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드 영사와 공안의 뒤끝
브레드 영사와 공안의 뒤끝
왕 경관이 작업 중인 나에게 오라는 손짓을 한 건 오후 2시쯤이었다.
왕 경관보다는 높은 계급인 듯 보이는 처음 보는 경관 두 명, 그리고 조선족 죄수 한 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그들을 따라 경관 사무실에 들어와서야 박 씨 성을 가진 조선족 죄수가 자초 지경을 말해주었다.
미국 영사와 전화통화를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 면회는 아예 불가능했고 이전 미국 영사관의 영상 면회 요청은 감옥 내에 영어를 할 줄 아는 경관이 없다는 이유로 감옥 측이 거절했다고 전해 들은 바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영사관에서 우리 감옥에 한국어 통역이 가능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한국계 미국 영사와의 전화 통화를 요청해 온 것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핑곗거리가 없어진 감옥 측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허락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쪽에서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최 영사’라는 말에 나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선양 미국 영사관에 최 영사라는 한국계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고 또 내 케이스를 시작부터 지금까지 자기 일처럼 맡아온 ‘브레드’ 영사가 갑자기 빠진다는 것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화를 받기 전, 간수소에서도 늘 그랬듯이 협박성 경고가 먼저 날아든다.
“절대 감옥 내 얘기는 하면 안 되고 물어보면 그냥 잘 먹고 잘 지낸다고 말해야 돼요.
쓸데없는 말 했다가는 이곳 생활 진짜 괴로워지니까. 알겠죠”
통역을 맡은 박 씨가 벽에 둘러선 채 나를 노려보는 경관들은 대신해 입조심을 당부한다. 왕경관이 전화를 스피커폰 모드로 바꾼다.
“여보세요, 어떻게 잘 계신가요? 몸은 아픈데 없고요?”
방안에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난 약간은 서툰 그 한국어 발음의 목소리가 ‘최 영사’가 아닌 브레드 영사의 것이라는 걸 대번에 알아챘다.
간수소 시절, 면회 때마다 지겹게 따라붙는 중국 외사과 직원, 공안, 검찰, 간수소 부소장까지, 그들의 귀를 피하려고 항상 영어로 만 대화를 했기 때문에 내가 그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거다.
미군 장교 출신인 그는 백인이었지만 군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해 나중에는 한국 미 대사관에서 근무했고 또 그때 만난 부인이 한국인이라 발음만 빼면 토종 한국인보다 한국어가 더 완벽했다.
한국어로는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의 이름을 ‘최 영사’로 둔갑시키고 영상 대신 음성으로만 면회를 신청한 것이었다.
만 날 때마다 “큰 힘이 못 되어 줘서....” 미안해하던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최종 선고 때였다.
코로나 때문에 난 간수소에서 영상으로만 출석했던 그 재판에서 선고가 내려지고 장내가 어수선해지자 재판장에 있던 브레드 영사는 그 틈을 타 마이크를 잡고 나를 위해 아내가 미국에서 써 보낸 편지를 빠르게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라 그런가? 미국 참 덥네.
주혁이도 이제 다 컸나 봐. 엄마 청소하면 힘들다고 걱정이 많더라고 ^^
하지만 잘 견디고 있으니까 걱정 마. 도리어 감사할 건 천지에 수도 없이 많아.
영사님께 특히 감사하고 과기대 기도 후원자들, 또 알게 모르게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모든 이들께 고마울 뿐이야”
자산 압류에 변호사 비용까지...
돈도 없이 갑자기 미국으로 떠난 아내는 대학 강단에서 내려와 청소일을 하고 있는 듯했다. 코로나로 엉망이 된 미국에서 막내를 데리고 혼자 고생하고 있을 아내 생각에 목이 막혀 왔다.
“저 새끼 뭐야!” 뭐 하는 거야!
뒤에서 날 감시하던 간수소 관교가 브레드 영사의 이런 모습을 모니터에서 발견하고는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는 마이크를 통해 재판장에 있는 공안에게 급히 제지를 명령한다.
저 미국 놈! 마이크 뺏어! 빨리 뺏어!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계속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있어
내가 기도하는 시간은 당신이 잠자는 시간인데…
항상 잘 자고 일어나게 해 달라고..."
어…어…. 잠깐만, 잠깐만…… 하여간 힘내세요, 이 선생님!..
코로나 사태 후, 6개월 넘게 면회는커녕 가족의 소식 한 줄 전해줄 수 없었던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그때 그는 정말 내게 가능한 한자라도 더 아내의 편지를 읽어 주려고 안간힘을 써 주었다.
“네 잘 견디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은 어떻게 잘 지내나요?”
“네, 다 잘 있으니까, 걱정 마시고 이 선생님 몸만 잘 챙기세요.
주혁이는 미국에 잘 적응하고 있고 학교에서도 다 올 A+ 이랍니다. 허! 허!”
