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바람이 차갑지만, 그래도 이 쌀쌀한 공기가 싫지 않은 이유는 봄이 오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곧 따뜻한 햇살이 일상에 온기를 더해주리라.
어제와 똑같은 분주한 일상이 반복된다. 남편 출근길 배웅하고, 삼 남매 차례로 등교시킨 후 어질러진 집을 대충 정돈한다. 커피 한 잔의 여유 없이 노트북을 켜고 매의 눈으로 '오늘의 채용공고'를 훑어본다.
채용공고가 나오는 대로 지원을 하고 있는데 한동안 면접은 고사하고 1차 서류 합격 소식도 없었다. 구직에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없었기에 꽤나 당황스러웠다. 처음으로 1차 서류심사 합격 전화를 받았을 때 얼마나 감격하고 감사하던지, 꼭 최종 합격한 것처럼 기뻤다. 드디어 기회가 왔구나 싶었고 꼭 붙을 줄 알았다.
면접 보러 가는 날, 아들이 떨리지 않냐고 물었을 때 나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응, 엄마는 너희 셋을 낳아 키우고 있잖아. 하나도 안 떨려."
정말 그랬다. 내가 하려는 일은 교육 관련 일이어서 그동안 쌓은 경력에 삼 남매를 양육한 경험이 더해져 자신 있었고, 내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 몇 번의 면접을 봤지만 결과는 모두 불합격! 평균 경쟁률이 자그마치 50대 1이란다. 그제야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깨달았다.
'1차 합격도 기적이었구나.'
그렇다고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칼바람 불던 아이엠에프 때도 별 어려움 없이 취업했고, 육아 중에도 경력단절을 넘어서 원하던 때에 일을 할 수 있었기에 구직에 막연하게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지원서를 내고 연이어 불합격하자 거부당했다는 느낌이 강했다. 잠시 자존감이 내려가기도 했다.
'거부당하는 연습'
문득 떠오른 말이다. 지금은 거부당하는 연습 중이고 이 역시 인생에 큰 공부가 될 것이다.
아들이 들어가고 싶은 동아리에 면접을 보고 와서는 경쟁률이 높아서 떨어질 것 같다고 지레 걱정했다. 이미 지원한 학교에 떨어져 본 경험이 있기에 소심해진 아들에게 본이 되어주고 싶었다.
"엄마 또 불합격인가 봐. 연락이 없네?"
나름 쿨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지원 결과를 이야기하고 선택되지 못한 씁쓸함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아들은 내 어깨를 주물러주며 무언의 격려를 해주었다.
"어휴, 우리 엄마 진가를 잘 몰라보네. 엄마, 하나님이 더 좋은 곳에서 일하게 해 주실 거야."
딸들은 엄마 속상할까 봐 호들갑스럽게 위로의 말을 건네기 바빴다. 대견하고 사랑스러워서 눈물이 났다. 그 무엇보다 우리 삼 남매 자체가 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