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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살 Sep 28. 2024

별이에요, 돼지예요?

센스 있는 답변을 기다립니다

마감을 앞두고야 일을 시작하는 성향은 이번에도 여전하다. 다음 주 월요일이 마감이니 그날까지 시간을 쭉 비워놓고 달려도 모자랄 판에 동아리 단톡방에 질문을 했다.

"이번 책 별이에요, 돼지예요?"

별은 <별이 되고 싶어> , 돼지는 <옛날에는 돼지들이 아주 똑똑했어요>라는 그림책을 내 임의대로 줄여서 말한 거다. 그래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답이 달린다. 

이번 책은 "돼지들이 똑똑"이라고.





독서모임을 하기로 한 월요일 오전시간은 전날 늦게까지 원고를 붙잡고 씨름할 것이기에 너덜너덜한 컨디션일 게 분명했다. 어쩌면 시간에 쫓겨서 한시가 급하다며 벼락원고를 쓰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 절박하고 바쁠 시간에 동아리 멤버들과 맛있는 브런치를 먹으며 돼지들이 똑똑을 논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건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약속장소인 브런치카페로 가는 상상으로 만족하고 이번엔 좀 참아 볼까? 마감을 앞두고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걸 보니 나도 참.. 모임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나는 모양이다. 


     

우리 동아리의 시작은 지역 도서관의 강의를 들은 사람들이 자연스레 독서모임을 만들면서였다. 초창기 멤버들은 반이상 탈퇴하고 남아 있는 멤버들과 관심 있는 사람들이 알음알음 들어와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멤버들로 말할 것 같으면 1979년생인 내가 막내이고, 우리 엄마뻘의 맏언니인 1950년대생, 60년대생, 70년 대생들이 사이좋게 분포하는 나이가 꽤 있는 올드(?)한 모임이라 하겠다. 은퇴 후 글쓰기에 매진하며 영어교사로 재능기부를 하는 G샘,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그림 그리기는 힐링이라며 매년 탁상달력을 제작해 선물해 주는 H샘, 예술가로 흘러넘치는 끼를 춤과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등으로 풀어내는 S샘, 그림책에 천문학을 도입해 독자적인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M샘, 화가이자 북디자이너로서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글까지 써내는 Y샘. 이분들과 함께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라는 교집합을 만들어 내는 건 신선하고 따뜻한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글도 제대로 못쓰는데 그림까지?'라는 생각에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참석했지만, 부드러운 붓에 물감을 묻혀 쓱쓱 표현하는 순간의 자유로운 느낌에 매료되어 그림 그리기에도 재미를 붙여가고 있다.  

 


아크릴로 그림 그리기 하던 날



난 학창 시절부터 친구가 별로 없었다. 요즘말로 '인싸'다운 기질도 아니었고, 그저 조용히 꽂힌 것에 열중해 있는 아이였다. 그게 다행스럽게도 독서이다 보니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고 교내 방송반에서 할동하는 매체가 되었다. 그렇다고 그게 친구들과 통하는 어떤 지점에 다다르지는 못했다. 겉으로 친해 보였던 친구들은 대부분 그 시절과 함께 지나갔다. 이삼십 대를 지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면서도 동네 엄마들과 딱히 나눌만한 관심사가 없었다. 그나마 좋았던 기억은 큰아이 초등학교 1학년 시절 활동했던 그림책 읽어주는 동아리의 엄마들과 사서선생님과의 추억이다. 



성향을 조금 알게 된 코로나가 극심했던 시절이다. 그 시절 줌으로 작가들의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집에 틀어박혀서 참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글쓰기를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뭔가에 꽂히면 열중하는 본능에 충실해 한동안은 밤을 새기도 했다. 아이들이 크면서 프리랜서를 시작한 이후에도 글쓰기는 놓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즈음 인연이 사람들이 동아리의 멤버들이다.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이야기하며 자연스레 내면의 이야기까지 내어놓을 수 있는 관계가 내게도 가능하다는 것을 이 동아리에서 경험했다. 






동아리 모임이 한창인 어느 날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웬만하면 평정을 유지하는 척이라도 하겠는데, 아이문제는 그게 불가능했다. 속상했다가 화가 났다가 어쩌지 못하고 부르르 떠는 나에게 동아리 멤버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위로와 격려를 건넸다. 그때 알게 된 건 멤버들의 아이 중 세상을 떠나려고 시도했던 친구도 있었고, 학창 시절 심한 학교폭력에 시달려 학교를 그만둔 친구도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기꺼이 나눠주면서 우리 아이를 향한 진심 어린 걱정과 애정을 쏟아준 멤버들에게 지금도 참 고맙다. 


     

어쩐지.... 봄바람 _ 45.5*53.0cm _ Mixed Media  _ 2007



멤버들과의 만남은 내 삶의 봄바람 같은 건지도 모른다. 살랑이는 우정, 눈물겨운 따스함, 반짝이는 열정이 자꾸만 설레게 만드니 말이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래서 "돼지들이 똑똑"을 논할 준비는 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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