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살 Sep 21. 2024

추석, 해묵은 오해를 씻어내다

명절에 가족을 만난다면 이랬으면 좋겠다

엄마의 빵

“엄마, 이번 추석엔 언제 만나요?”

“토요일 2시에 보자.“

“밥 먹고 갈게요.”

“그래.”


역시 이번에도 엄마의 따뜻한 밥 먹기는 글렀다.




친정에 가면 으레 먹었던 밥과 반찬이 차려진 따뜻한 한식 밥상은 13년 전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에 자취를 감췄다.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14일, 일반병실에서 14일 이렇게 거의 한 달을 입원했다. 퇴원 후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는 동안 우울증이 찾아오고 말이 없어졌으며 자식들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나는 당시 첫째를 낳고 결혼 2년 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때부터 한동안 겨울왕국의 안나가 닫힌 문 앞에서 엘사를 기다리던 심정으로 엄마의 연락을 기다렸다. 


2년의 시간이 지나자 엄마로부터 명절에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2년 만에 문을 연 친정은 그동안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아 곳곳에 먼지가 가득했다. 따뜻한 식탁을 차리며 분주하게 움직였던 엄마의 손은 힘없이 축 처졌고, 식탁 위에는 차갑고 간이 맞지 않는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엄마는 입맛이 없고, 음식을 하는 것도 간을 맞추는 것도 힘들다고 했다. 난 적잖이 당황했지만 그렇지 않은 것처럼 연기를 하며 엄마의 음식을 맛있는 척 먹었다.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자고 다짐했다.  




점점 엄마를 만나러 가는 게, 그보다는 엄마의 음식을 먹는 게 힘들다고 느껴질 무렵 식탁에 웬 빵이 있었다. 그 빵은 엄마가 유튜브를 보고 혼자서 만든 거라고 하셨다. 맛은 어쩐지 좀 애매했다.  


"갑자기 웬 빵?"

"그냥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서..."

"맛있네요. 다른 것도 만들어보세요."

"그래? 맛있어? 다행이다."


다행이란 말을 여러 번 반복하는 엄마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 후로 엄마는 꾸준히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계속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 보니 일반적인 빵과는 다른 엄마만의 개성 있는 빵들이 탄생했다. 그중 1등으로 꼽히는 호두파이는 식구들 모두가 성공작이라고 인정했다. 엄마는 담백한 빵을 좋아하는 여동생의 입맛에 맞춰 바게트와 라우겐(독일 전통빵)도 선보였다. 엄마에게 드리는 용돈 대부분은 밀가루와 다른 재료를 구입하는 데 사용되었다. 베이킹 재료가 늘어나고 재료를 보관하기 위한 냉장고도 새로 들였다. 


    



엄마는 날이 갈수록 환해지고 예전의 생기를 되찾는 듯했다. 문제는 나였다. 엄마가 빵을 만들기 시작한 뒤로 친정에 가서 매번 빵만 얻어먹고 오려니 상황을 다 알면서도 서운하고, 화가 났다. 그래도 혹시 이번에는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지 않을까? 기대감을 갖고 카톡을 보내도 답은 항상 같았다. 이번 추석에 뭐 드시고 싶은 거 없냐는 질문에 '소고기'라고 하셨다. 그게 왜 그렇게 야속하던지... 

"나도 엄마랑 같이 소고기 먹고 싶다고! 빵 말고!"

이 말이 입안에서 계속 맴돌았다. 


추석에 소고기를 사들고 엄마한테 갔다. 엄마는 비싼 걸 사 왔다며 바로 냉장고에 넣고, 이번에 만든 빵이라며 휘낭시에와 땅콩쿠키를 내놓았다. 얼마 전에 처음으로 호두파이 주문도 들어왔다고 상기된 얼굴로 이야기했다. 요즘 이래저래 너무 바쁘다고... 빵 만드는 것도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엄마의 휘낭시에는 적당히 달면서 풍미가 있었다. 땅콩쿠키도 내가 좋아하는 흑임자가 잔뜩 들어가 고소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엄마, 이런 건 카페에서 팔아도 되겠어요. 요즘은 여러 가지 종류보다 한두 가지만 시그니처로 가지고 있으면 일부러 그거 먹으려고 줄 서서 사 먹잖아."

"그러니? 팔아도 되겠어?" 

"응, 정말 맛있네요."

결국 그날도 빵과 쿠키만 먹었다. 

그리고, 집에 가려는 나를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안아 주었다. 




'오늘도 역시나 빵만 잔뜩 먹었군.' 생각하며 집에 오는 길에 갑자기 안도감이 밀려왔다. 난 엄마가 빵을 만드는 것에 대해 왜 그렇게 부정적이었을까? 엄마는 쓰러진 후 두 번째 삶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삶을 택한 건데... 그동안 난 내가 드리는 용돈으로 엄마가 건강을 위해 사용하기를 바랐고, 그게 빵 만드는 재료에 사용되는 것 또한 못마땅해했는데... 돌이켜보니 엄마 역시 꿈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용기가 필요했고, 응원이 필요했던 거였다. 빵 만드는 것에 열중하느라 바쁘다는 것은 매사에 성실하고 열정적인 엄마의 당연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참 일찍도 깨달았구나. 싶었다.'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엄마, 이번 빵 정말 맛있었고요. 용돈으로 필요한 재료 사세요. 엄마를 응원합니다."

내 마음을 응원이란 단어에 담아 마무리했다.

"고마워!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자." 

"그래요, 나중에 시간 될 때 또 만나요."

바쁜 엄마랑 기약 없는 약속을 했다. 엄마가 바쁘다니... 꿈꾸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니... 누구나 그렇게 살기를 바라건만 그중의 한 명이 엄마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야 인정하게 되었다. 난 앞으로도 엄마의 빵을 먹게 될 테고 아마 기대감과 설렘으로 한입을 시작하며 근황을 묻게 될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