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삿포로 일본어 (1)
이번 여름의 목적지는 일본 홋카이도, 그중에서도 삿포로였다. 평소 더위를 싫어하는 나에게 시원한 북쪽의 여름은 오래전부터 버킷리스트였다. 작년 여름의 후끈한 오사카와는 전혀 다른, 선선한 공기를 느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 준비를 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공항으로 향했다. 인천공항의 아침 공기는 언제나 분주하지만 여행자들의 얼굴엔 묘한 설렘이 스친다. 비행기는 정오 무렵 출발해 오후 3시쯤 삿포로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미리 알아본 키노토야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키노토야 아이스크림은 국제선에서 국내선으로 가는 방향에 있는 유명한 훗카이도산 아이스크림이다. 유지방 함량이 높아서 그런지 소프트 아이스크림임에도 불구하고 꾸덕한 맛이 느껴졌다. 삿포로에서 먹은 음식들 중에 가장 맛있고, 내 인생에서 먹어본 아이스크림 중에서도 가장 맛있었다. 돌아오는 공항에서 한 번 더 먹었을 정도로 말이다.
이때 또 하나의 도전이 있었는데 바로 일본어로 아이스크림을 주문한 것이었다. 아이스크림의 개수뿐 아니라 콘인지 컵인지 등 여러 대화를 일본어로 나누고 그것을 영상으로 찍었다. 그리고 그 영상을 보면서 다이어리에 그날의 일들을 기록했다.
삿포로역에서 10분 거리인 게이오플라자호텔(Keio Plaza Hotel)에 체크인을 했다. 체크인 후 잠시 짐을 풀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과 저녁으로 물드는 하늘이 첫날의 긴장을 풀어주는 듯했다. 그러고 나서 삿포로역 근처에 있는 스프카레킹에 스프카레를 먹으러 갔다.
스프카레킹에서도 일본어로 주문을 하고 그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스프카레는 마치 '내 영혼의 닭고기 스프'처럼 몸과 마음을 따듯하게 만들어줬다. 맛있게 먹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삿포로는 생각보다 낮에 무더웠는데 그제야 비로소 ‘아, 내가 삿포로에 와 있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 호텔 방으로 돌아와 다음 날 일정을 확인했다. 그리고 오늘 하루의 일정과 소감을 영수증과 함께 다이어리에 기록하고 꾸몄다.
다이어리는 이번에 삿포로에 오면서 하고자 마음먹은 일들 중 하나였다. 수첩부터 일본어 도장, 스티커, 풀테이프, 마스킹테이프 등 모든 것들을 일본 현지 문구점에서 구입했다. '센트럴'이라는 대형 문구점이었는데 한 건물에 여러 층을 사용하고 있었고 층마다 컨셉이 달랐다.
그리고 그 안에는 신기하게도 오래된 전통의 라면 가게가 있었는데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맛집으로 국내 미식 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된 바 있었다. 거기서 미소라멘과 소유라멘을 먹고 뿌듯한 다꾸쇼핑을 마쳤다.
이번 여행에는 단순히 사진을 찍는 것보다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일본 특유의 감성을 담은 여행을 기록하기 위해 노트에 영수증을 붙이고, 그날 먹은 음식이나 느낀 점을 짤막하게 메모했다. 사진을 인화하지 않아도, 이렇게 글과 그림, 영수증이나 티켓 등이 함께 모이면 또 하나의 추억 앨범이 된다.
둘이 함께 웃으며 노트에 붙여 넣은 기록들은 그날의 분위기와 감정을 생생하게 불러왔다. 삿포로의 편의점 세이코마트(Seicomart)에서 샀던 간식, 공항에서 사 먹은 소프트 아이스크림, 따듯하고 건강한 느낌의 스프카레까지 모두가 소중한 조각들이었다.
여행의 첫날은 언제나 긴장과 설렘이 교차한다. 낯선 공항에서 시작해, 새로운 도시의 공기와 언어와 음식을 만나고, 함께하는 사람과 추억을 쌓는다. 이번 삿포로 여행도 첫날의 감각이 오래 기억될 것 같다. 특히 선선한 여름밤에 길을 걷던 순간은 앞으로도 사진보다 오래 남을 장면이다. 이번 여행이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언어 공부, 그리고 기록의 한 장이 될 것 같아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