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맨드플래닝 업무를 하면서 KPI는 늘 말도 많고 탈도 많았습니다. 숫자로 정의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숫자 하나를 살리기 위해 다른 숫자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앞선 글에서 여러 KPI를 소개했지만 현장에서 가장 어려웠던 지점은 개별 KPI가 아니라 KPI들 간의 충돌이었습니다. 매출이 잘 나오고, 예측에 맞춰 공급이 원활히 이루어질 때는 모두가 만족합니다. KPI 미팅도 특별한 이슈 없이 순탄하게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공급망의 어느 한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순간 모든 KPI는 각자의 논리를 앞세우기 시작합니다. 그때는 어떤 KPI를 살리고 어떤 KPI를 포기할지를 의사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아래는 제가 경험했던 대표적인 사례들입니다.
1. 매출액 vs Forecast Accuracy
영업부에서는 연간 120개 판매를 목표로 월별로 10개씩 판매하는 계획을 세웠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 생산에서 이슈가 발생하는 경우
원자재 수급 문제나 생산 계획 차질로 인해 예정된 수량을 제때 생산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재고 부족으로 인해 해당 월의 판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집니다.매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이월된 재고가 입고되는 다음 달에는 영업에서는 이전 달의 미달 실적까지 포함해 매출을 만회하려 합니다.
예를 들어 지난달에 10개 중 5개만 판매했다면 이번 달에는 15개를 판매해 연간 매출을 맞추는 방식입니다.이 경우 월별 매출액은 결국 목표를 달성했을지 모르지만 Forecast Accuracy는 두 달 연속 크게 훼손됩니다. 매출을 살리기 위해 예측의 정확도를 희생한 셈입니다.
○ 수입 과정에서 이슈가 발생하는 경우
생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운송 과정에서 일정 지연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생산과 판매가 동일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구조라면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지만 수입 중심의 공급망을 가진 기업에서는 그 파급력이 큽니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창고까지의 리드타임이 4주이고 25% 수준의 안전재고를 운영하고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는 현재 재고 + 4주 후 입고 예정 물량을 전제로 판매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운송 일정이 지속적으로 지연될 경우 입고 시점이 미뤄지며 재고는 빠르게 소진되고 판매 기회 상실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후 연간 또는 분기 매출을 맞추기 위해 다른 달에 실적을 몰아서 판매하게 되면 앞선 생산 이슈 사례와 마찬가지로 Forecast Accuracy는 낮은 수준으로 기록됩니다.
○ 영업에서 이슈가 발생하는 경우
영업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판매 활동이 제한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코로나 초기,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 시행과 함께 오프라인 매장이 타격을 입고 관련 업계의 영업 활동이 급격히 위축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반대로 마스크처럼 갑작스럽게 수요가 폭증하여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했습니다. 이 경우에는 모든 공급망 활동이 한 가지 목적에 집중됩니다. 매출을 놓치지 않는 것. 생산, 물류, 배송, 유통까지 다른 KPI들은 뒤로 밀리고 매출액을 확보하는 데 모든 역량이 투입됩니다.
마스크 수급 대란 당시에는 국가가 직접 개입해 공급을 관리할 정도로 공급망 전반이 비상체제에 들어갔습니다. 이처럼 기업 활동의 본질인 매출액과 충돌하는 KPI는 현실적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