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진선인’을 아십니까?
나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도를 아십니까’하며 접근하는 사이비 종교의 길거리 포교도 아니고 또, ‘진선인’은 뭐지, 진선미는 아는데… 같은 건가?…
나를 잠시 헷갈리게 만든 사람은 얼마 전 우리 방으로 온 조선족 이 만길 씨다.
이마가 너무 길어 마치 삼류 SF 영화에 나오는 ‘콘헤드’ 외계인 같기도 하고 ‘합죽이’상 인 데다 간수소가 뭐가 그리 좋은 지 늘 웃고 다녀 안동 하회탈 같아 보이기도 했다.
생김새도 그런데 그는 지적 수준도 많이 떨어졌다. 지적 장애인인 듯 보였다.
가끔 시청각 교육시간에 유교 경전의 효도, 사랑 등 하여간 부모님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엉엉 울어 댔다. 그리고는 잠시 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스마일'이었다. 안 그래도 여러모로 다른 수감자들에게 타박받을 거리가 많은데 만길 씨는 게다가 ‘파룬궁’ 신자였고 체포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공산당의 교육이 무섭긴 무서웠다. 파룬궁을 말살시키기 위한 공산당의 선전에 길들여진 수감자들은 한족, 조선족 가릴 것 없이 파룬궁 신자 만길 씨를 비웃고 손가락질했다. 나이 오십이 넘은 그는 아들뻘 되는 놈들에게도 조롱감이 되었고 걸핏하면 엉덩이를 걷어 차이고 얻어맞기 일쑤였다. 그래도 한족에 비해 연장자를 대접해 주는 조선족들 조차도 ‘조선족 망신시킨다’는 이유로 그를 따돌리고 멀리했다.
그가 물어온 ‘진선인’(眞·善·忍)이란 진실·선량·인내를 핵심 사상으로 삼는 중국의 심신 수련법이다. 그리고 중국 공산당이 '왜 저렇게까지 싫어할까' 싶은 ‘파룬궁’은 바로 그것을 통해 인격수양과 신체 단련을 한다.
파룬궁은 처음부터 중국 공산당에게 미움과 탄압을 받는 건 아니다. 오히려 처음에는 인민들의 문화생활 증진을 위해 장려하기도 했다. 창시자 리훙쯔는 그래서 중국 공산당에게 국민 건강에 기여한 공로로 수 차례 표창까지 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인기가 많아져도 너무 많아졌다는 것이었다.
중국에서도 '웰빙'이 트렌드가 되면서 수련자가 1억 명을 돌파하자 8천만 명의 당원을 가진 공산당은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고, 청나라 말 ‘태평천국의 난’를 떠올리며 파룬궁을 사교 집단으로 낙인찍었고 본격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파룬궁 탄압은 대륙스럽게 잔인하고 끈질겼다. 100여 가지 고문법을 사용해 수련을 포기하게 했고, 끝까지 버티는 자들은 산채로 장기를 적출해 사망케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박해와 탄압은 20년 넘게 계속되고 있고 현재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고 죽었는지는 중국공산당 빼고는 아무도 모르는 실정이다.
만길 씨는 ‘그래도 이방에서 제일 자신을 인간 대접해 준다’며 나에게 무척이나 친근하게 굴었다.
“이 사장, 노스트라다무스 알아요? 1999년 지구 종말 그거…”
“알긴 알죠, 그런데 이미 거짓말로 판명됐잖아요.”
“아니, 아니지, 1999년 7월, 바로 장쩌민이 우리를 탄압하기 시작한 때지.”
그러니까 만길 씨 얘기는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서에 나오는 1999년 7월 하늘로부터 출연한다는 공포의 대왕이 바로 장쩌민 전 주석이라는 것이었다. 조금은 어이없는 ‘풀이’ 긴 했지만 가끔 이럴 때 보면 그에게 지적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에게는 분명 남다른 능력이 있긴 했는데 일종의 예지력 같은 거였다.
그가 갓 왔을 때였다.
