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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여운 여인 Mar 12. 2024

아직은 품 안의 아이

천천히 떠나보내는 연습을 합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운동을 따로 하지 않았지만 만보를 넘긴 것 보면 오늘도 열심히 살았구나 싶다. 한숨 돌리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엄마 데리러 와줄 수 있어요?"

 

막내는 하굣길에 친구와 오다가 헤어지면 마중 나오라는 전화를 자주 다.


"엄마 힘든데."


생각보다 말이 앞섰다. '내가 이런 거 하려고 쉬고 싶었는데...' 이내 생각을 고친다.


"알겠어. 엄마가 데리러 갈게."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전력질주가 시작된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데리러 가기 위해 뛰고 또 뛴다.




막내는 가끔 하굣길에 교문 앞으로 마중 나온 엄마와 집에 가는 친구가 부럽다는 얘기를 했다. 출근하면서 등굣길은 동행해 주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나 보다. 아이의 허한 마음을 꼭꼭 채워주고 싶었다. 일을 하면서도 아이가 엄마를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민거리였다.


초등학교 3학년! 아직은 엄마 손 잡고 다니는 게 너무도 행복한 막내다.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과감히 퇴사를 했다. 퇴사의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 때 일하느라 아이들을 잘 챙겨주지 못한 보상심리가 컸다. 막내가 1, 2학년을 지낸 코로나 시절, 엄마가 출근하면 4살 위인 언니가 동생 온라인 수업과 숙제 등을 도와주며  엄마의 역할을 감당해 주었다. 잘 지내주는 아이들에게 늘 미안하고 고마웠다.


'이제는 엄마가 다 해줄게.'




저기, 엄마를 본 아이가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며 뛰어온다. 나도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현해 준다. 아이가 품에 안기면 어느새 걱정근심과 피곤함이 사라진다.


"오늘은 어땠어?"


이 한마디에 막내는 미소 머금은 얼굴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재잘재잘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오늘도 아주 즐겁게 지낸 모양이다. 평범한 일상 같지만 날마다 새롭고 특별하다. 그리고 감사하고 행복하다. 나는 퇴사 후 매일 반복되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맘껏 누렸다.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지 않은가!




막내는 주로 친구와 등교했지만, 가끔씩 엄마와 가고 싶어 할 때면 기꺼이 동행해 주었다. 내손을 꼭 잡은 아이 손이 그새 많이 컸다. 교문 앞에서 아이를 품에 안아주고 엉덩이를 두드려준다. 엄마 품에서 떠나 학생들 사이로 씩씩하게 걸어가는 아이 뒷모습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 좋은 하루 보내라고 다시 한번  소리로 인사한다. 아이가 뒤돌아보며 환하게 웃어준다. 우리는 그냥 헤어지는 법이 없다. 연인들이 헤어지기 아쉬워 자꾸만 뒤 돌아보듯 서로 안 보일 때까지 열심히 손을 흔들어 준다. 


무슨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요란하게 등교 배웅을 마치고 나서도 선뜻 발걸음이 떼지지 않는다. 눈가가 촉촉해진다. 학교 안으로 점점 멀어져 가는 아이를 보면 나는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걸까? 막내가 총총 사라져 간 지점을 바라본다. 첫째도, 둘째도 이렇게 엄마품에서 서서히 분리되어 갔다.


막내에게도 곧 엄마 손을 부담스러워할 때가 오겠지만 아이가 원할 때까지 꼭 잡아줄 거다.  어느 순간 더 커다란 세상 밖으로 나아갈 아이와 헤어지는 연습을 한다. 오늘도 천천히.




첫째, 둘째가 등교한 후, 막내가 일어날 시간이다. 늦잠 자는 아이 등을 어루만지며 귓가에 학교 갈 시간이라고 속삭인다. 막내는 눈을 감은 채 간지러워하면서도  웃고 있다. 어깨를 조물조물해 주면 까르륵거리며 몸이 어쩔 줄을 모른다. 아가 때부터 많이 웃게 만드는 스킨십이었는데 기분 좋게 깨우는 필살기가 되었다. 이제 됐다 싶으면 돌아서 어부바 자세를 취한다. 막내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등에 업혀 화장실을 가리킨다.


"아이고, 우리 애기 이제 발이 바닥에 닿겠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는 동안 아이는 훌쩍 자랐다. 등교 준비를 도우며 묻는다.


"엄마가 데려다줄까?"

"아니, 괜찮아."


늘 엄마가 등굣길 배웅해 주길 원했던 꼬마였는데, 5학년이 되니 혼자서 씩씩하게 집을 나선다. 나는 이제 어린애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아직은 품 안의 아이지만 제 오빠와 언니가 그랬던 것처럼 혼자힘으로 서서히 나아간다. 두려움반, 설렘반 호기심 가득 안고 세상 속으로 한 걸음씩.


예행연습을 많이 해서일까? 막내도 나도 자연스럽다. 마치 늘 그래왔던 것처럼 눈물보다는 무한한 응원의 미소를 보내며 손을 흔든.


"하원아, 좋은 하루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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