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쉽게 숙제하는 법> 천효정 글. 김무연 그림, 비룡소
한때 나는 <건방이의 건방진 수련기>를 입에 달고 살았었다. 지금 16세인 청소년이 11세, 12세 때 만난 건방이는 그 해 아이의 전부였다. 봤던 건방이를 또 보고, 초아를 만나고 계속 만났다. 그렇게 아이가 좋아하니 엄마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옆 동네 도서관에 천효정 작가가 온다고 해서 <건방이 시리즈>부터 <도깨비 느티 서울 입성기>, 또 지금 둘째랑 또 봐도 재밌는 <삼백이의 칠일장>을 들고 갔더랬다. 강의를 마치고 사인을 받으러 7권의 책을 들고 서 있었다. 각 책에는 구입한 날짜와 'ㅇㅇ이가 사랑하는 최고의 책', '00 이를 즐겁게 하는 건방이' 등 나름 아이의 독서 기록에 집중하는 나의 메모가 있었다. 사인을 하려고 책의 면지를 펼친 작가님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00이가 사랑하는 최고의 책 어머 너무 고마워!"라고. 아이는 바로 "지금은 @#$$%%책이 재밌어요"라고 아주 솔직하게 13세 사춘기 입문자답게 말을 해서 화끈했던 내가 보인다.
아이는 이렇게 크고 있었더라고요. 그때마다 충실하게 좋아하는 책을 먹고 또 다른 책을 소화하면서 차곡차곡 쌓으면서요.
수학 익힘 주 1회 내주는 숙제가 많다고 하는 우리 집 둘째를 보면 과거의 어린이가 와서 코웃음 치고 갈 일이지만, 1장이든 4장이든 숙제는 하기 싫은 법이다. 이런 둘째에게 <대박 쉽게 숙제하는 법>이라는 제목은 끌어당기는 힘은 강력하다. 그리고 그림은 얼마 전 재밌게 읽었던 '별똥 맛의 비밀'의 김무연 작가가 아이들의 활기찬 모습을 그려 넣었다. 대박 쉽게 숙제하는 해법이 정말 있을까?
날이 좋은 날 점심시간 3학년 2반 아이들은 숨이 죽은 배추처럼 한숨을 푹푹 쉬고 있다. 침묵을 깨고 일어난 건 지환이다. 바로 5교시가 수학 시간인데 수학 익힘책 숙제를 안 한 상태이다. (숙제는 집에서 좀!!) 이렇게 힘이 빠지는데 숙제는 당연히 하기 싫지. 아니다. 숙제 때문에 힘이 빠지는 건가? (>.<) 옆에 있던 수학을 제일 잘하는 환영이는 수학 익힘 책을 보여주겠다는 반가운 소리를 한다. 그러나 그냥 보여주면 재미없겠지. 암. 환영이는 대신 일기를 써 달라고 한다. 우리 집 2호도 지환이랑 생각이 같다. 일기를 쓰느니 차라리 수학 익힘을 풀겠다고 한다. 그때 앞자리에 글짓기 입선자 영민이가 구원같이 일어나 일기를 써준다고 말한다. 영민이는 대신 연체된 책을 반납 조건으로 내민다.
눈치챘을 것이다. 수학 익힘책 숙제를 시작으로 3학년 2반 릴레이 고민이 물리고 물려 처음 물꼬를 튼 지환이가 해결사가 되고 지환이부터 거꾸로 해결을 해나가며 끝으로 지환이는 환영이의 수학 익힘 숙제를 보고 답을 쓸 수 있었다.
15명의 고민과 고민 해결사들의 활약이 재미있게 그려져있다. 하나 정도 얘기하자면 그 과정에서 지환이는 수학 익힘 문제를 직접 풀었다. 그것과 상관없이 환영이의 도움을 받는다. 환영이의 수학 익힘 책을 보고 숙제를 하면서 틀린 문제까지 골라냈다. 역시 수학 익힘 문제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이들은 그냥 숙제가 어려운 것이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나 걱정거리 릴레이 같아 보이지만, 친구의 고민을 해결하는 아이들의 재능 릴레이이기도 하다. 내게 어려운 것이 친구는 너무 쉽다. 친구가 어려워하는 문제를 나는 할 수 있다. 자신 있게 도울 수 있는 고민이 나오면 엎드려 있다가도 발딱 일어난다. 각자가 잘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또 그것으로 친구를 도와주는 3학년 2반 친구들 모두가 어깨에 뽕 하나 달았다. 으쓱^^
고민이 해결되었으니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안다. 단 1분도 놓칠 수 없는 점심시간. 모두들 우르르 운동장으로 나간다.
마지막으로
16세 "엄마, 근데 수학 익힘 책 뒤에 답안지 있어. 그거 보고 적으면 되는데....."
엄마 "선생님이 답안지 뜯었겠지."
16세 " 나 초등 6년에 답안지 가져가신 선생님 한 분도 안 계셨어."
10세 "우리 선생님도 안 뜯었어. 스스로 풀고 답 확인해 보라고 하셨어."
엄마 "청소년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