방풍장(구치소 내 좁은 야외 휴식공간)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고 있는데 뒤에서 따라오던 그가 도대체 누구 들으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계속 혼자 말을 해댔다.
“분명 여기였어, 잡혀 오기 전에 내 꿈에서 분명 여길 봤다니까요,
저 담벼락도, 또 담벼락 너머 백양나무들도… 꿈속이랑 똑같아요 “
그리고 만길 씨는 며칠 후, 꿈에 장백산(백두산)의 화산이 폭발해 도시가 잿더미로 변하고 양쯔강 물이 끓어올라 범람해 사람들이 다 죽어가는 걸 보았다고 했다.
“분명 중국이 망하는 꿈이에요, 이제 중국 공산당도 얼마 남지 않은 거죠. 끝난 거죠”
비장함과 함께 약간의 고소함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만길 씨는 ‘셀프 꿈 해몽’을 했고, 그리고 정말 다음날부터 뉴스에서는 본격적으로 우한의 코로나 사태가 보도되기 시작했다.
“저거 보세요, 내 꿈이 맞죠”
하루하루 불어 나는 사망자수를 지켜보면 만길 씨는 많이 흥분했다. 하지만 그의 꿈과는 달리 전 세계에 병균을 퍼트린 중국 공산당은 정작 방역에 성공해 사망자 수를 점차 줄여 갔고, 도리어 미국이 하루에 수 천 명씩 사망자를 쏟아 내며 멸망해 가는 것처럼 보였다. 덕분에 만길 씨의 흥분은 곧 가라앉았지만 나는 미국으로 떠났다는 가족 걱정에 매일 노심초사했다.
하루는 만길 씨가 나에게 꿈 해몽을 부탁한 적도 있다. 자신의 이가 몽땅 빠지고 피가 나는 꿈을 꿨다고 했다. 어디선가 들은 내 지식으로는 그런 꿈은 부모님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 수 있음을 암시하는 흉몽이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안 그래도 팔십이 넘은 중풍 환자, 아버지를 홀로 두고 잡혀 와 식사 때마다 아버지 걱정에 눈물을 흘리는 그에게 그런 해몽을 말해 줄 수는 없었다.
만길 씨는 이곳에 잡혀 오기 전, 국수 공장에 다니면서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혼자 돌본 효자였다.
한국으로 돈 벌러 간 아내는 소식이 끊겼고 어머니는 아버지 병시중을 하시다 도리어 먼저 암으로 2년 전쯤 돌아가셨다고 했다. 스무 살 먹은 아들이 하나 있긴 한데 아버지 정신이 온전치 않다는 이유로 집과는 발을 끊은 지 오래라고 했다.
만길 씨는 파룬궁 전도요원이었다. 작은 돌에 파룬궁 전도지를 둘둘 감아 새총을 이용해 새벽에 공원의 나무 위에 걸어 놓는 게 그의 임무였다. 그렇게 해 놓으면 공원을 찾는 방문객들 발등에 그 돌이 떨어질 테고, 그 돌을 우연히 주운 방문객은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돌에 감긴 전도지를 펼쳐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아 파룬궁에 빠진다는, 참! 만길 씨 다운 전도 방법이었다.
그 방법으로 얼마나 많은 신자를 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만길 씨는 직장 동료에게 그 사실이 탄로 나 잡혀 오게 됐다.
우리 아버지 밥은 누가 챙겨 주겠죠?
공안에서 우리 누이에게 연락은 했겠죠?
그런데 왜 누이는 영치금을 안 넣어주지?
만길 씨는 궁금한 게 많았다. 하지만 돈도 뺵도 변호사도 없는 그가 밖의 아버지에게 또 한국에 있다는 누이에게 연락할 방법은 없었다. 가끔 복도로 난 창문의 쇠창살에 얼굴을 붙이고 지나가는 관교(중국의 교도관)에게 간곡히 부탁도 해보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똑같았다.
“아니, 이 사람이 큰일 날 소리 하네, 관교가 어떻게 수감자 가족하고 연락을 해!
