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을 무슨 재미로 사는가?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생각할 새가 없이 흘러가듯 살아왔다. 최근에야 명상의 중요성을 느끼고 현재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노력은 하고 있으나 지금까진 그런 생각을 해볼 겨를이 없었달까. 핑계 같겠지만 먹고살기 바쁜 이 시대를 살아가며 시간을 내어 자기에게 철학적 질문을 던지기란 누구에게도 쉽지 않을 것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하지 않는가. 이는 타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사실 요즘은 사는 재미가 별로 없다.)
적당히 운동하고, 가끔 맛있는 것도 먹고, 혼자 집에서 조용히 게임을 하거나 만화를 보는 등.. 이처럼 소소하게 사는 것이 당장에 생각나는 즐거움들이다. 최근엔 지역에서 진행하는 <청년마을>이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강원 속초, 충남 태안 등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콘텐츠를 만드는 재미도 느꼈다. 아, 역시 가장 즐거운 때는 피아노를 치다 좋은 흐름이나 멜로디를 우연히 발견했을 때인 것 같다.
싫어하는 것을 꼽으라면 한 손에 꼽힐 정도로 담배가 정말 싫다. 이상형을 물어보면 "일단 무조건 비흡연자여야 된다"라는 조건이 달릴 정도이다. 어릴 때에 부모님이 양쪽 다 흡연을 해서 같이 사는 게 정말 힘들었고 그래서 더욱 싫어하게 된 것 같다. 술은 아주 가끔(월에 1회 이하), 그리고 엄청 조금 마셔서 거의 안 마시는 수준이다. 다양한 맛을 보는 건 좋아해 향이 특별한 위스키나 지역 막걸리 같은 건 기회가 될 때 조금씩 즐긴다.
"무슨 재미로 사세요?"
그들이 저렇게 묻는 때와 상황으로 미루어보아 질문의 요지는 보통 "남들이 다 하는 것 하나도 안 하고 무슨 재미로 사냐"라는 뜻으로 파악된다. 보통 질문자들이 나에게 원하는 요소들은 <음주, 흡연, 드라마 시청> 등이다. 소신껏 한마디 하자면 대체 그게 뭐가 그리 자랑이라고 당당하게 권하는지 모르겠다. 몸에 좋은 걸 권해도 모자랄 판에... 무언가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 그게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어찌 보면 참 안쓰럽기도 하다. (당장에 술, 담배를 국가에서 생산 및 판매 금지를 시킨다면 난리가 나겠지?)
또한 그런 질문을 해올 땐 나도 곱게 대답하진 않았던 것 같다.(이미 해당 글의 문체에서 대부분 파악했겠지만) 내 성격이 꼬여서인지는 몰라도 이게 꽤나 아니꼽게 들린다. 왜냐하면 주로 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저런 식으로 묻곤 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알기 위해 혹은 상대가 궁금해서 한 질문이라면 질문의 방향이 잘못되지 않았을까? 최근 어떠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등... 이렇게 쉽고 건실한 주제들이 있는데 말이다.
최근 관찰한 현상 중 하나는 사람들의 대화 주제가 갈수록 획일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단 둘이 아닌 여럿이 모였을 때 나누는 이야기는 보통 '최근에 나온 유명한 드라마를 봤는지, 유명 아이돌 누구를 좋아하는지' 정도인 것 같다. 아이스브레이킹으로 쉽게 나오는 주제이지만 개인적으론 저러한 대화엔 아무런 관심도 없고 실속도 없다고 생각한다. 저런 대화를 해서 대체 상대의 어떤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일까? 물론 본인들끼리 하는 말까지 내가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할 수 없는 부분이다만 해당 화제에 끼어들지 않으면 꼭 왜 조용히 있냐며 관심을 가진다. 나는 드라마는커녕 OTT 콘텐츠 자체를 안 보고 아이돌도 모르기 때문에 당연히 끼어들 수가 없다. 그러다 이것도 저것도 잘 모른다고 하다 보면 결국 무슨 재미로 사냐는 질문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내가 이상한 것일까? 미안하지만 분위기 잡으려 일부러 점잔 떠는 게 아니라 대화를 듣고 있자면 뭔가 말하고 싶어도 점점 할 말이 없어진다.
돌이켜보면 주로 같은 업종의 창작자나 기획자들을 만나야 생산적인 대화가 가능했던 것 같다. 역시 사람은 관심사가 통해야 대화가 가능한 것인가. 아니면 내가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일까. 올해 초 울릉에서 뵈었던 이모티콘 강사 겸 기획자분은 며칠을 같이 지내면서 이야기 나눠도 대화가 끊임이 없었다. 최근 태안 일정에서 뵈었던 예술가분들과도 관심사와 새로운 콘텐츠를 주제로 며칠 내내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스시집에서 일할 때의 이야기이다. 하루는 저녁 한 타임이 와인 모임 대관으로 가득 찼다. 사장님은 술을 좋아하셔서 손님들이 술을 권할 때 웬만하면 손님들과 같이 마시는 편이었고 나는 당연히 아니었다. 한참 모임 중 한 손님이 나에게도 술을 마시겠냐 권해왔는데 금방 자전거를 타고 퇴근해야 하기도 하니 나는 "술을 잘 안 마신다, 괜찮다"라고 정중히 얘기했다. 그런데 손님 중 누군가 갑자기 <술을 안 마시면 여자는 어떻게 만나냐?>는 식의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했던 것 같다. 내가 당신보단 잘 만날 테니 걱정 말라고 해주고 싶었지만, 내 가게가 아니라서 참았다.
사회적으로 예술가는 항상 술 담배에 찌들어 살 것 같은 이미지가 있는 듯하다. 오히려 술 담배를 안 한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 중 일부(힙합 장르)도 사생활은 잘 모르겠지만 표면적으론 술 담배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 편견에 부정은 못 하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직접적으로 그런 무례한 질문이나 이야기는 안 한다. 세상의 편견과 달리 그러한 일시적 쾌락에 의존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겁고, 충분히 좋은 일상들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의존적인 것들 없이도 좋은 곡들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그보다 훨씬 좋은 취미 생활이 많으니 걱정 말아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