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성공보다는 실패
< 이 책은 그저 평범한 실패담이다. >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가보면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다양한 성공담을 손쉽게 만나볼 수 있다. 누군가의 성공담을 들음으로써 마치 그 성공을 내가 직접 경험한 것처럼 만족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현실에선 쉽게 접할 수 없는 성공이기에 짜릿하기도 하고 잠시 동안은 자신감도 솟아나는 느낌이다.
나도 많이 봤었다. 아이스크림 가게 아르바이트에서 기업 회장이 된 사람의 이야기, 부자를 만드는 성공 법칙, 인생이 달라지는 어쩌고 저쩌고... 보고 나면 잠시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이지 않는가? 실제로 무언가 행동을 하지도 않았지만 엄청난 성공 비밀을 깨닫고 목적지에 한 발짝 다가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의 뇌가 잠시 성공을 했다는 착각에 빠진 것뿐이다. 성공 포르노(Success porn). 혹시 이런 단어를 들어 본 적 있는가? 최근 유튜브에서 잘 팔리는 동기부여 영상은 이면에서는 성공 포르노라고도 불린다. 현실에선 어디 있는지 찾기도 어려운 멋지고 화려한 이성을 스마트폰 안에선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쉽게 만나볼 수 있듯 현실에서 쟁취하기 어려운 성공을 책이나 영상 등의 매체를 통해 쉽게 맛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점점 현실과 성공에서 멀어진다.
지금 네이버 웹툰에 가서 잘 팔리는 상위 웹툰을 살펴보라. 평범한 소년이 갑자기 회귀를 해서 강해지고 부자가 되거나, 자고 일어났는데 몸이 바뀌어 멋진 모습으로 생활한다거나, 가상현실 게임에서 말도 안 되는 확률의 강화에 성공해 강해지고 현실에서도 돈을 번다든가 그런 내용이 대부분이다.
게임은 또 어떤가? 코로나 발발 시기에 가장 유행했던 게임은 바로 동물의 숲이다. 게임을 시작하면 바로 집을 준다. 현실에선 내 집이 없는데 말이다. 쉽게 새로운 친구가 생긴다. 현실에선 바깥에 나가기도 어려운 재난 상황에. 이처럼 실제로 얻기 어려운 환경이나 물질들을 게임에선 손쉽게 제공하니 사람들이 그렇게나 빠져들지 않았나 싶다. 경험치 바가 눈에 잘 보이게 설계되어 게이지가 쉽게 쉽게 차고 레벨이 오르고 성장하는 RPG 게임. 그리고 항간에서 질병 게임이라고도 불리는, "점수에 목매게 만드는" 랭크 시스템을 도입한 전략 게임들도 마찬가지다. 나도 어릴 때부터 게임을 중독자처럼 달고 살아서 아주 잘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돈 버는 방법, 성공하는 방법>이라는 타이틀에 혹해 비싼 돈 내고 강의를 듣곤 한다. 하지만 한 번 들어서 부자가 되는 강의는 없다. 그저 강연자가 돈을 벌 뿐이다.
성공담, 게임, 웹툰 등 위에 든 예시들처럼 성공 욕구를 대리로 채워주는 것들이 우리가 소비하는 많은 콘텐츠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콘텐츠들이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고 하는 건 아니다. 각자 본인의 기호에 맞게 소비할 수 있다. 그러나 콘텐츠에 빠져서, 현실의 자신은 침대에 누워있는데 자신이 웹툰이나 게임의 주인공처럼 대단한 사람이라고 망상하고 착각하는 쪽은 좋지 않다. 현실을 살아야 한다. 현실을 바꾸는 것은 온라인 데이터나 지식이 아닌 당신의 행동뿐이다.
그렇다면 성공담이 아닌 실패담은 어떨까? 실패담은 조금 다르다. 누군가의 실패를 보고, 듣고, 기억했을 때 같은 실패의 길을 똑같이 걷지 않고 피해 갈 수 있다. 손쉬운 성공 경험을 안겨주지도 않는다. 물론 직접 겪어보는 실패 경험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겠다. 공사 현장 같은 데에 가보면 작업을 시작하기 전 다 같이 모여 스트레칭을 하기도 하고, 사고 사례를 꽤나 현실적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보여준다. 심지어 실제 사고 장면을 가리지 않고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야 정말 경각심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누군가의 실패에서도 분명 얻을 게 있다.
사람들은 실패담을 잘 공유하지 않는다. 부끄러운 경험은 감추고 본인의 잘난 부분만 보여주고 싶어 한다. 야생에서 약점을 보여준다는 것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직접 경험한 사회는 그저 척박하기만 한 야생은 아니었다. 상상 속, 내 실패와 죽음을 기다리는 하이에나들이 에워싼 부정적인 모습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관계들을 잘 쌓아가니 저마다의 장점으로 서로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상호보완 형태의 관계가 오히려 많을지도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의 많은 도움을 받고 있고, 가능할 때엔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렇게 산다.
나의 실패를 감추고 승승장구해서 지금 이렇게 됐다고 말하면 쉽고 멋져 보이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진 않다. 알바 생활을 전전하며 10년 넘게 음악을 붙들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음악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월에 100만 원이 채 안 된다. 갈 길이 참 멀다.
이 책은 큰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서있을 만한 대단한 성공담이 아니라 어디서 굴러다니는 그저 평범한 실패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