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린더 없던 시절
"인비 드렸습니다"
라는 말은 요즘 '판교어'라고 정의되는 그런 표현인데, 실제로 회사에서 정말 많이 사용한다.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회의를 하기 위해서 구글캘린더에 초대장을 보냈다는 뜻이다. 구글캘린더는 회사의 삶에 정말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내 인생이고 나 자신의 일정이라도, 캘린더 없이는 확인이 어려운 수준이다. 우리의 구글 캘린더는 몇 월 며칠 몇 시에 어디서 누구와 어떤 회의를 하는지 철저하게 관리해 준다. 회의를 잡을 때 누가 참석 가능한지 가능하지 않은지도 척척 알려주고, 사용 가능한 회의실도 알려주며, 오프라인 회의가 아닌 경우 온라인 회의 링크도 알아서 생성해 준다. 한 명 한 명 사람들에게 일일이 내가 연락을 하지 않아도 캘린더 인비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고, 그들도 나에게 별도로 연락을 하지 않고 캘린더를 통해 수락, 거절, 또는 제안을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게? 구글캘린더 없이 회의를 어떻게 잡았었지?라고 어느 날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세 번째 회사에 이직하기 전까지는 구글 캘린더를 회사에서 써본 적이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아웃룩을 사용했고 회의를 잡을 때 온라인 캘린더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냥 메신저나, 이메일이나, 혹은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아 맞다! 내선번호로 전화를 할 수도 있었다) 회의일정을 잡고, 각자 알아서 어딘가에 적어놓거나 머릿속으로 기억을 한 후 회의를 하러 만났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지금만큼 1분 1초를 지키면서 시간을 활용하지 않았었고, 지금보다 훨씬 더 회의가 늦게 시작하기도 하고 마냥 저냥 끝없이 진행되기도 했었다.
대신 생각해 보면 지금만큼 캘린더가 꽉꽉 차서 하루 종일 회의만 하는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하루 종일 촘촘하게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회의를 연달아하게 되는 개념은 온라인 회의가 자리 잡으면서 생긴 개념 같다.
대신 항상 오프라인으로 함께 있으니, 부장님은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을 불러서 "잠깐만"이라고 해놓고 잠깐 보다 훨씬 긴 시간을 잡아먹곤 했었다.
회의의 일정이 온라인으로 관리되지 않았던 것만큼 회의실도 딱히 관리가 되지 않았었다. 그래서 회의실은 물리적으로 가서 자리를 맡거나, 회의실 문 앞에 이름을 써놓거나 이런 개념으로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던 건 빔 프로젝터 선점이었다.
빔 프로젝터가 왜 필요하지?라고 생각을 할 것이다.
그 이유는 그 당시에는 회의실에 다가이 모이면 함께 쳐다볼 수 있는 모니터도, TV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각자의 노트북을 보면 되잖아요?라고 하겠지만.. 노트북이 뭔 소린가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데스크톱을 썼었다.
그래서 선배들은 막내들에게 회의를 잡게 하면서 항상 빔프로젝터를 빌려오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우리 조직이 80명 정도 되었는데 빔프로젝터는 두 개 밖에 없었다. 그래서 늘 누군가가 쓰고 있어서 구할 수 없는 빔프로젝터를 "꼭" 가져오라고 하는 선배들이 너무 미웠다.
그래서 두 번째 회사로 이직했을 때 해당 사무실에 있는 모든 회의실에 전용 모니터가 하나씩 고정으로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 진심 대감집에 왔구나 하는 순간이었다.
쉽게 회의를 잡을 수 있어서 회의가 이렇게 죽도록 많은 건가 싶은데, 개인적으로 캘린더 없이 빔프로젝터 찾아다니던 암흑의 시대의 회의도, 뿅 하고 노트북으로 참석할 수 있는 회의도 싫다. 그냥 싫어. 회의는 최소한으로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