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도 개발자도 공장 출근

돈이 없으면 사무직 직원으로 땜빵하기

by 스테파니

회사가 돈이 없으면 상상 초월의 일들이 일어나곤 한다.

나의 첫 번째 회사가 많이 많이 기울어져 갈 때, 휴대폰을 만드는 공장에 인력들이 부족한 상황들이 생겼고, 부족한 이유는 이제 더 돈을 써서 사람을 고용할 수가 없어서였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회사는 주기적으로 사무직의 사람들을 착출 해서 공장에서 일을 하게 시켰다.


처음 한두 번 정도는. 팀에서 어린 남자 직원들 정도를 뽑아서 보냈으나, 공장 착출이 계속 반복되자 나중엔 여자건 남자건 신입이던 부장이던 모두 다 공장길을 피할 수가 없었다.


공장조는 2가지 타입이 있었는데, 아침 7시까지 공장에 집합해서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하는 것과, 아침에 정상적으로 사무실에 출근해서 하루 종일 일한 후, 오후 7시에 회사 앞에서 봉고를 타고 공장에 가서 밤새서 일을 한 다음, 다음날 하루를 쉬는 조건이 있었다.


나는 전자에 당첨이었다. 휴가를 올리는 게 너무 어렵던 시절이라 사실 나는 속으로 새벽조를 기대하기는 했었다. 다만 실제로 새벽조에 다녀온 사람들은 얼마나 끔찍했는지 나에게 열변을 토하곤 했었다.

공장은 김포에 있었고, 당시 송파구에 살던 내에겐 특히 나도 멀었다. 7시에 도착해서 공장 옷으로 갈아입고 우리는 여기저기 배치를 받았다.


나는 소프트웨어 테스트 하는 곳에 배정을 받았다. 휴대폰을 받아서 코드에 꼽고 화면에 특정 내용이 잘 나오는지 확인하는 단순 반복 노동이었다. 하루 종일 서서 반복 노동을 하고, 4시간 정도 일하면 정말 짧은 10분 정도의 쉬는 시간을 주는 그 시간은 나에게 곤욕이었다.

다만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나의 동료들과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장 벨트 앞에 배치가 되면 벨트가 돌아가는 속도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잠깐 허리라도 폈다가는 벨트 위에 있는 업무들이 물리적으로 밀려서 혼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말 기계처럼 일해야 했고, 나의 어떤 동기 친구는 휴대폰이 최종적으로 차를 타고 나가는 최종 단계에서 박스 포장을 하는 일을 받았었는데 그곳이 반 야외라서 너무너무 추워서 힘들었다고 한다. 어떤 경우에는 공장에서 원래 일하는 직원들이 일도 잘 못하는 사무직들이 와서 어버버 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비아냥 거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점심시간은 40분이었고, 공장 식당에서 먹었는데, 이전에 공장에 다녀온 사람들이 조언을 해주었던 것이 거기서 먹는 식판밥으로는 도저히 양이 부족하니까 꼭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서 같이 먹으라는 거였다. 지금 생각하면 짠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너무너무 힘드니까 밥만 먹지 말고 라면도 꼭 먹으라고 신신당부라니... 눈물 난다.


나는 더더욱이 운이 좋아서 공장 체험도 재직 기간 동안 딱 한 번만 했다. 인생 경험치 레벨 업 한 느낌이긴 했지만 회사 사정이 안 좋아서 직원들을 공장에 내보내는 그런 일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더 슬픈 건 그렇게까지 해도 회사는 회복을 하지 못했고 결국 한 줌의 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련하다.


나의 공장 이야기를 들으면 돈을 똥그랗게 뜨면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냐는 식으로 반응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회사가 힘들어지면 이런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고 나는 최소한 이에 대한 면역력이라도 얻은 것 같은 기분이다.

공장 정도는 아니지만 G마켓 (구 이베이코리아)에 다니던 시절 회사 매출이 안 좋다고 전 사원에게 9시 이전 퇴근 금지령을 내린 적이 있다. 구체적으로 일을 더 해라도 아니고 그냥 시간을 밖아놓고 집에 가지 말라고 했다. 덕분에 다들 매일매일 회사사람들끼리 밥 먹고 술 한잔하고 빨간 얼굴로 저녁에 자리에 앉아있다가... 9시만 되면 다들 엘리베이터로 뛰어가느라 밤 9시가 출근 시간처럼 엘베 지옥이 일어났던 기억이 난다.


지금 나의 회사는 돈을 잘 벌지만, 모르는 일이다. 회사가 사정이 어려워진다면 지금 이 회사도 사원들을 사무실 밖으로 내보내서 라이더 수급이 어려우니 직접 배달을 하라고 시킬 수도 있다. 너무 가능한 일이다.

결론: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돈 잘 버는 회사에 다녀야 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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