사실 책은 어느 곳에나 있었고 무료로 좋게 즐길 수 있었는데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노래야 출퇴근길에라도 들을 수 있고 영화야 애인, 친구, 가족과 보기에 좋다지만 독서는 함께 하기에도, 바쁠 때 짬을 내기에도 어려워서일까? 하기야, 주로 혼자 시간을 보낼 때 독서를 하게 되는데, 핸드폰과 영상의 세계는 너무나 매혹적이다. 그런 휘황찬란한 모습에 비해 독서는 수수하게 보인다. 이건 어떤 걸 더 좋아하느냐 마느냐를 떠나서 뭐가 더 화려하고 눈길이 가는지에 대한 현격한 차이다. 가뜩이나 사람들과 같이 하기도 힘든데, 큰 재미도 없다. 그렇다고 여행이나 특기처럼 동경이 되는 대상도 아니다. 그러니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 찾기 힘들어진다. 아아, 어쩌면 “인내심이 좋구나”에 담겼던 진짜 의미는 “책 읽는 걸 좋아한다니 대단하구나!”가 아니라 “책 읽는 걸 좋아한다니 많은 걸 견뎌내는구나!”였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며 인내심을 기른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오히려 성격이 급했기에 얼른 결론을 보고 싶어 했다. 내가 앞을 기억하고 있는 동안에, 모든 흐름이 이해되는 이 순간이 지나기 전에 마무리하고 싶었다. 쉬는 시간이면 이번 시간 안에 책을 다 읽는 걸 목표로 하기도 했다. 어떤 책은 몇백 페이지였는데도 자습 시간인 50분 동안 완독 하기도 했으니, 얼마나 사람이 조급한지 보여주는 셈이다. 어쩌면 우리 부모님도 그런 걸 기대하셨을지도 모른다. 두꺼운 책에 머리를 박고 읽고 있으면 좀 끈기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많은 부모님들이 그러하시듯.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인내심은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 성급함 덕에 속독이라는 기술을 익혔다. 돈 주고도 배우기 힘든 이 기술은 독서부터 수능, 온갖 시험에서 내게 큰 용기를 주었다. 워낙에 지문을 빨리 읽어내리니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뿐이랴, 다른 이들보다 내가 뭘 잘하는지 명확하게 드러나는 건 내 자신감에도 도움을 주었다. 고작 ‘빨리 읽기’인데 그 정도의 효과가 있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정말이다! 겨우 빨리 읽기에 불과하지만 그건 눈에 보이는 능력이었고, 내 장점이었다. 물론 빨리 읽으며 내용을 다 잊었다면 문제였겠지만, 내 기억력은 단단했다.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인내심을 뿌리치고 우다다다 읽어댔지만 그게 내 힘이 되었다.
나는 아직도 책을 한 번 집으면 쉽사리 놓질 못한다. 책을 놓는 건 두 가지 경우, 밥을 먹어야 하거나 갑자기 나가야 할 때다. 그 두 순간을 지키는 건 집안의 화목과 내 건강을 위해서라 양보할 수가 없다. 소설을 읽기 위해 밥을 굶다가 입원한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다. 누가 억지로 책에 접착제를 발라놓은 것도 아닌데 떨어지질 않는다. 에세이든 인문학이든 소설이든, 내겐 그 마지막 페이지가 너무 황홀하다. 그 순간 책에 온전히 몰입되는 걸 즐기기 때문일까? 때론 내가 책을 읽을 때 내 방에 있는 게 아니라, 어디 다른 세상에 접속해 있는 것만 같다. 인터넷보다도 흥미롭고 그런 세계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인내심보다 그런 맛을 배워서, 그 덕에 지금의 내가 되어서.
인내심이 있었으면 더 좋은 내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나도 좋으니,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