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첫 회사에서 미국 애틀랜타로 출장을 갈 일이 많았다. 덕분에 어마무시하게 많은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쌓을 수 있었으나, 그 과정은 매우 고생스럽기만 했다.
휴대폰 제조사였던 우리 회사는 미국향으로 폰을 만들어서 수출을 했었는데, 미국 통신사 AT&T 는 아틀랜타에 사무실이 있었고, Verizon은 New Jersey에 있어서 보통 그 두 곳으로 출장을 가곤 했는데 나는 AT&T 담당이라서 애틀랜타를 마르고 닳도록 갔었다.
첫 회사의 많은 것들이 참으로 빡빡하고 가난했던 것처럼 출장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미국 출장은 보통 2박 4일이었고, 운이 좋으면 3박 5일로 가는 경우가 있었다. 미국 입국 심사 시, 내가 2일 후에 떠난다고 하면 거기 직원이 의아해하는 정도였다. 서울과 애틀랜타는 다행히도 직항이 있었지만 원웨이로 13에서 14시간 걸리는 비행이어서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을 따지면 2박이라는 일정은 매우 살인적이었다. 그리고 그때 알게 된 사실이, 미국으로 비행하는 승무원들이 2박 4일로 비행을 한다는 것이었다. 2박 4일로 출장 다니고 비행기를 타면 올 때 갈 때 승무원이 똑같았다. 그래서 그 당시 그 승무원들을 보면서, 나는 도착해서 정말 힘들게 일을 하고 돌아가는데 저들은 쉬고 비행하는 것일 거라 부럽다고 생각을 했었다.
아마도 서울에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중 비행시간이 제일 긴 것으로 알고 있는 애틀랜타행 비행기를 타고서 (이코노미임) Hartfield Jackson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하면 (하도 많이 갔더니 정말 옛날임에도 불구하고 이 공항의 이름을 외우고 있다) 입국심사가 정말 길고도 힘들었는데 그 이유가 그 공항은 미국의 에어허브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서 외국에서 입국하는 미국 군인들이 이 공항으로 많이들 입국을 했었고 그만큼이나 입국 심사가 엄청나게 힘들었었다. 심지어 도착해서 짐을 찾으면, 찾은 짐을 한번 더 집어넣어서 추가적인 검사를 한 후에 두 번째로 찾아야 했었다.
인천공항에서부터 애틀랜타 공항에 도착해서 밖으로 나올 수 있을 때까지의 시간이 너무나도 길었기 때문에 같이 출장을 간 흡연자들이 매우 괴로워하다가, 마지막에 짐도 찾지 않고 밖으로 뛰어나가서 담배를 피곤했었다.
그나마 같이 출장 가는 누군가가 있기라도 했다면 나는 조금 위안이 되었었으나 많은 경우 출장은 혼자 가야 했었다. 그 이유는... 비용절감 때문이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웬만해서 모든 출장은 1명만 가라는 지시가 내려왔었고, 영어를 할 줄 아는 내가 늘 당첨이 돼서 혼자 출장을 가야 했었다.
지금이냐 혼자 출장을 가라고 하면 신난다 하고 자유롭게? 출장을 가겠지만 그 당시 어린 나는 혼자 출장 가는 게 참 싫고 외로웠다. 긴 비행과 이동 시간을 계속 혼자 보내야 하는 것도 있었지만 익숙치 않은 도시에서 혼자 차를 렌트해서 운전을 하는 게 너무 긴장되는 일이었고, 동등란 레벨이 아닌 슈퍼 "갑"인 회사를 찾아가서 쉽지 않은 회의를 해야 했고, 혼자 가면 회의록을 적어줄 사람도 없었고 한마디 옆에서 도와줄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주 다니다 보니 결국에는 운전에 익숙해져서, 내비게이션 없이도 숙소에서 AT&T 사무실과 우리 회사 사무실을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다. 당시 미국에서 Never Lost라는 정말 구 석기시대의 내비게이션이 렌터카와 함께 왔었는데 정말 사용성이 끔찍했고 길 찾기 최악이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 미국 출장 가는 사람들은 렌터카와 함께 오는 끔찍한 내비게이션을 쓸 일이 없겠지...
