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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월령 Oct 01. 2023

예술가는 지원을 받아야 하나?


돈 잘 버는 작곡가는 없다

#17 예술가는 지원을 받아야 하나?


< 스스로 고기를 잡는 법을 익히지 못한 사람은
예술가로서 가망이 없다. >



        예술가는 꼭 누군가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가? 시작하는 단계라면 잠시 부모의 품에 기대어도 되는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과 지원 사업에 혈안이 되어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아니, 내가 본 바로는 그게 대부분 일지도 모른다. 지난해 청년 예술가들이 모이는 간담회에 나갈 일이 있었다. 마포구에서 진행되는 사업 프로그램의 일부였다. 간담회에 참석한 인원은 나를 포함하여 총 9명이었고 전문성은 잘 모르겠지만 작가, 배우, 기획, 감독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한데 모이는 보기 드문 자리였다. 주제는 예술인 현황 및 문제점, 개선 및 발전 방향으로 하여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1부가 지나고 정리해 보니 대부분의 예술가들의 발언은 국가에서 주는 지원이 부족하다는 투정뿐이었다. 당사자들은 억울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그렇게 느꼈다. 신인 예술가의 입장에서 나름 각자의 사정을 얘기한 것이니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가치를 생산하지 못하는 예술가가 문제이다. 청년이랍시고 수준 낮은 예술가들이 결국 지원의 명분을 줄이고 있다. 지자체는 현금성 지원에 대한 장벽을 높이고 예술가의 역량 강화 교육에 힘썼으면 좋겠다"라는 식의 정반대 되는 이야기를 했다. (요즘 가게 이름에 '청년'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가면 믿고 거른다는 밈이 생길 정도로 본인들이 청년에 대한 인식을 안 좋게 만들고 있는 듯하다.)


물론 이미 있는 시스템을 잘 활용하는 것을 나쁘다고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도 받을 수 있는 건 웬만하면 챙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예술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지원금에만 매달리고 부모님에 전적으로 기대어 활동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독립적인 수익 수단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그저 시스템에 의존하는 것이지 시스템을 잘 활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잠시야 의지할 수는 있다. 하나 스스로 고기를 잡는 법을 익히지 못한 사람은 냉정히 말해 예술가로서 가망이 없다.


우리는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


음악으로 벌든, 일을 해서 벌든. 나도 대학을 다닐 때까진 집에서 용돈을 받았다. 대학 등록금은 전액 장학금으로 충당했지만 생활비는 용돈을 타고, 그래도 부족한 건 생활비 대출을 받으며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 후 대학 졸업 학기에 독립하여 아르바이트와 음악을 겸했다.


피시방, 빵집, 일식집, 편의점, 당구장, 호프집, 물류센터, 가구 시공 등등. 집에서 피아노만 딩가딩가 치며 곱게 자랐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지만 보기보다 다양하고 험한 일도 해봤다. 그렇게 내 생계를 직접 책임지며 음악을 한 결과 데뷔 후 6년간 27개의 앨범, 약 90개의 곡이라는 많은 작업물을 냈다. (비공개로 활동하는 부캐도 합치면 그보다 훨씬 많다.) 그러다 결국 재작년 발목에 염증이 생겨 일을 그만두게 됐지만 말이다.


갑자기 전업 작곡가, 아니 발목 아픈 실업자가 된 나는 매일매일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아니면 당장 먹고 살 게 없고 바로 다음 달 월세를 낼 수 없으니까. 이름은 작곡가인데 음악으로 들어오는 한 달 수익이 10만 원도 채 되지 않았다. 당연히 먹고살기엔 턱도 없는 돈이었다. 그러나 음악 하다 망했다고 집으로 돌아가기가 죽기보다 싫었고 그래서 스스로 일어서야만 했다.


