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샵 안 사주는 회사

다 같이 해적판

by 스테파니

모든 문제는 회사가 돈이 없어서 일어났던 것 같다.


추억의 첫 회사는 돈이 없어서 당시 포토샵 정품 라이선스를 모두에게 사주지 못했다. 요즘엔 제플린을 많이 쓰지만 그때는 모든 디자인 업무는 포토샵으로 했었다 (혹은 일러스트레이터 정도). 실제로 휴대폰을 디자인하는 디자인팀은 물론이고, 화면 디자인을 담당하는 UX 쪽 부서와, 직접 디자인을 하지는 않지만 장표를 위해 이미지 작업을 해야 하는 기획자들 모두 포토샵이 필요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디자인팀 전체에 포토샵 정품 라이선스가 3개 정도 있었고, 그 외에 모든 사람들이 포토샵을 불법을 사용을 했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시리얼 넘버를 돌려서 썼거나, 뭔가 우회하는 방법이 있어서 그렇게 다들 사용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부기관에서 감사가 떴다. 물리적으로!!!

소프트웨어 정품 사용을 하는지를 검사하러 공무원들이 기습 방문을 했는데, 1층에 사람들이 왔으니 빨리 포토샵을 지우라는 말을 듣고 너도 나도 급하게 포토샵 uninstall을 시도하였으나 이는 꽤나 시간이 오래 걸렸고, 정말 무슨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엘리베이터 쪽 문이 열리더니

"모두 일어나세요!!"라고 누군가가 고함을 쳤다.

참고로 이러한 이유로 빌딩 1층 안내판에 어느 층에 어느 부서가 있는지 안내를 일부러 안 적어놓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외부인이 들어왔을 때 어느 층에 어떤 부서가 있는지를 숨기기 위해....


어쨌건 그 순간부터 아수라장이었다.

미리미리 자리를 피해서 도망간 사람도 있었지만, 포토샵을 지우는 화면 그 자체를 걸려서 노트북에서 떨어지라고 명령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공무원들이 와서 그들의 업무를 진행하는 사이에 우리는 일을 할 수가 없었고, 어린 마음에 너무 신난다 하면서 몇 시간 동안 밖에 나가서 팀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고 왔던 기억이 난다.

너무나도 보수적인 회사에서 "일"을 한다고 인정되는 범위가 매우 극단적이었고 당당하게 그 "일"이 아닌걸 해도 괸찮았던 순간은 이와 같은 상황과 정전이 되는 정도 였던 것 같다.


이후에 어떤 식으로 회사가 이 일을 처리하고 벌금을 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개개인에게 피해가 오지는 않았다. 사실상 벌금이 꽤 비싸서, 작은 기업 같은 경우는 동일한 상황이 닥쳤을 때 창밖으로 노트북을 던져버리는 게 더 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다만 이 일이 일어난 직후로 우리는 모두 다 (라이센트 버전을 사용할 수 있는 그 어떤 3명만 빼고) 포토샵을 지워야만 했고, 당시 디자인팀에 있던 입사 동기에게 메시지가 왔던 기억이 난다.


"언니, 포토샵을 다 지우라고 해서 일을 할 수가 없어."


그렇다 디자이너에게 포토샵을 못 쓰게 하면 무슨 일을 하라는 것인가?...


이직을 하고 나서 보니, 다른 회사들은 정식 절차를 밟아 신청을 하면 정품 프로그램을 쓰게 해주는 걸 보고 또...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하하하

정말 야만의 시절이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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