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는 그냥 안 써야 했던 시절
지금 나의 회사는 휴가가 역대급으로 자유롭다. 휴가를 올릴 때 사유가 없다는 것을 내세우는 회사이다. 너무 마음에 드는 말이다. 이 회사에 입사하기 전 회사들은 휴가/연차를 올릴 때 꼭 사유를 써야 했는데, 사실상 휴가를 올리는 사유가 업무랑 관련될 리가 없는데... 즉 당연히 개인적인 사유인 건데 이거를 써야 했었고 뭐랄까 그냥 쉬고 싶어서라던가 놀고 싶어서 라는 사유를 쓰기엔 찝찝했었다. 그래서 뭐 대략 "가족"을 내세운다던가 아니면 뭐 병원에 가야 한다던가 등등 이런 식으로 쓰곤 했던 것 같다.
사유가 뭐 건 간에 나의 첫 번째 회사는 휴가를 올리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조직 문화가 있었다. 신입사원으로서는 당연히 휴가는 너무 눈치가 보여서 올릴 생각도 하지 않았고, 옆 팀 동기 오빠는 그 눈치를 보느라 몇 년 동안 단 한 번도 단 하루도 휴가를 내지 않는 삶을 살았었다 (그래서 예쁨을 받았던 걸까).
휴가 하루 올리는 것도 눈치가 보였고, 그 단 하루의 휴가도 월요 일라던가 금요일에 올리는 건 더 눈치가 보였고, 샌드위치 휴일 혹은 다른 연휴에 붙여 쓰는 건 더 눈치가 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왜 그래야 했는지 납득이 가지 않지만 그냥 누군가가 휴가 쓰고 즐거운 꼴이 보기 싫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나마 허용이 되는 수준의 연차는 머리를 조아리면서 누군가가 아프다던가, 본인이 너무 아프다던가, 정말 너무 피치 못할 사정을 들이밀 때 정도야 휴가를 그럭저럭 쓰게 해 주었었다.
우리 옆팀 팀장이 특히나 부하직원들 휴가 쓰는 걸 싫어했는데, 아마도 휴가를 승인해 주면 자기 상사에게 그 사실이 알려지는 게 죽도록 싫었던 것으로 추정을 한다. 그래서 그 팀장에게 휴가를 올리려 하면 반차로 바꾸면 안 되냐는 대답을 듣고, 반차를 올리면 그냥 봐줄 테니 업무시간에 잠깐 볼일 보고 돌아오면 안 되냐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내가 알았던 어떤 분은 휴가를 꼭 써야 되는데 그 팀장이 끝까지 대답을 해주지 않아서 그냥 올리고 승인받지 않은 상태로 휴가를 가버린 분도 있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다시 생각해도 정말 짜증 난다.
지금 내가 휴가 중이고 해외 호텔에서 글을 쓰고 있어서 그런지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첫 번째 회사를 다니던 시절 나는 휴가가 허용되지 않아서 먼 나라로 여행을 가는 게 너무 힘들었다. 미국이나 유럽으로 너무 여행이 가고 싶었지만 일주일이란 휴가는... 수술을 하거나 결혼을 하는 게 아니면 절대로 허락되지 않았다. 너무너무 원하는데 가질 수 없는 감정에 당시 나는 유럽 여행을 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너무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 어느 연휴 때 고작 며칠의 휴가를 붙여서 간신히 간신히 4박 6일 정도로 프랑스 여행을 갔다.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왜 아깝게 그렇게 짧게 가냐고 나에게 한 마디씩 던졌는데 난 정말 엉엉 울고 싶었다. 누구는 짧게 가고 싶어서 가나? 나도 길게 가고 싶었으나 절대로 허용이 되지 않을 뿐!!! 짧게 가거나, 그냥 안 가거나 밖에 난 쵸이스가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너무 속상했다. 그래서 되돌아보면 그렇게 라도 가길 정말 잘했던 것 같고 그 프랑스 여행에서 많은 추억을 만들었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날이 문제였다. 최대한 휴가를 아껴 써야 해서 꽉꽉 채운 일정이었기 때문에 연휴가 끝나고 출근하는 날 아침 한국에 돌아오는 일정이었고, 나는 바로 집에 들르지 않고 출근을 해야 했었다.
내 한 몸 피곤한 것쯤이야 무엇이 문제냐 인 시절이었다. (어리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비행기 연착이었다. 비행기가 연착돼서 도저히 9시까지 도착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었다. 지금 같으면 그냥 휴가를 추가로 쓰거나 노트북 들고 공항 카페 어디서라도 일하면 되었겠지만 얄짤없는 시절이었다. 마음이 타들어가는데 비행기는 늦게 내리고, 짐이 나오는데도 오래 걸렸다. 정말 빼박 지각인 상황이라 부장님에게 문자를 보내서 사정을 이야기했었는데 부장님은 그냥 자기가 팀장에게 고자질하지는 않겠으나 그렇다고 도와주지도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와 진짜 어쩌지 하다가 최대한 머리를 굴려서... 나는 당시 팀에 친한 선배에게 연락을 해서 회사 사옥 지하 주차장에 있는 그 사람의 차에 캐리어를 숨겨 놓고,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 몸만 사무실에 몰래 올라와서 자리에 앉았다. 식은땀이 났으나 다행히 별일 없이 지나갔고, 나는 그날 프랑스에서 도착하자마자 출근을 한 상황이라 비몽사몽으로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참 힘든 하루였다.
그깟 휴가 좀 쓰게 해 주지.. 너무 야박한 회사였다.
그 야박함이 어디까지 갔냐면, 연말이 되면 그렇게 못 쓰게 했던 휴가를 강제 소진하게 시켰는데, 강제로 휴가를 올리게 해 놓고 "그렇다고 정말 쉴 거야?"라는 식으로 압박을 가했다. 그래서 휴가를 올리고 그 휴가를 다 쓰지 않고 반만 진짜로 쉬거나 이러는 경우도 많았다. 하아.......
지금 나는 교토에 있는데, 내일 오후 2시 비행기를 타고, 나름 여유 있게 한국에 도착하여 집아가고 그다음 날 화요일에 출근할 예정이다. 늙어서 힘든 일정도 이젠 피하려 하지만, 여유롭게 여행 일정을 짤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4박으로 프랑스를 가던, 4박으로 가까운 교토를 가던, 여행의 끝은 참 아쉬운 것 같다. 돈 많이 벌어서 또 여행을 가고, 프랑스도 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