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지 교사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5-6분 정도 화면으로 만나는 아이들과 얼마나 정이 들까 싶지만, 매번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따뜻한 반응을 보이는 아이들은 화상라이브로 초대하는 순간부터 가슴이 콩닥거린다.
"선생님, 예뻐요.'
"선생님, 좋아요."
"선생님, 사랑해요."
이런 말들을 들으면 나도 신나서 목소리 톤이 올라가고, 조금이라도 더 길게 화상라이브를 하려고 하며, 밝은 미소도 자연스럽게 나온다.
반대로, 무반응이거나 인사하면서 눈도 안 마주치고 화면 밖으로 나가서 딴짓을 하면 텐션이 확 떨어져서 억지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럴 때는 마음속으로
'어차피 일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더 밝게 응대하고 마무리하자.'
스스로를 다독이며 화상라이브를 꾸역꾸역 마친다.
재밌는 건, 화상라이브에서 제멋대로인 친구들은 대부분 어머니와의 상담전화 역시 형식적이고 기대가 안된다는 것이다. 알림톡을 미리 보내도 아무런 연락 없이 전화를 받지 않거나, 몇 차례의 통화시도 끝에 통화가 되더라도 성의 없는 목소리로 "네, 네."만 연발한다. 이때도 맘속으로
'어차피 일이야. 나는 안내해야 하는 것만 정확히 전달하면 되는 거야.'
한숨을 뒤로하고 끝까지 상담전화를 마무리한다.
어머니 대신 아버지가 상담전화를 받는 일도 종종 있다. 그중 육아휴직을 받아 쉬는 분이 계셨는데, 학습을 매일 하지 않는 아이를 어떻게 하면 학습을 시킬까 고민하셨다. 몇 개월의 노력 끝에 드디어 5살 아이가 하원하고 제일 먼저 학습기를 틀어 학습을 마친 후 놀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화상라이브에서 만나보니 아이는 확실히 예전보다 집중력이 좋아지고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이런 순간에는 희열이 찾아온다. 화면 밖의 아이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인데 아버지와 협동해서 뭔가를 이뤄낸 것 같다.
12월에는 많은 친구들을 다른 그룹으로 이관 보낸다. 걔 중에는 만난 지 3개월 된 아이들부터 2년이 다 돼가는 아이들도 있다. 3개월 만에 이별하는 아이들은 아직 정들기 전이라 무덤덤하지만, 1년 이상 만난 친구들하고의 이별은 '이별의 인사'를 건네면서부터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게 된다. 항상 밝았던 아이가 이별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표정이 굳어버리거나, 손으로 자꾸 눈을 가리면 나도 코끝이 시큰해진다. 그리고 나면 업무용 핸드폰에 문자가 온다.
"우리 **가 선생님이랑 인사하고 엄청 울었어요."
"그동안 감사했어요."
"선생님, 항상 감사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 친구는 많이 울었다고 해서, 어머니핸드폰으로 편지를 써서 보냈더니 큰 소리로 읽으면서 행복해했단다.
올해는 아이들을 이관 보내기 위해 상담창에 기본적으로 적어둬야 하는 형식이 추가되었다. 대부분 단답형이라 관련사항을 찾아서 간단히 작성하면 되지만, 마지막 질문의 답은 아이를 만나게 될 새로운 선생님께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적느라 시간이 걸렸다.
'몇 줄 안 되는 내용을 적는 것도 이렇게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학교선생님들은 '생활기록부'를 적으면서 많은 수고를 하겠구나.'
아이들을 대하는 일은 '사명감'이라는 말이 있다. 시작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었는데, 들어와 보니 나는 선생님이 되어있고 내가 담당하는 학생을 만나야 하는 이 일은 '사명감'을 갖고 해야 하는 일일까? 어머니들에게 깍듯이 '선생님' 소리를 듣는 건 바라지 않지만, 적어도 전화통화를 할 때만큼은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되길 바라는 것은 학습지 교사의 욕심일까?
아직 아기 같은 나의 학생들을 떠올려본다. 예쁘면 예쁜 대로, 애먹이면 애먹인 대로 정든 아이들이다. 환경이 바뀌고 새로운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이들에게도 어머니들에게도 긴장되는 일일 텐데... 막상 헤어질 때가 되니 내가 더 잘해주지 못한 게 생각나 아쉽다. 작년에는 정신없이 인사하고 다음 아이들을 받느라 이런 생각할 여유도 없었는데, 1년 되었다고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그동안 일한 경험이 남는가 보다.
자, 후회는 떨쳐버리고 내년에 만날 아이들에게는 후회 없이 잘해줘야지.
이제 3일 남은 2024년에게도 아쉽지만 인사를 건넬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