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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Oct 19. 2021

책이 맺어준 단짝

도서관에서 만나고 책이 이어준 친구에 대하여

이렇든 저렇든, 책은 언제나 내 옆에 있었다. 나와 쌍둥이 같은 친구를 만났을 때도!     


내 모든 것이 달라진 중학교 시절이었다. 머리 스타일부터 말투, 성격, 취미까지도 바꾸고 친구가 제법 있었던 3학년. 언제나 그랬듯이, 쉬는 시간이면 도서관에 갔다. 3학년쯤 되니 도서관에 더 정이 들어, 괜히 이것저것 정리했다. 아이들이 던져두고 간 책을 제자리에 꽂고, 흐트러진 책 배열을 가지런히 하고…. 이렇게 보면 별 것 아니지만, 그 미묘하게 어질러진 모습은 정말 신경에 거슬렸다. 내 방이 타인에 의해 엉망이 된 기분이랄까? 그렇다고 나무랄 수도 없어서, 그냥 쉬는 시간을 할애해 정돈하는 게 내 최선이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도서관이었지만, 그중 가장 손이 많이 간 곳은 만화책 서가였다. 가뜩이나 사춘기 아이들에게 가장 흥미로울 책들인데, 아이들이 앉을 수 있는 데다 탁자도 있었으니까. 만화책이든 뭐든 읽는 건 좋은 일이지만 만화책이 주는 가벼움 때문인지, 제대로 정리하고 자리를 뜨는 애들은 드물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 이래도 입에선 절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어떻게 이렇게 정리를 안 하지?? 그냥 제대로 꽂기만 하면 되는데!!”     


누가 알았을까? 어느새 내가 있는 서가의 반대편에서 나랑 똑같이 책을 정리하던 아이가 그 말에 호응할 줄.     

“그러니까! 너무 책을 함부로 해! 뒷정리는 제대로 해야지!!”     


처음 보는 친구였다. 아니, 사실 나이도 몰랐다. 그러니까 그 순간에 알았던 건 같은 학교의 학생이라는 점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우리한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양 끝에서 정리하면서 오다가 가운데에서 만난 순간, 내 입에서 나온 말 한마디가 우릴 묶어줬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눈이 저절로 친구에게 향했다. 그 친구도 나를 바라봤고, 우리의 눈은 제대로 마주쳤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손이 짝! 하고 하이파이브하며 부딪혔다. 그 파열음 다음부턴 일사천리, 짠 것처럼 착착착 진행되었다.    

 

“3학년이야? 몇 반이야? 내 이름은 이도윤이야. 밥 같이 먹을래?”     


순식간에 서로가 옆반이란 걸 알았다. 동갑내기에, 옆반에, 같이 도서관 죽순이라. 아이들에겐 그 정도면 친해지기 충분했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말이 통했고, 도서관에 대해 이야기해도 부담이 없었다. 관심사가 거의 똑같았을뿐더러 취향도 놀랍도록 닮았다! 그날 바로 점심시간에 나는 내 반의 친구와 도서관에서 만난 친구를 소개했다. 같이 밥을 먹고 운동장을 돌면서 서로 지금껏 알지 못했음을 놀라워했다. 어디서 이런 애가 나왔나 싶을 정도였다. 정말, 내가 조금만 더 순진했다면 삼신할머니가 내 쌍둥이를 실수로 떨어뜨려 놓으셨나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덩치나 말투, 성격은 달랐지만 그 안의 영혼이 너무 닮았단 말이다. 외모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도 힘든 일이 중학교 소녀들에게 일어났었다. 지금 생각해도, 운명이라고 밖엔 설명할 수가 없다. 그 외에 무슨 말을 할까. 수원이 고향인 내가 보령에 간 것도, 그때 그 시간 도서관에 있었던 것도, 하필 그 순간 서로 한 서가의 양 끝에서 정리를 했던 것도 짜 맞춘 듯 완벽한 친구의 만남이었다. 영화였다면 그 만남 이후로 분명 엄청난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다행히 현실에서는 8년 지기 친구를 얻은 걸로 마무리되었지만.     


그 친구가 나랑 쌍둥이가 아닐까, 싶었던 순간은 또 있었다. 같은 웹툰을 좋아하고, 같은 소설을 읽고 하는 건 이미 우리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말 상상도 못 한 데서 친구와 이어져 있었음을 알았다. 나는 그토록 책을 좋아했는데도, 이상하게 다독상을 받으면 늘 은상이었다. 알 수가 없었다. 아니, 나보다 더 책을 읽는 사람이 있다고? 있긴 한가? 있다면, 대체 누구지? 그 의문은 나만이 아니라 부모님과 친구들까지 품은 의문이었다. 아무리 봐도 나만큼 책에 미쳐 있는 아이는 없었는데. 그런데, 슬슬 1등을 포기한 3학년이 되어서야 1등 다독상을 받았다. 놀랍기도 하고 신도 나서 새로 만난 도서관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이번엔 웬일로 1등 다독상을 받았다고. 그러자 친구의 한마디.     


“아, 이번엔 너구나.”    

 

그 한마디로 알았다. 너로구나! 내 앞에 있었던 사람이 너였어!      


“그게 너였어?????”     


세상에, 그렇게 누군지 궁금했던 존재의 정체가 얼마 전 만난 친구라니. 그제야 납득할 수 있었다. 이 친구라면 나와 읽은 양도 비슷하고, 좋아하는 것도 똑같으니 다독상 1등이 아닌 것도 이상했다. 의도치 않은 순간에 정말 알고 싶었던 걸 알게 되었던 거다. 그때의 그 충격과 시원함, 허탈함이란. 생각지도 못한 걸 알게 되었는데, 오랜 의문을 풀어 시원했고, 너무 심심하게 풀어져 허탈했다. 심지어 이 친구는 중학교 3학년이라고 책을 좀 덜 읽었단다! 그게 내가 마지막 3학년 때 1등 다독상을 탄 숨은 배경이었다. 어휴, 이 정도면 삼신할머니가 쌍둥이는 아니라도 분명한 인연을 주셨던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엮일 리 있나.  

   

그 친구와는 여전히 연락한다. 아마 시간이 흘러도, 그 친구를 잊을 순 없을 것이다. 오래 떨어져 있다 만나도 옆에 있었던 것 마냥 취향이 통하고, 이야기가 술술 나오는 친구. 거기다 내 인생에 다시없을 영화 같은 시작으로 함께한 친구가 아닌가. 삼신할머니가 계획하시고 도서관이 맺어준 우리의 우정이 조금 바래더라도 계속되길 바란다.     


야, 친구야, 우리 계속 이대로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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