간수소 면회를 올 때마다 밖에서 따로 만나주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늘 연락하며 막내 놈을 각별히 챙겨주던 그였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체포 당시 들이닥친 공안들이 초등학생이었던 막내 놈의 핸드폰, 컴퓨터 심지어 디지털카메라까지 모두 압수해 가고 수사가 끝나도 돌려줄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안 브레드가 우리의 면회를 또 지켜보러 온 공안에게 다가가 “주혁이도 엄연한 미국 시민이고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는 미국인의 개인 물품은 빨리 돌려 달라”며 호통을 쳤다.
얼떨결에 무안을 당한 공안은 ‘곧 돌려주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그 약속은 2년이나 걸려 지켜졌고 우리 부부의 압수품과 같이 돈 될 만한 부속품들은 다 빼 가고 쓸모없는 고물이 되어 돌아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더 이상 중국 체류비자를 내주지 않자 대한민국 국적자인 아내는 일단 한국행을 고려했지만 막내 녀석은 브레드 영사에게 미국으로 가고 싶다고 했고, 이에 그가 아내 비자까지 직접 챙겨줘 코로나 사태를 뚫고 미국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고 한다.
다음 주 정도면 아내의 편지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이미 감옥 측과 얘기가 다 끝났고 답장도 가능하다고 알려줬다. 그리고 브레드는 언제나 그랬듯이 ‘큰 힘이 못 되어 줘….’또 미안해했고 면회가 풀리면 꼭 찾아오겠다는 말로 무사히 통화를 마쳤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싼 경관들의 심기를 건드린 건 대화 중 “감옥 환경은 어떠냐?”는 그의 질문에 내가 영어로 대답한 부분이었다.
아무리 사전에 협박을 받았다고 하지만 난 차마 거짓말을 할 수 없어 영어로 이곳의 꼬락서니를 대충 돌려 말했고 내 의중을 단박에 알아챈 그는 “다음에도 그런 식으로 얘기해 달라”며 그 역시 영어로 화답했다.
눈을 부라리며 영어로 무슨 얘기를 했는지 똑바로 말하라는 경관들에게 난 “별다른 얘기 아니었다. 지낼 만하다”라고 말했다고 얼버무렸지만 이미 눈치를 챘는지 경관들은 “녹음한 영상 다시 돌려 보면 금방 알 수 있다”며 계속 윽박질렀다.
그 와중에 흥분한 나 역시 목소리가 높아져 버렸고 마침 밖에서 그 소리를 들은 누군가가 욕설을 내 지르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소란은 순간 잠잠해졌다.
“이 새끼 뭐야! 어디서 소리를 지르는 거야!”
깡마르고 날카로운 인상의 교정과 과장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아무 곳에서나 수감자들에게 폭력을 쓰는 걸로 유명한 인간이었다.
입관대에 있을 때, 모두가 엑스레이를 찍으러 의무대에 간 적이 있었는데 복도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죄수 두 명이 잡담을 했다는 이유로 머리통을 쥐어 잡고 시멘트 벽에다 사정없이 내리쳐 두 녀석의 이마가 만신창이가 된 적이 있었다.
“미국 사람입니다. 아직 감옥 규칙을 잘 몰라서 …. “
나를 비롯해 모두가 그의 갑작스러운 출연에 바짝 얼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조선족 박 씨가 나를 변호해 주듯 나섰다.
“미국 놈? 그래서 뭐! 미국 놈은 멋대로 해도 되는 거야! 이 새끼가 빠져서”
녀석은 나를 쏘아보며 느닷없이 탈의를 명령했다.
옆에 있던 조선족 박 씨가 빨리 벗으라며 나를 재촉했고 나도 분위기에 눌려 상의부터 벗기 시작했고 무슨 심보인지 그는 다른 경관을 시켜 나의 탈의 장면을 영상으로 찍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굴욕은 견디기 싫었던 나는 속옷 한 개만 남겨둔 상태에서 아무 말없이 주섬주섬 다시 옷을 주워 입었다.
“이 새끼가 미쳤나!”
그 모습을 본 녀석이 나의 목을 누르며 한방 칠 듯 주먹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상황은 거기까지였다. 맞서 노려보는 내 눈빛 때문이었는지, 녀석의 허리춤을 잡고 말리는 박 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나중의 경철이 말 대로 내가 ‘미국 놈’이라 그랬는지 하여간 녀석은 끝내 나를 구타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대신 나는 ‘징벌방’이라는 곳으로 끌려가 개고생을 해야 했다.
그곳에서 나는 마치 전깃줄에 앉은 참새처럼 엉덩이만 살짝 걸칠 수 있는 가느다란 벤치에 앉아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 16시간 공자 맹자의 책들을 외우고 또 낭독해야 했다. 그리고 조금만 게으름을 피우거나 틀리면 여지없이 감독 경관의 욕설과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난 그때, 퉁퉁 부은 정강이를 부여잡고 악취 나는 변기통 옆에서 며칠간이나 새우잠을 자면서 중국 공안들의 뒤끝을 제대로 맛보았다.
대만의 따이 문화사가 보내온 중문 번역본 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