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 가운데 유한누스(Juhannus) 명절이 껴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첫날과 둘 째날에 많은 헬싱키 일정을 욱여넣어야 했다. 고맙게도 몇몇 가게는 명절에 우리를 흔쾌히 맞아주겠다고 했지만, 그마저도 서너 곳뿐이었다.
비록 명절을 생각지 않더라도 가게와 밥집은 저마다 여는 요일과 시간이 달라 일정을 짤 때 퍽 골똘하여 짜야 바람직했다. 한 주에 목, 금 요일만 여는 가게가 있는가 하면 장사 규모가 크지 않은 곳은 대부분 일요일은 쉬는 모양이었다. 도착한 첫날이 토요일이었으니 둘 째날은 일요일은 꽤 많은 곳이 문을 닫을 터였기에 일요일에 쉬지 않는 곳은 모두 둘째 날로 몰고, 나머지는 첫날과 셋째 날 다음 여행지인 로비사(Loviisa)로 가기 전 막간을 이용하는 식으로 일정을 꽉꽉 눌러 담아 짰다.
긴 비행과 여섯 시간 뒤처진 시차 탓에 퍽 지쳐있었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을 다잡아야 했던 건 첫날에 중요한 일정이 몰려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핀에어를 탔기에 이른 아침에 맞춰 도착하여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인천과 헬싱키를 잇는 항공편은 하루에 하나씩 있는 것으로 아는데, 늦은 저녁 열 시쯤 출발하여 아침 여섯 시쯤 도착하는 식이어서 첫날을 알차게 보내는데 이롭다고 여겼다.
공항을 나선 우리는 곧바로 기차를 타고 헬싱키 중앙역으로 향했다. 기차를 처음 탄 아이가 창밖을 바라보듯이 낯설게 펼쳐지는 자작나무와 소나무 숲을 헤아리다 보니 어느새 도착이었다. 미리 잡아둔 숙소에 들기 전 아침 댓바람부터 겪어낼 바쁜 여정을 위해 몸을 가볍게 하고자 큰 짐을 맡겼다. 중앙역 지하에 마련된 무인 짐 맡김 시설은 이용하기 무척 쉽고 편해 그 뒤로 서너 번은 더 이용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히에딸라띠(Hietalahti) 시장이었다. 헬싱키에는 시내 중심에 있는 마켓 스퀘어(Market Square) 그리고 북동쪽에 자리한 하까나니에미(Hakananiemi) 시장을 비롯한 여러 시장이 있는데, 그 가운데 히에딸라띠는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이른 아침 여섯 시 반부터 문을 연다는 점과 그다음에 갈 곳이 헬싱키 북서쪽에 자리한 까닭에 여정의 처음으로 꼽았다.
시장에 다다르니 여덟 시쯤 되었을까. 건물 앞 공터에는 벼룩시장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일찍이 나와 좌판을 깐 노인은 남들과 달리 여유롭게 인사를 건네며 구경을 권한다. 살펴보니 대부분 미리 쓰인 이딸라(Iittala)나 아라비아 핀란드(Arabia Finland)의 부엌 세간살이들이다. 좋은 가격이었지만, 흔히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인 걸 알기에 애써 웃어 인사하며 지나쳤다.
밖에서 한껏 여유부리고난 뒤 시장 건물에 들어섰건만 가게들은 아직 열지 않거나 열 준비를 막 하고 있었다. 우리 땅과 달리 자못 쌀쌀한 낯선 땅에서 맞는 아침에 뜨끈한 연어 수프로 몸을 녹일 것을 기대한 우리는 조금 실망했다. 구글 지도에 나온 '여는 시간 여섯 시 반'은 그야말로 물리적인 건물의 '문'을 여는 시간이었던 셈이다. 서두르지 않고 스스로의 시간 흐름으로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에게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그러곤 처음 일정부터 삐걱거린 것 같은 언짢은 기분에 미리 열린 찻집에서 커피 한 잔 할까 잠시 고민했으나 싸구려 시장 커피로 핀란드에서의 첫 입을 달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