누구 옷 벗는 꼴 보고 싶어”
어제 아침에도 스무 살짜리 한족 수감자에게 밖에서 가족이 보내온 만두를 배달했던 그가 심히 역정을 냈다.
밖에 계신 그의 아버지 안부를 알 길이 없으니 그의 꿈에 내가 알던 해몽이 맞는 건지 안 맞는 건지 확인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신기하게 그의 꿈은 어떤 식으로 던 비슷하게 맞아 떨어지기는 했다.
“이 사장 어떡하지, 나 좀 도와줘”
그날 저녁, 만길 씨는 울상이 되어 화장실에서 나를 급히 찾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정말 그의 이가 다 빠져 버리고 만 것이었다.
만길 씨는 어릴 때 열병을 앓아 원래 이가 하나도 없었다. 그가 ‘합죽이'상이었던 건 위아래 모두 틀니였기 때문이다. 매일 저녁 방장의 허락을 받고 혼자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틀니를 청소했는데 그날 그만 칫솔로 닦던 아래 틀니가 변기에 빠져 버린 것이었다.
수감실 화장실은 너무 좁아 그냥 재래식 중국 변기만 두 개 있다고 상상하면 된다.
세수를 할 때도, 목욕을 할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 빨래를 할 때도 모두 그 변기 위에 서서 하거나 대야를 받쳐 놓고 했다. 그래서 나도 경험해 봤지만 세숫비누나 칫솔을 실수로 놓치면 여지없이 자동으로 변기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기 마련이었다.
반은 재래식, 반은 수세식인 이 오래되고 이상한 변기는 아래쪽에 보이는 파이프가 밖의 정화조까지 연결되어 있었고 배설물을 밖으로 보내려면 바가지로 물을 퍼서 쏟아부어야만 했다.
만길 씨의 틀니는 그 녹슨 파이프 통로에 오물 찌꺼기들과 함께 걸려 있었는데 문제는 그 통로가 너무 좁다는 것이었다. 만길 씨는 틀니를 되찾기 위해 그 통로에 팔을 쑤셔 넣어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려 봤지만 야속한 틀니는 끝내 손에 닿지 안 않고 애꿎은 그의 팔뚝만 여기저기 긁혀 피와 오물로 범벅이 되었다.
아무리 왕따인 만길 씨지만 수감자들이 보기에도 그 모습은 너무 안타까웠던지 서로 꺼낼 방법을 같이 궁리하다 여의치 않자 담당 관교를 호출해 주었다.
“에이, 이거 무슨 도구가 있어야 꺼낼 수 있겠는데…”
들어올 때부터 짜증스러워하던 담당 관교가 도구라고 가져온 건 밖에서 주워 온 얇은 나뭇가지 하나였다. 손전등을 비추고 나뭇가지로 통로에 낀 틀니를 툭툭 쳐 대던 관교가 순간 당황하고 만다.
“어…어…어.. 이거 어떡하지”
어째 불안 불안하더니 통로에 걸려 있던 틀니가 그만 ‘쏙’, 파이프를 타고 정화조로 내려가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만길 씨는 더 이상 자신의 틀니가 보이지 않자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 아.. 괜찮아, 괜찮아,
내가 밖에 연락해서 틀니 만드는 치과 의사 불러올 테니까.
울지 마, 그래 울지 마.
알았지, 알았지
관교는 연신 OK 사인을 손가락으로 만들어 보여주며 울먹이는 만길 씨를 달랬다. 나도 그랬지만 수감실 모두관교의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오직 한 사람, 만길 씨만 내가 그곳을 떠날 때까지 그 약속을 믿고 있는 눈치였다.
“코로나 때문에 여태 의사가 못 들어와 그런데요
다음 주부터 간수소 면회도 다시 된다니까, 내 틀니도 곧 오겠죠, 하하하 “
한 달 넘게 틀니가 없어 씹질 못해 밥을 물에 마셔 먹는 모습에 내가 ‘힘들지 않냐’고 묻자 그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하회탈 웃음은 보이며 그렇게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