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지만 눈치는 봐야 함
보통 회사에서 "엄연히" 업무가 아닌 행동을 하거나, 사규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 눈치가 보이는 게 당연하다. 동료들과 오랫동안 커피를 마시고 들어올 때 라든가, 지각을 할 때 라든가.... 하지만 나의 첫 직장은 그렇지 않았다.
남자 직원 들이 당당하게 하루에 수번씩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고 왔고 이는 아주 당당한 일이었다. 특히나 팀장에게 가서 "한 대 피우시죠"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꽤나 긍정적인 사회생활의 일부처럼 여겨졌다. 다만 여자 직원이 커피를 마시고 오는 건 눈치를 봐야 하는 일이었고, 그를 넘어서서 우리는 가기 싫어도 가야 하는 워크샵이라던가, 100프로 업무인 출장을 가면서도 눈치를 봐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회사는 아무리 업무의 일부라고 해도 자리에 앉아서 컴퓨터를 보고 뭔가 문서를 작업하고 있거나, 회의실에 앉아서 회의를 하는 순간만 빼면 다 맘에 안 들어하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워크샵은 당연히 1박 2일이었고, 당연히 주말을 끼고 1박 2일이었다. 주말을 꼈음에도 불구하고 토요일 오전에 업무적인 일정이 꼭 포함되어야 했다. 전날 술 먹고 아침에 라면 먹고 해산하는 건 금지 시 되는 분위기였다. 지금 회사에서는 어찌 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시절이다. 지금 회사는 1박 워크샵을 잘 가지도 않지만 보통 1박이라는 말에 다들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듯 한다. 일부 1박으로 놀고 오는 개념을 재미있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를 포함), 대부분이 싫어하는 듯하다. 이전에 1박 워크샵을 기획하는데, "1박을 하지 않고 집에 갈 수 있게" 서울에서 가까운 곳으로 잡아달라는 요청에 이어, 그냥 서울에 있는 숙소로 잡아달라 라는 요청, 그다음엔 그냥 무박으로 하자라는 요청이 있어서... 그냥 이러다가 이벤트 자체가 소멸되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실제로 마지막으로 갔던 1박 워크샵의 경우 아침에 일어났더니 반절 이상의 사람들이 새벽에 몰래 집에 가버려서 매우 당황.... 한 마음에 숙소 정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전전 회사에서도 대규모 워크샵으로 꽤나 럭셔리하고 비싼 숙소를 잡아주고 방배정을 해주었었는데 공식 일정이 끝난 금요일 밤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집에 가버려서 그 비싼 숙소가 방이 텅텅 비어 버렸던 기억이 난다.
나의 사회 초년기 시절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워크샵은 무조건 필참이고, 중간에 도망가는 건 죄악 시 되는 일이었다. 내가 입사하기 직전 어떤 워크샵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었는데, 밤에 몇몇 사람들이 자기 차를 타고 집에 갔고, 이에 높으신 분이 화가 나서... 결국 집에 가던 사람들은 차를 돌려서 숙소로 돌아오고 누군가는 그 어르신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고 들었다. 정말 야만의 시절이었다.
더 기가 차는 일은 이렇게 까지 강제적인 워크샵을 우리는 눈치를 보면서 가야 했다. 지금도 정말 이해가 가지 않으나.... 꼰대 오브 꼰대의 세상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워크샵은 금요일 출발인데 금요일 업무시간에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그렇게 우리는 눈치를 봐야 했다. 하지만 반대로 그럼 워크샵을 안 가고 그냥 일을 할게요 도 허용되지 않았다.
눈치를 보고 동시에 비용 절감을 하느라 그래서 우리는 오전에 출근해서 근무를 하고 회사에서 밥을 먹고 오후에 출발을 해야만 했었다.
출장도 마찬가지였다. 출장이야 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일인데, 이에 대해서도 눈치를 봐야 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 내가 일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든 보여주어야 했고, 해외에 나가서 조금이라도 논다 라는 뉘앙스가 보일 까봐들 두려워했다. 나는 기획자라 그럴 일이 거의 없었지만 개발자들은 아예 장기 출장을 가서 몇 달이고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일을 하기도 했었는데, 그들은 아주 여러 명이 한 대의 차를 배정받아서 교통의 자유도 없는 상황에서 숙소와 사무실만 왔다 갔다 하며 거의 수감자처럼 일을 해야 했었다. 특히나 미국 애틀랜타에서 숙소나 사무실옆에 한국처럼 걸어서 방문할 수 있는 편의점이나 커피숍 하나 없는 구조였기 때문에 그냥 철저하게 대부분의 인프라에서 떨어져서 일만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지금처럼 각종 앱으로 배달을 받거나, 우버를 타고 어디를 간다거나, 혹은 최소한의 경우 유튜브 감상이라도 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그런 개발자들이 저녁에 숙소에서 바비큐를 해 먹는데 내가 가서 얻어먹다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화들짝 놀라면서 사진을 찍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이런 사진이 유출되면 논다고 소문이 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슬픈 시절이었다.
부장님과 출장을 가면, 부장님은 눈치가 보여서 굳이 주말을 끼고 귀국을 하고 싶어 했다. 출장을 3박 5일로 가는 경우 월화수목금을 풀로 써버리면 일주일에 한 번도 사무실에 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눈치가 보였던 것 같고, 어차피 주말에 출근해야 할 거 생색도 낼 겸 토요일 귀국을 하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 당시 나는 매우...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당연히 회사는 내가 출장으로 나의 주말을 희생한다고 해서 단 100원도 주지 않았다.
업무는 당당하게 할 수 있고, 업무가 아닌 것은 당당 하게 거절할 수 있는 지금의 회사 문화가 너무 좋다. 아직은 옛날에 머물러 있는 회사들에게도 빨리 이런 문화가 전파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