길고 긴 입국 심사와 공항 프로세스를 마치면, 렌터카를 픽업하러 또 이동을 해야 했고, 렌터카를 픽업할 때쯤 되면 정말 말 그대로 사람이 녹초가 되어 있었다. 장시간 이동에 몸과 정신이 찌들어 있었지만 당시 나는 숙소로 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서도 잠깐이라도 숙소에 들러서 짐도 풀고 씻거나 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지만, 공항에서 나는 항상 바로 사무실로 가야만 했다. 매번.......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피곤했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꾸벅꾸벅 졸면서 다음날 사업자를 만나서 할 회의에 대한 사전 미팅을 하고, 죽겠는 몸을 이끌고 저녁을 먹으러 가던 기억이 난다. 저녁에 바로 잠이 들면 시차 적응에 망한다면서 일행들과 아무리 졸려도 꾹꾹 참고 저녁을 먹곤 했는데, 한식을 안 먹으면 다행이었다. 개인적으로 해외에 나가서 한식 먹는 걸 싫어하는데 당시 막내였던 나는 싫지만 선배와 상사를 따라서 한식을 먹고... 심지어는 남자 선배들이 소주를 마시면 운전을 해줘야 하는 그런 짜증 나는 일들을 많이 겪어야 했다.
가장 중요한 둘째 날에는 보통 사업자 (AT&T)를 만나서 하루 종일 미팅을 하곤 했다. 시차 적응 할 시간도 없었고, 미팅의 강도도 셌기 때문에 여러모로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나 일행 중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서 회의시간에 발표와 논의, 그리고 일부 통역까지 다 내가 해야만 했었다. 긴긴 회의 시간 내내 계속 말을 하고 주목을 받고 나면 정말 탈진 각이었는데, 회의 전후로 운전도 항상 나에게 시켰었다. 운전을 할 줄 아는 선배들이 같이 출장을 가도 운전은 꼭 내가 해야 했서 난 그냥 정말 피곤했다.
그 어떤 출장 때 그런 식으로 회의를 하고 나서 긴장이 많이 풀렸었는지, 운전을 하는데 너무 졸려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정말 위험하다는 걸 다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쏟아지는 졸음의 수준이 심각해서 한 번은 고속도로에서 고개가 꼬까닥 내려가는 수준으로 졸았고, 순간 차가 휘청하고 흔들렸으며, 주변에서 경적을 울리고, 깜짝 놀란 부장님이 뒤에서 나를 쳤던 기억이 난다. 진짜 큰일 날 뻔했었다. 근데 정말 그 순간 내 몸을 컨트롤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까지 힘든 일정으로 출장을 마치고 한국에 귀국할 때도, 혹시라도 오전이나 낮시간에 비행기가 도착한다면 "눈치"가 보여서 집에 가지 못하고 바로 가방을 끌고 사무실로 가야 하는 문화도 있었다.
올해 현재 회사에서 독일로 출장을 두 번 다녀왔는데, 정말 대조가 된다. 전원에게 비즈니스를 태워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통번역팀이 함께 출장을 가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에게 언어적으로 전 인원이 의존하는 일도 없고, 렌트를 하지 않아도 되고 (세상이 변해서 우버 같은 편리한 서비스들이 생기기도 했지만 미국과 달리 유럽은 대중교통이 있으니 참 좋다) , 업무 시간을 제외하면 모두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그래서 혼자 옛날의 지옥의 출장 스케줄을 추억하면서 아니 이렇게 대우가 좋은데, 왜들 힘들어하지???라고 혼자 꼰대 생각을 하곤 한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