유튜브에 1일 1 영상 업로드도 해보고, 플레이리스트 채널도 만들어보고, 작곡 수업하고, 배경음악 판매하고. 워크숍도 열고 펀딩도 열고... (돌이켜 보니 곁에서 도와준 지인들과 팬분들에게 참 감사하다) 달이 지날수록 마이너스가 늘어나는 통장을 볼 때마다 수도 없이 포기하고 싶었다. 그렇게 아등바등 음악을 놓지 않고 버텨왔고 약 2년 동안의 그러한 과정 끝에 이제야 소득과 지출의 균형이 얼추 맞게 됐다. 아쉽게도 아직도 음악만으로 모든 수익을 내고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아래는 내가 2022년 1월, 실업자가 된 지 약 반년 차에 <Winter blue> 앨범을 발매하며 새해 인사로 썼던 글의 일부이다.


매번 앨범을 낼 때마다, 작지만 빈번하게 번아웃이 찾아오곤 했습니다. 보상 없는 현실에 '무엇을 위해 음악을 시작했고, 하고 있나?' 하는 의문이 자주 몰려옵니다.

좋아서 시작했고, 지금까지 큰 뜻 없이 '내가 즐거우면 그만이다'라는 마음가짐으로 해왔던 게 누군가는 어리숙하고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막연히 살아가다 보니 저도 20대의 마지막 해에 도착해 있습니다. 다년간의 작곡가 생활을 하며, 그리고 생계를 위해 겸업을 하며 지금까지 버텨온 현재의 느낀 점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본인의 최소한의 생계조차 유지하지 못하는 업이란, 열정 만으로는 길게 유지하기엔 역시나 어렵겠다'라는 생각입니다.

저보다 오래 지속하고 계신 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현재를 살아내고 있을지,
도중에 포기한 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만두게 되었을지 참으로 공감이 가는 요즘입니다.


웬만하면 어디 가서 약한 소리 하지 않는 나인데 공개적으로 신세 한탄을 하다니.. 어지간히 힘들었나 보다. 저 땐 자존심을 포기하고 정말 돈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며, 이 악물고 버텼던 것 같다.


   이처럼 장기간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음악 활동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관찰한 것은 예술계에 오래 살아남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음악만으로 벌어먹기 참 어려운 세상이다. 그나마 음악 분야의 수익 구조가 비교적 잘 되어있는 편이라 생각하는데 다른 예술계는 또 얼마나 힘들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위 글의 내용처럼 이러한 현실의 벽에 부딪혀도 음악을 놓지 않고 유지하고 있는 분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언제나 응원하는 마음이다. 이런 게 동료의식일까?


결국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음악인이라면 자신의 음악이 어디에서 사용될 수 있는지, 어디에 팔릴지 끝없이 고민해야 한다"이다. 그게 음악이라는 '예술'이자 '상품'을 만드는 자의 기본이다. 그래야 음악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 그 끝없는 고민이 당장 일 안 하고 몇 달 놀아도 문제없는 현재 나의 상황을 만들었다.


"아니다, 당장 잘 팔리지 않아도 자신의 작품을 꾸준히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거면 만족한다. 음악은 상품이 아니다."라며 위의 이야기를 쉽게 부정한다면 아직 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니 다음 페이지로 넘겨버려도 상관없다. 당장 당신을 설득할 생각도 없고 그냥 서로 의견이 다른 것으로 하자. 그런 말 하는 사람치고 나보다 작업 많이 하는 사람을 못 봤다. 그들은 게으르며 열심히 하지 않는다.


특히 나와 같은 연주 음악을 하는 경우, 뒷배도 없는데 앨범만 간간이 발매하고서 이루마처럼 유명해지고 돈 잘 벌길 기대 한다면 꿈 깨길 바란다. 해보니 안 되더라. 그리고 나보다 훨씬 좋은 곡을 만드는 작곡가들도 쉽게 안 됐다.


고민하라.

스스로 고기 잡는 법을 익혀라.

그게 예술가가 살아남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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