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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우 Aug 11. 2024

카페 콘 이옐로 뽀르빠보르

-커피와 얼음 주세요 (café con hielo por favor)

 6개월 동안의 바르셀로나 생활에서 '올라', '그라시아스' 다음으로 가장 많이 한 말은 바로 '카페 콘 이옐로 뽀르빠보르(커피와 얼음 주세요)'. 따가운 지중해의 태양에 지친다거나 내 고향 서울의 편리함이 그리워지는 날이면 나는 언제나 아이스커피를 찾았다.


 스페인은 "아아 한 잔 주세요"가 통하지 않는 나라. 부러 얼음을 따로 주문해 에스프레소를 섞는 일은 좌중의 놀라움과 스스로의 수고스러움을 동반했지만, 한국에서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 나는 점원이 건네는 정체불명의 통얼음 위에 에스프레소를 붓고 약간의 물을 더하는 식으로 '셀프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마셨다. 점원들은 물론 현지인들의 흘끔거리는 눈길을 묵살하고 나서야 들이켜는 한 잔의 시원한 아메리카노는 단숨에 그곳이 서울인양 착각하게 만들었다.


 왜 거기까지 가서 커피 한 잔으로 유난이냐 할 수도 있겠으나, '아아'에 대한 나의 중독증은 국경을 불문할 충분한 서사를 가진다. 대학시절 4-5년 간의 카페 아르바이트를 한 내겐 자연히 가장 만들기 쉽고 부담 없는 '아아'가 안성맞춤이었으며, 밤새워 제작물을 만들어내는 광고일을 할 때에도 홀짝 들이켜면 단박에 잠을 깨워주는 '아아'라는 녀석이 유별나게 유용했다.


 군입대 후 논산훈련소에서 가장 생각나는 음식을 묻는 조교의 질문에 '치킨' '피자' '엄마밥' 등등의 대답을 하는 동기들을 뒤로하고 '아아'라고 답을 했으니... 돌이켜 생각하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팔지 않는 지구 반대편일지언정 '아아'를 만들어서라도 마실 수밖에 없는 삶의 궤적이었다.

 

  어지간히 '아아'를 찾아대니 자주 들르던 카페의 점원들은 나의 등장과 동시에 묻지도 않고 유리컵에 얼음을 퍼댔다. 하루 2-3번씩 수시로 드나들던 학교 카페테리아의 신시아 이모님은 "올라, 신시아" 하는 나의 인사에 "카페 콘 이옐로?(커피에 얼음 넣어서?)"라고 웃음기 머금은 인사치레를 당연한 양 건넸다. 매일같이 단순하게 주고받는 주문에 그녀도 나도 이미 익숙해진 탓에, 매번 설명할 필요도 없이 '아아'를 받아마실 수 있었다. 물론 부작용은 있었다. 라디에이터에 의존하는 유럽의 건조한 난방 시스템에 독감이 걸린 날도, 그녀가 묻지도 않고 건네는 '아아'를 거절도 못하고 오들오들 떨며 홀짝였으니까.


 그 정도로 없던 '아아'도 부러 만들어 마신 바르셀로나 생활을 뒤로하고, 서울로 돌아와 광화문 네거리에서 하루의 1/3 이상 보내는 직장인이 된 내게는 지금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스페인 현지에서 그렇게 '아아'를 찾던 내가 광화문 일대 카페 메뉴판에서 스페인식 커피 '카페 봉봉'이나 '카페 코르타도'만 보면 '아아'는 까맣게 잊고 그 둘로 마음이 향한다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며 유난히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은 날엔 달달한 연유커피 '카페봉봉'으로 당을 충전하며 지중해의 푸른 바다가 건네주던 여유를 잠시나마 떠올린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속도, 마음도 헛헛해지는 날엔 진한 에스프레소에 미지근한 우유를 살짝 올린 '카페 코르타도'를 홀짝이며 밝은 환대로 일상을 가득 채워주던 지구 반대편의 이웃들을 생각한다.


 '아아'가 아닌 스페인식 커피 한 잔을 손에 든 채 빌딩숲의 광화문 네 거리를 거닐다 보면 내가 사랑한 지중해의 그 도시가 무척이나 그리워진다. 몽글몽글 피어나는 그 그리움은 어느새 반복적이고 무미건조한 일상을 생생하게 채색한다. '오래도록 고치지 못한 습관을 단숨에 바꿀 정도의 그리움도 있는 법인가 보다' 하며 그리움의 힘과 의미를 매만져보기도 한다.


 다시 바르셀로나에 가면, ''카페 코르타도 뽀르빠보르(카페 코르타도 주세요)'' 하고 말해야겠다. 어쩌면 단골 카페의 점원과 학교 카페테리아의 신시아가 잔뜩 놀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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