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목표는 메세나폴리스
< "나중에 목표나 하고 싶은 거 있으세요?"
"메세나폴리스 들어가는 거요." >
서울 합정역에 가면 메세나폴리스라는 건물이 있다. 집은 서대문구 구석 쪽이지만 놀 땐 거의 홍대나 합정 쪽의 번화가로 나가게 된다. 분명 같은 서울인데 그쪽에 비하면 집 근처는 마치 촌 동네 같아서 갈 데가 별로 없기 때문. 합정은 버스를 타면 동네에서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 하도 자주 가다 보니 나에겐 마치 사는 동네같이 익숙한 곳이 되었다. 처음 메세나폴리스에 갔을 땐 상가 건물만 보고는 식당도 많고 영화관도 있고 해서 쇼핑센터 같은 건 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위쪽엔 사람이 사는 건물이라더라.
내가 메세나폴리스에서 살고 싶단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시기는 갑작스럽지만 바로 작년. 처음으로 심리상담을 받아본 이후인데 서울시 청년 마음 건강이라는 사업에 참여했었다. 전문가에게 무료로 심리 상담을 지원받는 사업이었다. 참여한 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나도 뭔가 마음에 문제가 있을까?' 하는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첫 회차 이후 상담을 원활히 이어가기 위한 사전 질문지를 받았다. 총 50문항 정도 되는 간단한 문장 만들기였다. 양이 꽤 많다 보니 빠르게 써 내려갔고 그중 ‘내가 원하는 건 ~’이라는 문항이 있었다. 그 뒤에 나도 모르게 이렇게 적어버렸다.
'메세나폴리스 들어가기.'
단순히 놀러 간다는 게 아니라 분명 살고 싶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 문장을 선생님이 보시고는 “오, 메세나폴리스. 너무 좋네요... 나중에 저도 구경시켜 주세요.”하셨다. 주로 주변인의 의심을 받아왔기에 그러한 순수한 긍정과 응원이 조금은 낯설었다. 말도 안 되는 말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보통은 “그런데 살면 먼지도 많고 시끄럽고 안 좋아요.”라고 할 것 같았는데 말이다.
사실 나 자신조차 확신이 없었다. 그냥 농담 삼아 적어본 말일 수도 있었다. 스치듯 지나갈 인연 중 평범한 한 사람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말해주시니 감사하기도 하고, 기운도 나고 자신감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꼭 초대해 드려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힙합 아티스트 던말릭의 <마천루>라는 곡이 있다. 거기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저스디스 파트 중엔 이러한 가사가 있다.
대화 주제 싹 바뀌었네
서교동은 메세나폴리스
성수동은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
가사의 전 후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가난했던 아티스트가 성공해서 노는 물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로 추측된다. 아마도 얼마 전 이 곡을 듣고 나서 나의 무의식에도 남아있던 게 아닐까 싶다.
예전엔 사람이 사는 건물이라곤 상상도 못 했었는데 이젠 들어가고 싶다니. 나도 살만한가 보다. 원룸에 살고 있는, 가난한 무명 아티스트가 메세나폴리스를 바라보고 있다. 꿈도 크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꿈을 가지고 있는가? 당장엔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이처럼 조금은 터무니없는 꿈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안될 게 뭐 있나. 이제는 누군가 나에게 목표나 하고 싶은 일이 있냐고 묻는다면 당당히 이렇게 답한다.
"메세나폴리스 들어가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